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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공.간. 20대는 어디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만의 ‘아지트’를 꿈꾼다. 나만 아는 고유한 장소나, 나만의 추억이 담긴 공간. 우리는 어떤 장소를 토대로 어떠한 기억을 떠올린다. 모든 경험은 공간을 매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장소가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기억이 담긴, 혹은 담겨야 할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20대가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열린 장소’는 더욱 줄어들고, 학교의 빈 공간을 제공받는 것도 쉽지 않다. 데이트할 곳은 카페나 영화관 정도뿐이니 콩닥대는 마음들은 길거리를 헤맬 뿐. “자취방 하나 얻을 돈도 없는 걸요”라며 울상 짓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20대에게 몸과 마음을 쉬일 공간이 어디 있을까. 20대와 공간, 그 현주소를 짚어 보자.

우리 어디서 모일래? 카……카페?

커피 전문점(이하 카페)은 비즈니스 미팅뿐만 아니라 일상적 대화 공간으로도 완전히 정착했다. LG경제연구원 리포트에 수록된 통계에 따르면,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의 20%는 20대다. 5000원 남짓 하는 커피 값을 지불할 돈, 많은 20대에게는 부담이다. 30대 이후부터는 경제적 독립을 하거나 수입이 생길 가능성이 높지만, 대부분 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들인 20대에게 커피 가격은 크게든 작게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20대는 커피 값을 꾸역꾸역 지불하며 카페에 간다. 달리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5분에 하나씩, 아니 1분에 하나씩 보이는 길거리 카페에서 몇 시간씩 ‘죽치고’ 앉아 있는 20대를 찾기는 너무나 쉽다. 오랫동안 앉아 마음껏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카페뿐이기에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도 20대는 카페로 간다. 식당에서는 오래 앉아 있을 수 없고, 마음껏 ‘일을 벌일’ 다른 공간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커피를 사야 하는 아이러니라니, 혹 공간 사용을 위해 입맛도 커피에 길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생활문화 공간이라 불리기는 하지만, 카페에서 20대가 할 수 있는 일도 사실은 한정되어 있다. 기껏해야 팀프로젝트 모임이나 각종 스터디 뿐. 공부나 과제 이외에 카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것이 사실. 가령 악기를 연주한다거나, 널찍하게 판을 벌여 재미난 대자보를 그린다거나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의자에 앉아 옆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 이상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공간이 바로 카페다.


동아리실과 과방, 교내 학생자치공간의 설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이용할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면 학교 내에서 해결할 수도 있지 않나? 물론 대학 내에는 건물마다 널찍한 유휴 공간이 많고, 시간대별로 빈 강의실도 더러 생긴다. 게다가 과방이나 동아리방이 있으니 마음껏 ‘자치 활동’을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가. 왜 20대 대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나오는 것일까? 왜 길거리에서 떠도는 것일까? 학생 자치활동 공간 역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생회에서 활동하는 김세진(22, 이화여대) 씨는 “연구 공간이나 회의실 등의 이름을 달고 있는 공간이 여럿 있고 거의 항상 비어있는데도 학생회나 일반 학생들이 이용할 수 없게 해 두니 여러 모로 불편하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성신여대에서는 사라지는 공간 문제로 학생들이 학교와 충돌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6월 학생회관 리모델링 안이 발표되었는데, 동아리방과 과방을 없애고 그 자리에 세미나실 등의 공간을 설치하겠다는 공문이 붙은 것이다. 전체 학생들을 위한 스터디룸이나 휴식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지난 9월 학생들을 상대로 실시된 리모델링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89.5%의 학생들이 ‘학생회관에는 과방과 동아리방이 존재해야 하고 그 외 남은 공간에 세미나실을 구성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김남영(23, 성신여대 확성기실천단 집행위원장) 씨는 “학생들의 자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공간은 학생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인데 이를 학생의 동의 없이 없애려 하는 것은 부조리하다”고 비판했다. 현재 확성기실천단 측에서는 ‘공간조정위원회’를 구성하여 학교 측의 일방적 리모델링 안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 참세상

학교마다 상황은 비슷하다. 동아리방 이용이 시간대별로 제한되어 있거나, 특정 학생들 이외에는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곳도 있다. 회의실, 연구실의 이름을 단 유휴 공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나’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것이 이유인데, 모순적이다. 사용하지 않아 먼지만 쌓여가는 공간은 느는데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은 갈 곳이 없다. 잠깐의 조모임조차 학교 밖에서 하고, 학생식당의 구석 빈 테이블에서 동아리 기획물을 만든다. 심지어 강의실 밖 복도에 의자 하나를 놓고 과제를 하는 미대생도 있다. “학생자치공간에 대한 태도는 곧 학생 자치의 가치에 대한 학교 측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김남영 씨의 말이 가벼이 들리지 않는다.



운동할 공간이 없어! 게다가 운동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20대, 여가 시간에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여가 시간 활용은 상당히 많은 사회문화적 지표를 보여주는데, 공간으로 살펴보는 20대의 문화는 상당히 빈곤하다. 카페, 서점, 영화관, PC방, 쇼핑몰부터 놀이동산까지, 죄다 돈을 지불하고 누려야 하는 문화생활이다. 아무리 공짜가 귀한 시대라지만, 가난한 20대는 놀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 등록금과 생활비에 더하여, 놀 때도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기에 부모님의 눈치를 더 살피게 된다.

‘돈 안 드는 건강한 여가’의 대표 주자로 여겨지는 운동이라고 다를 바 없다. 운동하는 데에도 돈이 든다. 친구들과 함께 스포츠를 편하게 즐길 공간이 여의치 않다. 넓은 대학 내의 운동장은 늘 운동부원들이나 동아리 사람들이 연습하고 있어 이용하기 어렵고, 학교 밖으로 나가자니 시설 이용료가 큰 부담이 된다. 동네의 중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관 시설을 빌리는 데도 적잖은 돈이 필요하다. 한국의 도시에는 마음껏 뛸 수 있는 산책로나 공원, 광장이 외국 도시들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20대는 혼자서 헬스장에 가거나, 적잖은 돈을 내고 댄스 학원에 등록한다.


스포츠 시설이 열악하기는 대학 캠퍼스도 마찬가지다. 인하대에 재학 중인 김지혜(21) 씨는 “학교 내에 수영장이 없으니 수영 동아리 친구들마저도 매번 자비를 모아 수영장에 가는 일이 벌어진다. 테니스부나 배드민턴부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조금만 배려해 주면 남는 공간에 작게나마 배드민턴장이라도 만들어줄 수 있을텐데 참 아쉽다”라고 말했다. 노르웨이로 교환학생을 다녀 온 구혜진(24, 성균관대) 씨도 “노르웨이 학생들이 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생활체육의 정착은 곳곳에 체육 공간을 만드는 데서 시작하는데, 우리나라는 무료로 이용 가능한 체육시설이 별로 없다”고 공간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사라지는 공간, 사라지는 문화


20대와 공간, 그 현주소는 이러하다. 대학생에게 제공되어야 할 학내 자치공간이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널브러져 앉아 수다를 떨거나 기타를 퉁기며 노래 부를 공터도 부족하다.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하며, 운동을 선뜻 하기에도 편치 않은 상황이다. 넓은 공짜 공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자유 공간이 부재하다. 지난날을 뒤돌아볼 때 “카페에서 수다 떤 기억밖에 없군.”이라던가 “뭘 하든 돈이 들어서 하루하루 재미없는 날들이었지.”라는 말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공간과 함께 파릇파릇한 20대의 문화 또한 사라지고, 점점 획일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전주시 남부시장에는 공모를 통해 청년들에게 1년간 무료로 공간을 대여해주는 ‘레알뉴타운’이라는 공간이 있다. 정확히는 청년 사업가들을 위해 ‘청년 장사꾼 프로젝트 2012’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는 모토를 단 이 공간에서 청년들은 뚝딱뚝딱 수공예품을 만들고, 공연 준비를 하며, 소모임을 연다. 토요일 격주로 야시장과 무료 영화 상영 ‘레알 명작 극장’도 진행 중이다. 플리마켓을 연 뒤 남은 물품들을 챙겨두기도 하고, 소규모 파티를 열기도 한다.


ⓒ소리타래(전주세계소리축제 공식블로그)

“너는 꼭 판을 벌여줘야만 하니?”라는 핀잔 섞인 말이 있다지만, ‘판’을 벌여줘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쿵짝쿵짝 무엇을 만들고, 시끄럽게 쑥덕일 공간이 없는 20대에게는 레알뉴타운 같은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비좁은 카페의자에 몸을 누이는 수많은 20대들은 ‘딱히 갈 곳이 없어서’ 혹은 ‘달리 할 것이 없으니까’라고 힘 빠지는 소리만 할 터이다. “운동을 하든, 잡지를 만들든, 영화 편집을 하든, 밴드 합주를 하든, 20대에게 든든히 발붙일 공간을 제공해주실 분 어디 안 계신가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시간보다 공간일지도 몰라요.”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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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신여대생

    2012년 12월 14일 18:17

    아주 좋은 글이네요 대학 내에 학생들을 위한 공간은 더 마련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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