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네덜란드 친구 Michael이 홍대에 매우 잘 노는 친구가 있다며 Moon을 소개했다. 딱 보기에도 똘끼 있는 첫 인상에 조금 당황했던 것도 같다. 처음 보는 노르웨이 친구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그의 모습은 경계를 잔뜩 세운 나를 누그려트렸다. 3차 즈음에 방문한 Ho bar에서 그는 직원이라도 된 듯 호루라기를 불고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웠다. 모두가 그의 익살스러운 춤사위에 즐거워했고 그가 순간순간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모두가 즐겼다. Bar를 일순간에 반쯤 클럽으로 들어버리는 그의 능력에 모두가 감탄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는 내가 처음 만나보는 같은 생일을 가진 친구다. 2월 27일. 갓 며칠 차이로 ‘빠른 생일’의 영예를 안고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던 우리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생일처럼 동일한 궤적으로 흐르지만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들어볼 수 없었던 20대의 이야기들을 그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기대보다 다이나믹하고,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였다.






Q. 자기소개 해주세요.

자유로운 영혼, ‘홍대 또라이’ 스물 세살 문성필입니다.



Q.어떤 이유로 자신을 ‘홍대 또라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궁금해.


내가 ‘홍대 또라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지. ‘나 홍대 또라이야’라고 하면 사람들이 친숙하게 여기고, 기억하기도 좋으니까. 나한테 맞는 컨셉은 ‘또라이’ 아니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뭐 홍대 정우성 원빈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리고 ‘또라이’라는 어감이 외국인들에게도 웃긴가봐. 또라이가 무슨 뜻인지 몰라도 무척 재밌어 하고. 처음 사람을 대면했을 때 ‘나 또라이, 또라이’ 하면 친근감 있게 피식하고 웃음 짓게 만들 수 있으니까 좋은 별칭인 것 같아.



Q. 홍대를 좋아하는 이유가 뭐야?


홍대는 자유롭다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아. 내가 돈의 유혹에 미쳐서 대포차, 대포폰 같은 것을 팔았었는데 사장님이 걸리고 줄줄히 다 잡혀 갔어. 인간이 하면 안 되는 일인데 어려서 돈에 끌렸지. 그래서 어린 나이에 교도소 생활을 6개월 정도 했더니 그 후로 트라우마가 심해서 한 곳에 오래 있으면 갑갑하고 이사를 자주 다니게 되었어.(그는 오늘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방을 빼고 짐을 잔뜩 싸들고 나왔다. 오늘은 아는 분 가게에서 잠을 잘 예정이라고 했다.) 우울증이나 조울증도 걸렸었는데 홍대 가면 자유로우니까 그런 게 좀 치유가 되는 것 같아. 외로우니까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사람들 웃게 만드는 거 이야기 나누고 술 마시는 것도 좋고.




Q. 홍대에 반하게 된 계기가 뭐야? 


아버지가 장사꾼이라 대구, 부산, 광주, 제주도까지 안 살아본 데가 없어. 특히 할머니가 제주도에 사셔서 제주도에는 오래 살았고. 서울에는 18살 때부터 들락날락 거렸고 정착한 건 스무 살. 그 때부터 홍대 좀 다니고 길거리 문화보면서 이런 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 홍대에 간 어느 추운 날, 정말 손이 완전히 얼 정도인데 한 남자가 놀이터에서 웃으면서 기타를 치고 있는거야. 그때 정말 감동을 받았어. 나도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저 사람은 열정이 대단하구나. 감동을 받았지.



그래서 나도 해 보고 싶었고, 내가 재능이 있건 없건 웃음만 준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길거리 공연을 해 보기 시작했어. 그러다 춤 잘 추는 형들하고 팀을 짜서 했고. 그룹명은 아스팔트야. ‘짓밟아도 일어나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다들 홍대 놀이터에서 춤추다가 알게 된 사람이야. 그 형들 공연 보다가 우연히 공연도 같이 시작하게 되었어. 




Q. 홍대의 가장 큰 특징은 뭐라고 생각해?


말 그대로 프리하다는 거? 내가 뭘 해도 누구한테 뭐라 말 안 듣고. 약간 자유로운 그런 분위기가 좋아. 홍대에서만 되고 다른 곳에서 안 되는 게 많잖아. 예를 들면, 강남바닥에서 술병 들고는 돌아다닐 없고. 신촌만 해도 또 분위기가 다르지. 외국인들이 홍대를 엄청 좋아하는데, 자기네 나라는 10시나 11시면 분위기가 끝나고, 전체적으로 흥성흥성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없는데 홍대에는 그런 게 있으니까.





Q. 요즘 홍대가 상업적이 되어간다는 비판이 많은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인디 문화를 활성화 하려면 방송에서 많이 힘을 써줘야 하는 것 같아. 인디 음악은 현재 대중성이 없고 찾는 사람들만 찾고 아는 사람들만 알 수밖에 없어. 그리고 서울에 국한된 문화고. 지방 부산, 제주도 애들은 모르는 사람이 많아. 그렇기 때문에 방송에 그 수많은 음악 프로들 중에 인디에서 발굴하는 프로나, 아마추어와 프로의 대결과 같은 프로가 생겼으면 좋겠어. 그래야 사람이 찾고, 사람이 찾아야 활성화 되고. 그렇게 돈 벌이가 되어야 해. 인디활동 하는 사람들도 기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상업화가 될 수밖에 없어. 




Q. 교도소 생활은 너에게 어떤 영향을 줬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6, 7개월이었어. 정신 상태나 마인드가 확 바뀌었고.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정말 지금 내가 봐도 개같이 살았어. 세월은 세월대로 가는데, 일하면서 번 거 다 술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꿈도 없었어. 근데 다녀온 이후에는 책도 보고 적금도 하고, 부모님한테 편지도 쓰게 되고. 그 전에는 내 인생에 ‘배움’이라는 게 없었는데, 뭔가 배워보고 싶어졌어. 나와서는 DJ학원도 다니고, 댄스 학원도 다녔지. 완전히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어.



Q. 그렇게 되고 나면 잘못한 일과 관계없이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만한데.


그때까지 2, 3년 정도 일 했던 가게에서 매니저까지 되었는데 그런 자리도 잃어야 했고, 벌금도 1200만원 내고. 말 그대로 바닥까지 떨어졌으니까 미치는 줄 알았어. 가족들한테도 (감옥 간다고) 말을 안했어. 걱정할까봐. 다녀와서야 이야기를 했지. 물론 처음에는 그랬지만 그곳에서 생활하고 나오니까 인생의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것 같아. 좋은 추억이라고는 전혀 말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많은 걸 배웠으니까.





Q. 교도소에서 충분히 교도소에서 나왔을 때의 삶을 대비해 주는 것 같아?


그 곳이 외관상으로는 안 좋은 곳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재범을 하거나 하겠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으로 어떤 사람들은 마인드가 바뀔 수도 있잖아. 나보다 어린 사람도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어. 매우 나이 많은 분들도 많았는데, ‘아 어린 나이에 와서 차라리 다행이다. 정신 차리고 나이 먹어서 그러지 말아야지.’ 했지. 그래도 가족들한테 짐지우지 않고 나만 힘들어서 다행이었어. 사람이 살다보면 누구든 실수를 하게 되는데 젊을 때 깨닫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Q. 출소한 이후의 삶은 어때? 일을 구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고?


일을 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 홍대하고 신촌에서 18살 때부터 알바 했고, 경험도 많았으니까. 어디든지 말하면 일자리는 금방 금방 구할 수 있었어. 출소하고 첫 아르바이트는 남대문 도매상에서 물건 떼는 것이어서, 새벽에 물건을 떼고, 잠깐 자고 야간에 또 (다른 아르바이트) 출근 하곤 했지.



그리고 보호관찰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출소한 후에도 보호관찰소에 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이 주에 뭘 했는지, 현재 어디 살고 번호는 뭔지 말해야 해. 1, 2년 정도? 나는 이대에서 아현 방향으로 올라가다보면 있는 보호관찰소로 가. 2,3개월 열심히 나가면 그 후에는 조금 완화 시켜 줘서 생각처럼 힘들거나 귀찮지는 않아.




Q. 아직 나이가 많지 않는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잖아.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아르바이트는 뭐야?


호스트바 비슷한 착석바는 정말 하기 싫었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부산에서 선배들의 권유로 억지로 하게 되었는데, 정말 싫었어. 내가 하기 싫은데 여자 손님 옆에서 술 먹고, 내가 아파도 술 먹어야 하고. 광대처럼 노래 억지로 불러야 하고. 초이스 하고 이런 것들. 아 돼지농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더럽다고 생각했어. (돈은 좀 많이 벌지 않았어?) 많이 벌면 뭐해. 그만큼 관리해야지. 미용실도 가고 옷도 사고 머리 아팠어. 손님들 안 오면 다들 스트레스 때문에 도박하고, 그러다 보면 번 돈 다 잃고 그러니 돈이 남지 않았지. 2개월만 일하고 그만 뒀어. 나를 노예처럼 부린다는 느낌이 너무 싫었어.




Q. 지금 어떤 어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현재는 홍대 ‘탕’ 그리고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액세서리 숍을 해. 이건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동업이야. 6년 정도 남대문에서 청바지를 팔면서 친해진 형이 있는데, 그 형이 내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함께 투자해서 가게를 하자고 했어. 1년 넘게 동업을 했는데 이득은 별로 안 났어. 이번에 고속터미널 지하상가가 새로 리모델링을 한 바람에 지하철 상가 쪽 상권은 완전히 죽어서 이제 다른 걸 찾아보려고 하고 있어.




Q. 홍대 ‘탕’은 조금 특이한 컨셉의 술집으로 알고 있는데, 그 곳에서 일 하는 건 어떤지 궁금해.


일단 사장님이 직원들에 대한 편의시설과 서비스가 좋아. 매달 첫째 주에는 무조건 회식도 하고, 아프면 쉬게 해 주고. 사장님이 놀 때는 노는데 일하기 시작하면 눈빛이 바뀌니 때로는 무섭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가게 분위기가 좋아. 처음부터 나하고 코드가 맞는 가게라는 생각이 들었어.



‘홍대’하면 특별한 게 먹어주는데 사장님이 목욕탕 사우나를 좋아해서 그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셨대. ‘탕’하면 (목욕)’탕’도 되지만 말 그대로 (먹는)’탕’이기도 하니까. 이거 하면 어떨까 해서 인테리어도 한 번 해 보고 해서 오픈 했는데, 이런 컨셉이 손님들한테 먹히는거지. 먹히고 나니까 이번에 바로 옆에 ‘도탕’이라는 2호점도 열게 되고. DJ도 놓고 하니 약간 클럽 비슷한 주점으로 분위기가 좋아진 것 같아.


 



Q. 탕 건너편의 HO BAR에서 분위기를 자주 띄워주는데, 거기서는 아르바이트 하는 거 아니야?


다들 내가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성필은 홍대 HO BAR 7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춤을 추고 분위기를 띄운다. 손님들한테 말도 잘 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아르바이트 생이라고 생각할 만하다.) 그 곳 매니저, 사장님, 직원들 다 잘 아니까 같이 일을 도와주고 하는 거지. 나는 클럽은 잘 안 가는데 Ho bar같은 개념으로 (술 마시면서 약간 춤도 추는) 것을 나중에 차리고 싶어서 자주 가. 내가 재밌으니까 하는 거지. 물론 가면 서비스도 주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거라서 하는 건데, 내가 행사업체도 아니고 돈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담배값만 줘도 감사하지.




Q. 그럼 네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사업이야?


물론 사업 하고 싶지. 클럽은 부담스럽고, 음악이 있는 bar같은 것 해보고 싶어. 내 이름이 문성필이니까, MOON bar라는 이름 좋지 않아? 우주 비슷한 컨셉으로.



일단은 술집 쪽으로 일을 많이 하고 있어. 밑바닥부터 일을 해 봐야 사장이 되었을 때 일을 제대로 시킬 수 있는 것 같아. 사장님들이 이야기 하는 걸 잘 듣고 있기 때문에 이걸 보고 배울 수 있는 것 같아. 내가 무언가를 했을 때 제대로 할 수 있고, 경험에서 다 우러나는 거고, 이런 건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해보고 싶은 것도 다양해. 술집도 좋지만 게스트하우스도 하고 싶어. 외국인 상대로 하는 것도 하고 싶고.



내가 원래 2009년도에 새로 생긴 방송MC과에 오디션을 보고 들어갔어. 남희석이 교수로 있는 곳, 그런데 등록금이 비싸서 그만 뒀거든. 케이블이나 이런 곳에서 VJ 제의도 있었는데 뭔가 잡혀 살 것 같아서 거절했고. 성격이 누구나와 잘 어울리고 말도 잘 하니까, 이벤트나 행사MC쪽도 알아보고 있어.



나중에 성공하면 꼭 봉사하고 싶어. 그중에서도 고아원에 기부하고 봉사하고 싶어. 어렸을 때 외롭게 자라서 고아원 애들이 참 불쌍하게 느껴져. 이 아이들은 앞으로 자라날 나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데 버림을 받았고 사랑도 많이 못 받았으니까. 양로원 사람들 보다 더 도와주고 싶어. 물론 말만 하면 뭐 하겠어. 실천을 해야겠지. 사고 싶은 것도 덜 사고 먹고싶은 것 덜 먹으면 도와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Q. 아르바이트 월급은 보통 어떤 식으로 운용해?


적금을 먼저 부어. 보통 100만 원 정도, 못하면 70마원에서 80만 원 정도. 자유적금이거든. 그 외에는 방세내고, 동생 용돈 주고, 학원비 그리고 생활비 하면 모자를 때도 있지. 이번 달에는 (7살차이 나는) 동생이 체육대회 한다고 운동복 사야 한다고 해서 돈을 보내줬더니 빠듯해. 밥은 보통 일 하는 곳에서 먹거나 간혹 사 먹고 집에서는 보통 잠만 자. 지금 붓고 있는 적금이 10년짜리인데, 만기가 다 되면 가게를 차리고 싶어. 목표는 2억 3천에서 4천 정도야.
 


 



Q. 일 하면서 혹은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뭐야?


일단 그냥 뭐 힘든 점은 가족들하고 떨어져 있는 것인 것 같아. 6개월에 한 번 정도밖에 못 내려가고.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인 것 같아. 힘들 때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가족이 가장 힘이 되. 누구에게보다도 허심탄회하게 가족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


 


Q. 그럼 학창시절의 문성필은 어땠어?


재미있었어. 띄엄띄엄 다니기는 했지. 점심 먹고 나가서 밥 먹고 술 먹고. 지금 생각하면 부질없지만. 공부나 할 걸. 수업은 영어가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아. 외국인 만나는 걸 원래 좋아해서 영어를 배우는 건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 젊을 때 외국 가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 내년이나 내후년 쯤 워킹홀리데이를 여행 겸 가보고 싶어. 돈이 많이 드는 곳은 못 가지만 아시아 위주로 여행을 해 보고 싶기도 하고.





Q. 본인이 평가하는 자신은 어떤 사람인 것 같아?


일단은, 아직도 느끼지만 많이 한심스럽기도 해. 불쌍하기도 하고. 교도소 갔다 오고 안 좋은 일,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도 있었고 부모님 말 안 들은 것도 있고. 인간관계도 그래. 못 해 준 사람들도 있고. 불쌍한 점은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까 정이 많이 생겨. 한 번만 마음을 주면 정을 못 떼. 어디 가서 일 하면 4, 5년 일 하게 되는 것도 정 때문이지. 한 곳을 떠나면 금세 향수병이 생겨.




Q. 평소에 보면 그래도 자신감 있어 보이는 그런 모습이 좋은데, 본인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해?


말 잘하고, 잘 놀고, 거리낌 없이 잘 나서는 것. 거기에 더 해서 요즘에는 성실하게 살고 있기도 하고.




Q. 12월 19일에 투표하러 갈 생각이야?


지금까지 투표를 안 해봤고 정치에 관심도 없었는데. 요즘 들어 뉴스도 보게 되고, 투표를 이번에는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해 보려고.



Q. 우리나라가 이런 점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 있어?


요즘 대학생들이 대학만 나왔다고 하면 다 신용불량자잖아. 등록금이 너무 비싼 것 같아. 나도 등록금 때문에 대학을 중퇴했고. 한 학기에 400에서 500이니까 졸업만 하면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누구든 빚쟁이잖아. 한 나라의 청년이 잘 살아야 그 나라가 잘 산다고 생각해. 노인이나 부유층을 키워준다고 나라가 더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결국 나라를 짊어질 청년들에게는 큰 정부적 혜택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 등록금 문제도 10년 20년 간 해결 하겠다고 했지만, 전혀 바뀌는 게 없어서 다 마음에 안 들어. 청년들을 위한 법이나 혜택이 많았으면 좋겠어. 물론 요즘 장학금 지원도 있지만 받는 건 결국 소수잖아. 전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