검찰이 아동ㆍ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내려받은 뒤 바로 지워도 소지죄를 적용하고 초범도 기소하는 등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한 것과 보건복지부가 대학교 내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는 입법예고안을 내놓은 것은 같은 차원에 있는 문제다. 음란물 시청과 음주 모두 남들 보기에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소수의 ‘미친 놈’들이 범죄의 촉매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부 당국과 언론들이 성폭행이나 폭력 등 강력범죄의 원인으로 주목하고 있다는 것도 여기에 속하는 이유 중 하나다. 요즘 보이는 검·경찰의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언론의 철두철미한 보도는 ‘범죄와의 전쟁’ 수준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이것들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범위에서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아동·청소년이 나오는 동영상인지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고 다운로드를 했어도, 이를 알고 바로 지웠어도 기소하는 건 과잉금지의 원칙 위배의 소지가 있다. 대학 내 음주를 막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부당국와 언론은 이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 여기는 듯하다. 피리 부는 사나이 가 쥐 떼를 몰고 간 것처럼 음란물 소지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는 것이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사라지게 하고, 대학 내 음주 금지가 음주 폭력을 크게 줄어들 게 할 거라는 얘기다. 

한국외대 학생들이 교내 금주금지령에 반발해 문화제를 열고 있다. ⓒ 머니투데이
 
몇 달만 지나면 이 규제와 처벌들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성범죄와 폭력 범죄가 지금과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음란물 공급처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일본의 성범죄율은 세계에서도 낮은 수준이고 인도나 이슬람국가처럼 음란물의 유통이 비교적 어려운 곳이 성범죄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음주 역시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음주량은 세계최고수준이지만 범죄율이 그런 것은 아니다.

다음에는 어떤 것에 책임을 돌릴지 궁금해진다. 여러 연구들과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옷차림이 남성을 자극시킨다는 주장도 전면에 등장할 것이다. 사실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 CF 등 미디어를 통한 모든 형태의 프로그램들과 소위 작품들 중 해당사항이 아닌 것이 없다. 폭력성을 포함하고 속물근성을 자극하며 성적판타지를 이용하고 과소비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범죄 뉴스들도 모방범죄를 유발한다. 음란물 시청과 음주를 처벌하는 논리라면 이마저도 차단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 과정에서 남성의 자유를 제약하는 이유가 여성을 대상으로 전환되고 그 범위는 점차 확대된다. 이미 여성가족부나 방송심의위원회 같은 여러 국가단체에서 이런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여론이 안좋다면 법안이 개정될 수도 있다. 학내 음주 금지 입법안이 통과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동안 제한당한 자유는 보상받지 못하며 몸집을 키운 공권력이 제 위치를 스스로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편화된 개인의 자유는 미약하고 이 괴물을 조종하는 이들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이 법들이 사문화되더라도 박정근과 미네르바를 구속한 국가보안법과 전기통신법처럼 그 흉악한 얼굴을 언제 다시 들지 모른다는 걱정도 여기에서 나온다. 
서유럽 전역을 뒤흔들었던 68혁명은 낭트대 남학생이 여학생 기숙사 출입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작은 자유마저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지 못하다. 역사는 이렇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정치적 이유로 생겨나고 정치적 이유로 악용돼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합리적이고 정당한 이유 없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헌법적 원칙이 민주국가에서도 외면 당했던 것이다. 성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심어줄 수 있는 성교육과 여성을 수단화하지 않는 사고방식, 술이 아닌 다른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 등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뒤 따라오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