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인권 선언문

모든 사람은 평등한가? 사람마다 각자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법전에서 의견을 구하자면, 분명 인간은 평등하다. 헌법 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사람은 평등한가?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할지라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분명 주위를 둘러보면 키가 큰 사람과 키가 작은 사람, 잘생긴 사람과 못생긴 사람, 일류 대학에 다니는 사람과 전문대만 졸업한 사람, 부모로부터 외제차를 선물 받아 타고 다니는 사람과 등굣길 광역버스에서 1시간 30분을 서서 타고 다니는 사람.. 평등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개인이 가진 것이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노력에 의하든 운에 의하든지 여부의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 불평등하다. 누구에게나 많이 가진 것, 적게 가진 것,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 
200년도 더 전의 사람들도 분명 법 앞에 사람들이 평등하다고 말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로 채택된 인권 선언문은 제1조에서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여전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인간들조차, 200년이 흘러 태양계의 끝까지 행성탐사선을 보내는 시간 동안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조금도 메우지 못했다. 단 하나 법의 정신이 현실에서 발현된 지점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투표권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누구에게나 똑같이 1표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지난 수백 년의 시간 속에서 이러한 생각은 언제나 급진적이고 허무맹랑한 주장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국가에 기여한 바가 없으므로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25살이 되어도 너무 어려서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반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사람, 대학을 나온 사람은 2장, 3장의 표가 주어졌다. 마치 수능점수가 높은 사람에게 대학입학의 권리가 주어지는 것처럼 투표의 권리는 많은 사람에게 배제되었고, 더 많은 주식을 소유한 사람이 주주총회에서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투표의 권리는 차등적으로 지급되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성적순에 따른 대학입학, 지분율에 따른 의결권 행사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투표는 불평등하고 차등적으로 주어지는 권리였다. 

그 200년의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도, 이건희 회장도, 피겨여왕 김연아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모두에게 똑같이 1표가 주어진다는 사실에 그 누구도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개인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단지 투표권만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유일한 평등이다. 투표와 같은 수준의 평등한 행위는 오로지 죽음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투표 하면 세상이 바뀐다, 투표가 나의 삶을 바꾼다, 투표는 신성한 권리다 여러말이 나온다. 투표가 과연 세상과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지, 신성한 권리인지는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투표는 평등하다. 투표를 한 사람도, 하지 않은 사람도 이 미묘한 위화감을 잠시나마 느껴보는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