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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형마트에서 ‘자본주의의 완성’을 보다

런던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묻는다면 난 토튼햄 코트로드역과 옥스퍼드 서커스 사이에 위치한 막스앤스펜서(M&S: MARKS&SPENCER)를 권하고 싶다. 물론 런던에는 의미를 가질만한 장소들이 많다. 런던 아이에서 템즈강을 따라 런던 브릿지까지 이어지는 산책길인 퀸즈워크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이나, 잭 더 리퍼가 튀어나올 것 같은 런던의 굴다리 옆에 어김없이 자리한 펍들, 트라팔가 광장을 중심으로 걸어갈 만한 관광명소들.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장소는 런던에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나는 우리나라의 이마트, 롯데마트일 뿐인 막스앤스펜서(M&S: MARKS&SPENCER)를 영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와 M&S의 첫 만남은 개트윅에서였다. 나는 전날 저가항공의 이른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나는 오슬로의 버스터미널에서 밤을 꼬박 새야만 했다. 노르웨이의 공항 음식은 당연히 사치였고, 라이언에어의 기내 음식을 사 먹는 노르웨이 손님을 부러워하며 잠이 들었다. 개트윅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마쳤지만 버스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미리 예매해놓은 공항버스는 2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영국 입국심사가 노르웨이 거주허가증 때문에 싱겁게 끝나버린 탓이기도 했다.

배고프고 지친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MARKS&SPENCER SIMPLY FOOD. 그곳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형형색색의 제품들이 쌓여있었고,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 또띠아, 치킨이나 스테이크 등이 포장을 뜯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상태로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가격도 저렴해 보였다. 나는 세계에서 물가가 제일 비싼 그리고 재화의 종류가 적은 나라 노르웨이에서 곧 왔고 수많은 종류의 물건과 3£ for 2같은 묶음상품은 나를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영국의 대형마트들은 자본주의의 종착지를 보여준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본주의의 완성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동시에 너무나 잔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본주의의 치명적 매력

노르웨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슬로에는 몇몇 마트 브랜드들이 있는데 인구가 4백만에 불과한 노르웨이에서 영업하는 것만으론 수지를 맞출 수가 없어 보통 북유럽3국과 발트3국에 걸쳐 영업을 한다. 노르웨이 마트의 특징 중에 하나는 하나의 상품군에 한 두가지정도의 브랜드만 들여놓는다는 것이다. 인구가 적어 다양한 상품을 구비할 수 없는 것인지, 혹은 검소함이 미덕인 청교도적 전통이 남아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른다. 어쨌거나 제품의 수는 다양하지 않다. 하나 혹은 두 개 회사의 제품뿐. 아주 고급은 아니지만 유럽에서 가장 잘 팔리는 평범한 브랜드를 진열하고 몇몇 필수적인 재화는 ‘First Price’라는 저가 PB상품으로 제공한다. 평범한 가격에 괜찮은 맛, 저렴한 가격에 먹을 만한 맛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 선택에 실패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한두 개 파는데 맛없는 걸 팔리는 없으니까.


사실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나는 ‘First Price’를 주로 이용했지만 다른 제품들도 자주 구매했다. 처음 사보는 다른 제품들도 언제나 만족스러웠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두렵지도 않았다. 품질은 보증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노르웨이에서의 쇼핑은 언제나 무언가 부족했다. 한 마디로 재미가 없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마트에서 제공해 주는 제품을 살 뿐, 선택이라는 나의 주체적인 단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여러 제품 사이에서 고민하다 하나를 장바구니에 집어넣는 것도, 저번엔 이걸 먹어봤으니 다음에는 다른 브랜드를 먹어보는 것도 없었다. 나는 먹기 위한 구매가 아니라, 구매를 위해 구매하는 자본주의적 마인드를 잘 학습한 자본주의의 수제자였으니 지루한 것은 당연했다. 소박한 북방식 목조 건물, 4월에도 아직 풀이 나지 않은 황량한 길. 언제나 같은 내용물의 비닐백을 들고 걸어가는 나는 문득 배급을 받고 집에 돌아가는 소비에트 국가의 한 개인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 내가 시저 드레싱 종류만 20개에 달하는 영국의 슈퍼마켓에서 황홀감을 느낀 건 당연했다.

영국에서는 일단 어떤 마트를 가는지 부터가 선택이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신라면, 초코파이 등 판매하는 식품이 70% 이상 일치하지만, 영국의 테스코, 세인즈버리, M&S, ASDA 등의 유통체인은 자체브랜드 식료품을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대형마트에 납품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파생된 엄청난 권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근미래에 대형유통업체가 원재료부터 가공까지 후방통합을 이룰 것이라던 전략 보고서의 분석들이 이곳에서는 이미 현실화되어 있었다. 상당수의 식료품은 제조사 메이커가 아니라 자체브랜드를 달고 진열되어있다.

그런데 이 마트에도 ‘급’이 있다. 같은 종류의 제품, 예를 들어 ‘오렌지 주스’를 산다고 하면 고급 마켓인 M&S의 것은 비싼 대신 매우 맛있고, 대중 마켓인 테스코(Tesco)의 것은 저렴한 대신 그저 그런 맛이다. 각 마트들이 보유한 재화가 다르기 때문에 각기 내세우는 대표제품이나 프로모션이 있어 이곳 저곳 가는 재미가 있다. 친구들을 만나면 세인즈버리에서는 뭐가 맛있고, M&S에서는 이게 좋고 하는 류의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마트에 들어가서도 선택의 범위는 다양하다. 닭 한 마리는 분절되고 가공되어 다양한 패키지로 선반에 등장한다. 닭 가슴, 윙, 다리는 잘라진 채로 훈제, 바비큐 소스, 동양식 향신료에 버무려져 스튜, 로스트, 찜, 구이, 볶음밥 등으로 조리되어 수십 가지 상품으로 변모하여 포장을 벗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날 수 있다. 닭 한 마리가 분절되고 온갖 양념과 만나듯 대중들의 욕구는 가능한 분절되어 원하는 상품이 없어서 구매를 포기하는 실패를 방지한다.

조리식품 아니라 재화별로 큰 차이가 나기 어려운 파스타면도 20개 내외의 브랜드가 진열되어 있다. 푸실리만 해도 15가지. 어떤 제품이 좋은지 오늘 선택의 결과도 잘은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의 쇼핑은 언제나 행복했다. 난 슈퍼마켓에 가는 것이 진짜로 좋았다. 그곳은 언제나 천국이 현실 속에 자리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구경만으로도 좋았고, 다 사 먹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하나의 제품을 사더라도 이 수많은 제품 속에서 하나를 고른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청크가 씹히는 갓 짜낸 것 보다 맛있는 오렌지주스와 1000원 짜리 닝닝한 오렌지 주스를 한 곳에서 살 수 있는 자본주의를 찬양한다. Long live M&S.

 

자본주의의 잔인함

최대한 나눌 수 있을 만큼 소비자의 욕구를 나누어 그에 대응하는 재화를 제공해 주는 영국 대형마트를 보며 나는 자본주의의 완성이란 이런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이 너무나 짜릿한 만큼 잔인하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별 생각 없이 구매한 ‘시저 샐러드 드레싱 네 병.’이 자본주의를 설명하고 있었다.

여러 명의 친구들과 각기 다른 요리를 해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 어느 날. 내가 맡은 종목은 닭가슴살 시저샐러드였다. 근처 테스코의 시저 샐러드 드레싱은 종류가 20개에 육박했다. 문제는 이 모두가 너무 멀쩡하게 생겼다는 것, 그리고 싼 것은 한 병에 천원에 불과하고 비싼 것은 6천원이나 한다는 것이었다. 가격은 선형함수의 형태를 그리며 촘촘히 분포하고 있었다. 구성성분도 내용물도 비슷해 보여 혼란스러웠지만 어차피 음식을 많이 장만해야 했기에 나는 병 값도 안 나올 것처럼 싼 것부터 꽤 비싼 것 까지 네 병을 골라 구매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일단 네 병을 저렴한 순서대로 시식했다. £0.59, 대략 우리나라 돈으로 800원 정도 하는 저렴한 드레싱은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 같은 맛이었다. 다음 것은 먹을 만 했지만 여전히 맛이 없었고 평범한 시저샐러드, 그리고 식당에서 먹는 것 같은 맛있는 시저샐러드를 차례로 경험했다. 각 병의 가격과 맛은 너무나 절묘했다. 20펜스 차이의 상품은 20펜스 수준의 맛의 차이가 났다. 맛은 돈이었다. 혹은 그 역이거나.

드레싱에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도, 혹은 돈이 얼마 없어서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가격대마다 촘촘하게 박혀있는 수많은 재화들이 상품을 장바구니로 이끈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타협을 이룰 수 있는 모든 가격에 각기 다른 샐러드 드레싱이 스크럼을 짜고 사람들이 구매를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판매자와 소비자의 효익 모두를 만족시켜 효율의 극대화를 달성하는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독점따위 없고 돈 낸 만큼의 맛(효익)을 보장하는 효율이 끝장나는 교과서같이 바람직한 자본주의.

그런데도 난 영국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대형마트에 혐오를 느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싼 게 좋은 것이라는 건 너무나 당연하게 습득하고 있었다. 새삼 충격을 받을 이유는 없었지만 먹는 문제여서였을까. 나는 이 맛없는 샐러드를 먹는 한 가족의 저녁 풍경을 생각했다. 계층이 샐러드에까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회. 제품의 수만큼 촘촘한 계급. 노르웨이에선 모두 비슷한 맛의 샐러드를 먹었다. 적어도 집에선 같은 수준의 것을 먹었다. 그런데 이 화려한 도시에서 누군가는 정말 먹을 수 없는 맛의 샐러드를 매일 먹고 있는 것이었다.

다양한 제품 수의 저주.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 체 하지만 결국 돈이 없어서 비싼 걸 못 먹고 못 입을 뿐이다. 수없는 선택이 눈앞에 있다는 환상은 결국 지갑 안의 총알이 내 선택을 결정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잊게 만든다. 어쩌다 한 번씩 최고급품을 구매해 선택이 내 손에 있다는 환상을 강화시킬 뿐이다. 하나의 괜찮은 제품만 제공되는 사회보다 크게 나은 사회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때 들었고, 노르웨이가 문득 그리워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영국의 대형마트를 그리워한다. 유럽에서 살고 싶은 도시를 고르라고 한다면 여전히 런던을 고를 것이고 그 이유 중에 M&S가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나는 싫증을 쉽게 내는 실증주의자라 노르웨이의 단조로움을 견디지 못할 때가 있다. 그리고 서울의 나는 영국 테스코(Tesco)가 운영하는 홈플러스를 가장 좋아하고, 다국적기업의 새로운 제품들이 매대를 더 다채롭게 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대형마트와 자본주의의 잔인함을 알고 있지만, 좋은 걸 아니 길들여 진 것을 어쩌겠는가. 소시민인 나는 돈 잘 버는 사람이 되어 모든 선택지가 내 지갑 안에 있는 사람이 되길 노력할 뿐이다. 맛없는 샐러드를 먹는 가족의 저녁식사를 최대한 마음 속에서 지우면서.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12 Comments
  1. Avatar
    Naya Tipani

    2013년 1월 14일 01:13

    ……………. 인간이 배우는 것중에 말재주를, 좀 길게 늘여놓은 글 같다. 변명, 변호하기에 쓰이는 글도 있고 좀 더 잘써야하는 글이 있듯이 ………… 비단 영국이 아니라 어떤 나라에서도 똑같이 존재하는 가장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을 … 그냥 길게 쓰잘 데 없이 길게 늘여놓은 글이다.

    • Avatar
      하모니

      2013년 1월 15일 01:39

      댓글공감100%

  2. mixsh

    2013년 1월 14일 01:29

    1월 14일 믹시 메인에 선정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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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payaji

    2013년 1월 14일 07:02

    나중에 한국 들어가실 때, 일본에 한 번 들러서 가시길 권합니다.
    자본주의 슈퍼마켓의 끝이 어디인지, 일본의 대형 슈퍼를 한 번 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군요.
    영국과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추천해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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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s

    2013년 1월 14일 07:51

    그렇군요. 다양한 상품이 나와서 무조건 좋아라 하고만 있었답니다. 결국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맛 없는 것을 먹어야 하고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을 갖고 만족해 하겠죠. 그렇지만 문득 고급 레스토랑엔 같이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마트엔 누구나 들어가서 고를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쓴이님 덕분에 이러저러한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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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원

    2013년 1월 14일 13:26

    좋은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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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2013년 1월 15일 18:46

    저는 naya tipani 님과 의견이 좀 다릅니다. 이 글에서 식료품 코너에서 관찰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위력이 영국 고유의 특성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도 않고, 글쓴이의 거주 경험이 시기적으로 인접해 있던 노르웨이의 마트와 영국 마트간 차이가 이 글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의미가 상당하기도 한 만큼 영국의 대형마트를 이 글의 주제를 풀어나가는 데 주 소재로 쓴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짧지 않은 영국 생활 경험이 있어서 제목을 보고 흥미를 느껴 읽게 된 글인데 그 내용이 꽤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글쓴이가 언급한 노르웨이 마트의 풍경과 비슷한 것을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제 무지와 무신경의 소치인지 모르겠지만 영국에 살며 수없이 장을 보는 동안 전 맛없는 싸구려만을 먹어야 하는 가족의 형편을 떠올리고 그에 공감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동일한 현상(같은 품목에 대해 열댓개의 브랜드상품이 진열되어 있는)을 관찰하며 제가 더 열중했던 생각은 우리가 흔히 상술이라고 부르는 마케팅 전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글쓴이가 제시한 관점은 저에게는 새로웠고, 설령 그것은 제 생각이 얕기 때문이며 이것이 전혀 새롭지도 참신하지도 않은 관찰이라 할지라도 기 현상에 반복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쓴이 역시 ‘깨달은 바’ 있으면서도 애써 싸구려에 입맛을 길들여야 하는 사람들의 형편을 애써 외면하듯이 현실을 살며 진실을 외면하고 일상과 타협하려는 우리에게 새로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의 중요성을 믿기 때문입니다. 줄줄 늘이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처음 읽을 때 느끼지 못했지만 글이 늘어진 부분이 있었나 하고 재삼 읽어봤습니다만 글 짜임도 괜찮은 글이라고 저에게는 느껴지네요.

    한마디로, 저에겐 구성도 내용도 꽤 좋은 글이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느끼고 지나가도 될 일이지만, 제가 남 눈치를 심하게 보고 사회적 동의를 갈구하는(!) 유약한 성격이 돼 놔서 그런지 막 읽고 좋다고 생각한 글에 꽤나 혹독한 비판이 달려 있는 걸 의아하게 여기는 마음이 좀 지나쳐 버렸습니다. 혹시 naya tipani 님이나 그 댓글에 큰 공감을 표하신 하모니 님께서 이것을 보시게 된다면, 그리고 제 의견에서 허점을 찾으신다면 재반박문을 써 주시면 매우 기쁠 것 같습니다. 제가 알지 못했던 것을 지적해 주시면 좋은 공부가 될 것인 바, 감사히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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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크샤샤

      2013년 10월 3일 01:44

      좋은 의견인 것 같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시각차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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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RM.

    2013년 1월 17일 11:47

    자본주의가 옳으냐 그르냐 가치판단 이전에 가격에 따라 따라 상품의 질을 차등화시켜 배열하는 것, 굳이 대형유통자본들만이 아니라 동네 재래시장에만 가도 이뤄지는 풍경입니다. 경제경영 전공자는 아니지만, ‘소비자 소득별 수요세분화 또는 가격차별화’란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나요. 자본주의 비판까지 나아가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소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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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머츄어

    2013년 2월 9일 04:20

    소비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니 노르웨이가 단조롭게 느껴지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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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다

    2013년 8월 4일 20:01

    공산주의 아니고서야 능력 되는만큼 누리는게 왜 혐오스러운지 이해불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자본주의 기반의 사회적 계층에 강한 반감이 있네요. 그러면서도 본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위 클래스에 들고 싶어하는 이중성. 지불한 만큼의 값어치를 누리는게 왜 먹는걸로 정 없이 구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나요. 한국처럼 비싸지만 제값 못하는 제품과 싸지만 가격 이상 하는 제품이 섞여 있어 약삭빠르지 못하면 호구 되는 문화가 저는 더 혐오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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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크샤샤

      2013년 10월 3일 02:02

      글쓴이는 자본주의 체재 아래 ‘빈민도 부민도 결국 똑같은 사람이다’, ‘사람은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한다’라는 논리에서, 부의 계층에 따라 갈려진 자본주의 사회의 냉정한 차별이 불러오는 ‘인간 사회의 따뜻함’의 부재를 ‘안타까움’이란 말로 표현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혐오’라는 표현을 사용한 글쓴이에에 대한 당신의 의견에는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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