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두 명의 대통령 후보자가 나온다. 후보자들은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고, 상대방의 정책에 질문을 던진다. 서로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는 모습은 탁구경기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청자들은 그 둘만의 탁구게임을 지켜본다. 그러나 그 화면프레임 바깥에는 수많은 ‘킹메이커’들이 숨어있다. 후보자가 서 있는 연단의 높이와 후보자가 사용하는 마이크 볼륨에서부터 연설문까지 어느 것 하나 ‘킹메이커’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킹메이커>는 그러한 ‘킹메이커’들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다. 주인공 ‘스티븐 마이어스’는 민주당 경선 후보 ‘마이크 모리슨’의 선거캠프를 이끌어간다. 그는 유능한 킹메이커로서 모리슨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연설문 작성에서부터 정책제안까지, 킹메이커 ‘스티븐’은 정치인 ‘모리슨’을 창조해낸다. 그런 점에서 <킹메이커> 포스터는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뽑을 후보자들은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킹메이커들이 골라주는 옷을 입고, 그들이 선택한 유세지역을 돌며 그들이 작성한 연설문을 읽을 것이다. 물론 마지막 결정은 후보자들 자신이 내리는 것이겠지만 우리가 매스컴에서 만나는 후보자들은 철저히 만들어진 ‘박근혜’, ‘문재인’일 뿐이다. 하지만 킹메이커들이 누구고,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기 힘들다. 그들은 여간해선 화면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킹메이커>를 따라가다 보면, 실제 킹메이커들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 메시지는 곧 권력이다. 스티븐은 후보자의 메시지를 담당했다. 모리슨의 연설과 인터뷰는 모두 그의 입에서 나왔다. 실제 후보의 연설에서 달라진 것이라곤 말투뿐이었다. 이처럼 메시지 담당자의 생각이 곧 후보자의 생각이기 때문에 메시지 담당자는 실세가 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캠프에서 메시지를 담당하고 있는 정호성 비서관 또한 캠프 내 실세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다른 보좌관 3명과 더불어 박 후보가 정치를 시작했던 1998년부터 박 후보를 보좌해왔다. 이들은 통상적인 실무 보좌를 넘어 전 분야에 걸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알려져 있다. 박 후보와 일했던 핵심 의원들은 하나같이 “진정한 실세는 비서실장도 대변인도 아닌 (보좌진)4인방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 경선 캠프에서 일한 한 참모도 ”문고리 권력이 환관 권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비유했다.(한겨례, 2012.10.10)

문재인 후보의 선거캠프에도 마찬가지다. 양정철 전 메시지 팀장은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출신으로 문 후보의 9명 친노 실무진 가운데 한명이다. 양정철 전 메시지 팀장은 문 후보의 심중을 잘 읽는 측근으로 꼽힌다. 그는 문 후보의 자서전 ‘운명’과 출마 선언문 작성을 도왔고 홍보 창구 역할도 해 왔다. 그러나 양정철 메시지 팀장을 비롯한 9명의 친노 실무진도 ‘그들만의 선대위’, ‘끼리끼리 선대위’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친노 핵심 참모그룹 9명은 10.21일 사퇴했고, 지금은 정세균 민주당 고문의 메시지를 담당했던 정경환 전 국회의장 공보수석이 메시지 팀장을 맡고 있다.


두 번째, 킹메이커들 사이에서도 세력싸움은 존재한다. 스티븐은 캠프 내에서 2인자였다. 그의 위에는 선거 캠프 본부장 ‘폴 자라’가 있었다, 처음에 스티븐은 폴을 자신의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다. 그러나 상대후보 보좌관의 술수에 말려든 스티븐은 신뢰를 잃고 폴에게 내쫓긴다. 하지만 스티븐은 모리슨의 결격사유를 이용해 그를 움직여 폴을 내쫓는다. 그리고 스티븐은 선거캠프 내 1인자가 된다.

대선 후보의 캠프 내에서도 알력싸움이 존재한다. 박근혜 후보 캠프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4월 총선때만 해도 캠프 내 실세였다. 그러나 대선이 다가오면서 경제민주화와 관련하여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 다른 선대위원들과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박근혜 후보가 이한구 원내대표의 권한을 줄이는 등 김종인 위원장의 편을 들어주는가 싶더니 11월에 와서는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정책을 받아들이지 않는 등 김 위원장을 선거 캠프 내에서 제외시키는 모양새다. 이로써 다시 새누리당은 김광두 단장, 이한구 원내대표를 포함한 ‘시장주의자’들의 무대가 됐다.


문재인 후보 캠프 내에서는 앞서 말했듯 친노 실무진 9인방이 2선으로 물러났다. 이들의 일괄사퇴는 ‘선대위 내 친노 독주’ 논란을 잠재우고,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공백은 현재 정세균계가 채우고 있다. 정세균 상임고문은 문 후보와 당 경선 당시 비 문재인 주자들과 함께 각을 세우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손학규 상임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에 비해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아시아경제 2012.10.26)

세 번째, 후보자와 킹메이커 사이에도 권력싸움이 존재한다. 앞서 말했듯 스티븐은 모리슨의, 대통령 후보로서 심각한 결격사유를 발견한다. 이를 이용해 그는 선거 캠프 본부장이 되고 모리슨을 쥐락펴락한다. 스티븐은 모리슨에게 조언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명령하는 위치에 이르게 된다. 모리슨은 스티븐의 꼭두각시 인형이 된 것이다. 비록 영화라고는 하나 현실에서도 킹메이커가 ‘킹’을 넘어서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11월23일부로 안철수 후보는 사퇴했고, 야권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로 결정됐다. 이제 박근혜 대 문재인, 문재인 대 박근혜의 대결이다. 달리 말하면 박 후보의 킹메이커 대 문 후보의 킹메이커의 대결이다. 승부는 어떤 캠프의 ‘킹메이커’가 더 효과적인 선거 전략을 쓰느냐, 설득력 있는 언어를 구사하느냐에 달려있다. 12월 19일. 누가 진정한 ‘킹메이커’가 될 것인가. 이제 그 결과를 알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