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은 ‘학문을 손에서 놓다’라는 뜻이다. 과연 20대들은 방학을 방학의 의미 그 자체로서 보내고 있을까. 오늘날 20대가 보내는 방학은 잠시 학문에서 손을 놓고 자기 충전을 한다는 원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방학은 그저 입시를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준비하는 기간이다. 고함20은 이번 기획을 통해 예비 대학생, 취준생 등 원치 않는 방학을 맞이하는 20대의 방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20대는 왜 방학을 즐기지 못하는 걸까.

2월. 1년 12달 중에 2월만큼이나 애매한 달이 있을까. 계절상 겨울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봄이라 하기도 그렇고 무언가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기엔 다른 달보다 3일이나 짧고. 대학생의 방학도 생각해 보면 2월처럼 모호하고 불확실한 시기다. 치열한 수강신청으로 만들어낸 시간표처럼 딱딱해야 될 일정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할 일 없이 예능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도 뭔가 찝찝함이 남는다. 방학인데 뭐 어때하면서 자위해 봐도 마음 한구석에선 ‘무언가 해야 하는데.’ 와 같은 압박감이 떠나질 않는다.
 

지난 방학들을 돌이켜 보자.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잘 논다고, 막상 수능이 끝나고 자유라는 이름의 잉여로운 시간이 생기자 뭘 하면서 보내야 할지 고민했던 기억 하나씩은 갖고 있을 거다. 대학생이 되고 처음 맞이한 방학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선배들한테 조언을 얻고 싶어서 학교 커뮤니티에 ‘n 학년 방학,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라고 글을 올려 봐도 댓글은 항상 뻔하다. ‘연애하세요, 여행 많이 다니고 책 많이 읽으세요.’ 아니면 ‘알바하세요. 봉사활동이나 영어 공부는 어때요?’ 식의 댓글들. 누가 그걸 몰라서 못하나. 여행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모으기 위해 알바를 구하면 사장님들은 6개월 이상 할 거 아니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는 현실 앞에서 힘이 쭉 빠지는데.
 

뭘 할지 몰라 고민하는 대학생들을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물쭈물 알바해보고 한 일주일 내일로 갔다 오고 하는 와중에 방학은 몇 번 지나가고 어느새 4학년이 되어 있다. 대학 생활의 마지막 방학을 보내고 있는 이들은 어떤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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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졸업을 앞둔 이지민 씨(여·27)는 “그동안 재학생일 때도 불안하긴 했지만 이제 졸업하면 소속감이 없어지고 백수가 된다는 생각에 더욱 불안하다.” 라고 마지막 방학을 보내는 심정을 밝혔다. 학교에서 토익 강의를 들으며 토익 스피킹 공부도 하는 그녀는 다른 건 더 준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내가 취직하려는 디자인 계열 회사에서는 구직자가 지금까지 했던 작업들을 보여주고, 자신의 아이디어나 툴 다루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요구하기 때문에 지금은 이 세 가지를 준비하는 데만도 벅차다.” 라고 말했다.
 

인턴을 하면서 마지막 방학을 보내고 있는 박민희 씨(가명·24)는 상대적으로 불안감이 덜해 보였다. 인턴이 바로 정규직으로 연결돼서 취업에 대한 부담감이 덜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바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원래 정규직은 면접이 인성, PT, 토론 세 개로 구성되는데 인턴은 PT 면접만 보고 뽑고, 인턴 하는 동안 토론 면접을 봤다고 쳐준다. 그래서 인턴 끝나면 두 개는 통과되어 있고 인성면접만 봐야 해서 완전히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다른 구직자들보다는 부담감이 덜한 편이다.” 라고 말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는 사람들과 달리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학점은 다 채웠지만, 졸업을 유예한 허수정 씨(여·27)는 “사실 나는 사범대생이라 더욱 방황이 심했다. 학기 중에는 강의 듣고 과제 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는데 어느 순간 졸업이 다가왔다. 그때 내가 뭐 했나 돌아보니 정말 한 게 없었다. 교육학과이다 보니 과에서도 취업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그 때문에 취업에 대한 정보나 소식은 더더욱 접할 수 없었다. 일단 임용고시는 안 보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일도 없어서 토익 공부를 하면서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방황 중이다.” 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불안감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하기 전에 유럽 여행을 계획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경우도 있었다. 성신여대 윤리교육과에 재학 중인 기이수 씨(여·23)는 유럽 여행을 가기 위해 알바를 하고 있다. 교사가 될 거면 빨리 졸업하고 임용고시 준비에 매진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질문에 “본격적으로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며 운을 뗐다. “지식적인 측면에서건 인격적인 측면에서건 남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내가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험’만큼 많은 가르침을 주는 ‘좋은 선생님’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가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젊었을 때 가는 여행은 준비하는 과정, 가는 기간, 갔다 오고 나서 느끼고 배우는 점이 있고 이때 체득한 것들이 나중에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정진하는 이,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것처럼 앞길이 아득하기만 한 이, 사회로 진출하기 전에 많은 경험을 하려는 이 등 20대들이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방학을 보내는 모습은 다양했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더 알차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며 고민하지 말자. 왜냐고? 방학은, 특히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방학은 애매한 시기지만 애매하다는 건 무얼 해도 된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