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리지 않더라도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영화가 힘이 더 세다고 생각해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는 답을 내리는 영화보다는 질문하는 영화를 더 좋아해요.”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물어봤을 때, 인권영화 감독 이다솜씨는 이렇게 답했다.

그가 만들고 싶은 영화 역시 ‘질문하는 영화’일 것이다. 계속 머릿속에 맴돌면서 사유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감독은 영화 제작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수없는 자신과의 싸움도 벌여나가야 한다. 게다가 인권영화를 제작한다면 다수의 목소리보다는 소수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들의 처지를 공감할 수 있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다솜씨는 어려운 길을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중이었다.


Q.
자기소개 부탁해요.

저는 동국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있는 3학년 이다솜입니다.

Q. 영화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하긴 했는데, 왜 영화를 하느냐고 물으면 거기에 대한 답변이 준비돼 있지 않아서 저도 제가 왜 영화를 하는지 알고 싶어요. (웃음)


Q.
고등학교 때 어떤 영화를 찍으셨나요?

‘노들 장애인 야간학교’라는 민간학교에 대한 영화를 찍었어요. 정부가 노들학교의 제정지원을 끊었고, 학력 인정을 안 해줬어요. 특히, 시설사용에 문제가 있었어요. 겨울에 천막을 치고 수업을 했고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로 찍었어요.

Q. 영화를 찍으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었나요?

스텝들과의 관계를 유지 하는 게 힘들었어요. 특히 장애인분들이 정에 약하시다 보니 거리를 유지 하는 게 힘들었어요. 냉정하게 말해서, 저는 다큐를 찍고 떠날 사람이기 때문에 너무 친해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부분은 야학 선생님들께서도 많이 걱정하셨고요.

Q. 그 영화는 상영이 됐나요?

상영했었어요. 서울국제영화제나 장애인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했었어요. 서울대학교에서도 상영했어요. GV시간도 가졌고요.

Q. 대형 영화관에 상영하고 싶은 욕심은 안 나세요?

영화를 통해 유명해지고 돈을 버는 순간 제 목적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건 인권에 대한 게 아닌 것 같고요. 명성과 돈을 위해 인권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그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욕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버려 나가는 게 훈련과정이라고 생각해요.


Q.
인권에 관심을 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가 여자잖아요. 소수자잖아요. 근데 그걸 몰랐어요. 제가 소수자라는 걸 깨닫게 순간부터 다른 소수자들의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진 것 같아요.
 

Q. 우리나라에 소수자들이 많고, 인권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어요. 성 노동자나, 장애인, 동성애자, 여성 등등, 우리나라 인권 점수를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4점이요! 왜냐면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권을 사유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권을 사유할 때조차도 국민과 민족의 틀을 못 넘는 것 같아요. 그 틀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의 인권만 생각하죠. 거기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인권을 사유하는 틀을 바꾸고 경계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본인이 차별받거나 인권 침해당했을 때는 언제인가요?

여자이기 때문에 많은 차별을 당했어요. 영화계가 이상하게 다른 분야보다 훨씬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런데서 오는 차별이 많은 것 같아요.

Q. 영화계의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타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자보를 붙인다거나 캠페인을 벌인다거나 하는 방법은 시도해 보셨나요?

그런 생각은 해봤어요. 일시적인 충격을 줄 수는 있지만, 지속되는 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나를 차별하는 사람들한테 그 행동은 차별이다.’, ‘폭력이다.’ 라고 명확하게 얘기해요. 연대라는 것이 거창한 게 아니라 나랑 비슷한 상황에 있는 후배를 다독여 주는 것도 하나의 연대라고 생각해요. 근데 우리가 실천을 거창하게 생각하다 보니까 실천이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저는 사소한 것에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서 그런 운동이 오래가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Q. 영화과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나 좋았던 점은?

가장 힘들었을 때는 제가 준비하고 싶은 작품이 있었는데 좌절됐을 때에요. 처음으로 좌절했을 때인 것 같아요. 좌절감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어요. 작품을 찍기 위해서 영화제에서 돈을 받기로 했었어요. 1년 안에 완성하는 조건이었는데, 1년 안에 준비할 수 없어서 포기해야 했어요.

좋았던 점은 같은 꿈을 꾸는 친구를 만난 거랑 영화를 배우면서 자유로워 진 거에요. 영화를 공부하면서 스스로 나는 영화를 하는 사람이니까 억압 되어있으면 안 된다고 설득하면서 자유로워졌어요. 또 개성 강한 친구들을 만나서 서로 이해하고 격려해 나갔던 게 큰 자산이 된 거 같아요.


Q.
다양한 장르나 주제의 영화들이 영화관에 있는 게 맞는 건가요? 우리나라는 대부분 상업영화만 스크린에 걸려요. 이런 현실에 대한 다솜씨의 생각이 궁금해요.

우선은 저는 영화계가 하나의 생태계라고 생각해요. 종 다양성이 확보 되어야 하죠. 기본적으로 모든 영화가 공정하게 관객을 만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립영화들이 주류 스크린에 걸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스크린에 걸린다고 해도 관객이 선호하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으로부터 외면받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영화계도 하나의 생태계니까 종 다양성이 확보 되어야 해요.

Q. 북한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1학년 때 전북영화제를 갔었는데 김동원 다큐멘터리 감독님의 회고전을 하고 있어요. 대표작 <송환>이라는 비전향장기수 할아버지에 대한 다큐를 보고 저는 그때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분단 됐구나하는 생각 했어요. 그전까지는 저랑 분단이랑은 무관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분단이라는 거대한 구조가 개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았어요. 그때부터 관심을 가졌어요. 우리 학교에 북한학과가 있잖아요. 수업 듣고 하니까 관심이 더 넓어졌어요.

Q. 한반도 영화제를 하신다고요?

제가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북한학과 수업을 여러 개 들었어요. 또 친구가 북한학과여서 둘이 나중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영화제를 하자고 얘기를 했었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한반도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룰 거지만, 평화의 개념을 한반도 평화를 넘어 세계 인류의 보편적인 평화를 얘기할 계획이에요. 영화제를 강원도에서 할 생각인데 정치적 문제가 있고 경제적 문제도 있고 군사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는 안 될 것 같아요.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죠.

Q. 한반도 평화의 주체는 누구인가요?

한반도의 평화라는 것이 탈북자 인권 포함되고, 군사문제, 증오, 대립, 혹은 인간을 뛰어넘어 동물이나 자연도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반도 평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선 생각이 더 필요해요.

Q. 북한을 주제로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많이 없는데, 혼자 그런 고민을 하고 있으면 외롭지 않나요?

외로울 때가 많아요. 저뿐만 아니라 북한학과 친구들도 외로워해요. 북한학과 사람들도 어떻게 보면 소수자잖아요. 친구가 소수자로서 외로움에 대해 토로를 하더라고요. 그때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더라도 외국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 얘네들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 많구나.’ 할 때 많이 위로가 돼요. 외로움이 심각한 문제는 아니에요.

Q. 다솜씨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직업을 갖고 싶다는 것보다 제가 한 공부를 공익적으로 쓸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싶어요. 아직은 추상적이에요.

Q. 곧 대선인데, 대선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말?

대통령은 주변인의 시선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그 사람들의 처지에서 한번 생각해 볼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해요. 대통령이 되실 분들은 대부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셨고 똑똑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주변인으로서의 경험을 안 해 보셨으니까 그런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