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여자들은 너도 나도 레깅스를 신었고, 2012년엔 너도나도 하의실종을 했다. 그에 비해 남자들의 패션은 유행이 쉽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들의 패션과 패션마켓은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2012년만 해도 남성 잡지 5권이 새로 런칭했고, 새로운 남성 편집 매장이 생겼다. 바야흐로 남자패션 전성시대인 것이다.

 남자들의 옷은 예로부터 엄마와 아내의 몫이었다. 패션에 관심 있는 몇 명의 소수를 제외하곤, 엄마나 아내가 사주는 옷을 입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의 패션감각은 거진 엄마와 아내의 센스와 비례하곤 했다. 백화점에서 직원들의 낯간지러운 서비스를 받거나, 보세가게에 들어가서 패셔너블하게 차려입은 형님들과 마주하기가 영 부담스러웠던 것. 하지만 2008년도에 자라와 유니클로 등 해외 SPA 브랜드가 국내 런칭을 하고, 인터넷 쇼핑몰이 붐을 이루면서 남자들이 옷을 마주하는 자세가 조금씩 달라졌다. 양복을 위주로 한 신사정장 브랜드나 어린 학생들이 주 소비자 층인 영캐주얼 브랜드로 양분되어 있던 기존 남성복 브랜드와 달리, SPA 브랜드들은 베이식한 니트, 브랜드 로고가 박히지 않은 티셔츠와 같은 깔끔한 스타일부터 트랜디한 디자인의 옷까지 다양하게 구비하여 20대남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멋을 부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부담없는 가격, 다양한 디자인, 자유롭게 옷을 착용할 수 있는 SPA 브랜드덕분에 남자들은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이것저것 깐깐하게 따지는 능동적인 소비자로 변했다. 당장에 유니클로만 가도 “이 니트 어깨 부분이 너무 이상하지 않아? H&M이나 가볼까?” 하며 친구들과 열심히 의견을 나누는 남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도 예외는 아니다. 모델 착용샷을 통해 제품을 보여주는 방식인 인터넷 쇼핑몰은 잘 입고 싶지만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모르는 초보자들에게 훌륭한 가이드 북이 된다. “옷을 잘 입고 싶긴한데, 방법을 잘 몰랐을 땐 쇼핑몰 모델이 입은대로 따라서 옷을 입거나 거기서 응용하거나 그랬어. 자꾸 그러다보니 옷 입는 것이 재밋고 옷차림에 더 신경을 쓰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더 좋은 옷, 독특한 디자인같은 것도 찾게 되는 것 같고.” 패션에 관심없었다던 공대생 김정민(23)씨가 말했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한 몫 했다. 자신을 꾸미는 것이 하나의 ‘능력’으로 평가 받고 있고, 연예인들의 패션이 대중들에게 노출되면서 패션에 관심이 없던  없던 남자들도 ‘저렇게 한 번 입어 볼까?’하는 심리가 커진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여자들의 훈남 기준에는 ‘패션 스타일’이 꼭 들어가 있으니 남자들의 입장에서 패션에 신경 쓰는 것은 그들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요소 중에 하나 인 셈이다.

‘단정하고 호감가게 입는다’의 기준이 사회적으로 상향되고, 옷을 부담스럽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패션에 신경 쓰고 관심을 갖는 남자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남성 소비자를 대하는 시장의 자세는 세분화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남성복 세션을 늘린다’라는 명목 하에 양복 정장 수만 신경 쓰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남자들의 세련된 ‘간지’와 ‘취향’에 초점을 맞춘다. 롯데 백화점에서는 2012년에 한 층 전체를 남성 ‘패션’에만 초점을 맞춘 남성 전문관을 열었고, 신세계 강남점에서는 패션뿐만 아니라 남자들을 위한 음반, 책 등 전반적인 문화를 소개하는 ‘맨 온더 분’이라는 편집매장을 런칭했다.사정이 그러니 기존 패션 브랜드도 남자들을 고객층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들한테 인기 많은 구두 브랜드 ‘수콤마보니’는 이제 남성화도 만든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양복이나 신사화만 소개해 놓은 것도 아니다. ‘맨 온 더 분’의 경우 펜필드와 아크네 같은 젊은 브랜드를 대상으로 하고, 요즘 구두 브랜드들은 남성들을 위한 바이커(biker) 부츠도 출시한다. “원래부터 스트릿 패션이랑 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접할 데가 많이 없었어요. 매번 일본 잡지를 사 읽곤 했는데, 거기에 나온 브랜드들을 입어나 보고 싶어도 한국에선 구해 입을 방법이 많이 없으니까 아쉬웠어요. ”스트릿 패션을 좋아하는 이민석(가명, 25살)씨가 말했다. “제가 지방에 살아서 가 볼 기회는 많이 없지만 저번에 서울에 갔을 때 ‘맨 온더 분’에 갔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스트릿 패션이나 그런 문화들이 보기 편하고 고급스럽게 디피되어있어서 좋았어요.”

소비자가 늘어나고, 시장 층이 두꺼워 지면 미디어가 관심을 가진다. 패션을 중요시 하고, 패션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충분히 생겼다 싶으면 이제 패션지가 창간된다. 수익에 절대적으로 민감한 잡지의 경우, 충분한 독자층이 생성되어야 꾸준히 발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GQ>,<에스콰이어>, <아레나 옴므>로 3파전을 벌이던 남성 패션 시장에 2009년에 <루엘>이 창간되고 작년엔 <로피시엘 옴므>가 발행되더니, 올해는 <레옹 코리아>, <젠틀맨 코리아>, <Geek>, <그라치아 코리아> 네 권과 계간지<GQ Style>도 새로 발행 되었다. 다섯 권의 패션 잡지가 1년 새에 발행되었다는 것은 텍스트 매체의 불황 속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제 남자들이 멋스러워지기 위한 인프라가 많이 구축됐다. 쉽게 쉽게 접할 수 있는 SPA 브랜드, 인터넷 쇼핑몰, 편집매장, 잡지….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복잡한 브랜드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남자들은 길을 잃기 쉽상이다. 유행하는 스타일을 무조건 따라하는 것, 자기 개성을 드러내기 보다 깔끔하게, 상식적으로 입으라는 사회의 요구에 억지로 맞춰입는 것이 바로 그 단적인 예. 그렇다면 진정한 ‘멋쟁이’가 되기 위해선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이 전략에 대한 단서는 BC 3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형님께서 마련해 두셨다. “네 자신을 알라!” 바로 자기 자신을 파악할 것. 내면과 외면 모두. 아무리 타이트한 스키니진이 유행이라도 도서관 귀퉁이에 앉아서 소설책을 읽기를 좋아하는 남자가 입으면 말짱 도로묵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