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학은 ‘학문을 손에서 놓다’라는 뜻이다. 과연 20대들은 방학을 방학의 의미 그 자체로서 보내고 있을까. 오늘날 20대가 보내는 방학은 잠시 학문에서 손을 놓고 자기 충전을 한다는 원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방학은 그저 입시를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준비하는 기간이다. 고함20은 이번 기획을 통해 예비 대학생, 취준생 등 원치 않는 방학을 맞이하는 20대의 방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20대는 왜 방학을 즐기지 못하는 걸까.


“The time you enjoy wasting is not wasted time.” 20세를 대표하는 지성인 중 하나인 버트란드 러셀이 했던 말이다. 내가 즐겼던 ‘잉여’ 시간은 결코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너무 낭만적으로 들리는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왜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가? 특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방학에 말이다.

 





사진 출처: ebn. ‘계획있음’에 해당되는 96%에 주목해보자.



방학에는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는 편견, 실로 만연하도다



“시험(기말고사)이 끝났음에도 대학생들의 방학은 분주하기만 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두 달 전 온라인 기사를 들여다보자(2012년 12월 29일자 위키트리). 취업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끙끙대며 각종 영어 시험과 자격증 공부에 더해, 성적 만회를 위해 계절 학기까지 다니려니 학기와 방학의 구분이 없을 정도라는 서문은 그럭저럭 무난하다. 뒤이어 “하지만,”에서 무슨 반전이 있는지 궁금했는데 그야말로 “알고보니… 경악”, “충격”이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득점이라는 수치가 아닌 자신만의 스토리, 남들과 차별화를 줄 수 있는 ‘경험’이다.”라고 시작되는 본론 서두부터, 방학 때 어떤 대외활동을 하면 좋은지 소개하는 데에 남은 분량을 전부 할애하고 있다.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다: “개인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성과를 기업의 힘을 빌려 성취하고, 나만의 커리어와 역량을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외활동은 대학생들의 방학 필수코스가 되고 있다.”



이런 기사는 곳곳에 넘쳐난다. “대학생 겨울방학, 이것만은 꼭!“이라는 기사(파이낸셜뉴스 2012년 12월 20일자)에서는, 계획 없이 어영부영 방학을 보내서는 안 된다며 ‘알찬’ 방학 보내기 방법을 소개했다. 1위인 아르바이트에 이어 배낭여행, 봉사활동, ‘스펙 쌓기의 기본’인 다양한 대외활동, 자격증 따기 등, 이제는 줄줄 외울 지경인 흔하디흔한 방학 ‘매뉴얼’이다.



물론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제시된 매뉴얼을 선택적으로 취하여 자신만의 방학 스케줄을 짜는 대학생이 있을 것이다. 학기 중에 시간에 쫓겨 미뤄둔 자격증 공부가 있을 수 있고, 방학에는 꼭 여행을 가기 위해서 꼬박꼬박 저축을 해온 20대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딱히 그렇지 않다면? 굳이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는데 떠밀리듯 꾸역꾸역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는 거라면? 그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할까 vs 하지 말까’의 문제를 건너뛰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만 주목한다니.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시간이 방학인가.



잉여의 재발견,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현 사회를 가장 적확하게 반영하는 단어 중 하나인 ‘잉여’를 복습해 보자. 본래 이 단어는 요즘 같이 ‘쩌리’나 ‘찌질’, ‘백수’ 등과 유사한 의미로 쓰이지 않았다. 칼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노동하여 얻은 가치라는 뜻으로 ‘잉여 가치’라는 말도 쓰지 않았던가. ‘잉여’의 사전적인 의미는 ‘쓰고 남은 것’, surplus(나머지)에 가깝다. 이 의미를 적용하면, 방학이란 학기 중에 학업과 대외활동 등에 쓰고 남은 시간이 된다. ‘남는 시간’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엇’은 what(특정한 무언가)이 아니라 anything(아무거나)이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이쯤에서 정희재 씨의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라는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책의 첫 글이 「왜 우리는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걸까? – 그냥 푹 쉴 권리」다. 제목만 들어도 거북한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다. 이를 비롯해 「너무 열심히 산 게 문제였다 – ‘더 노력해라’라는 말을 거부할 권리」, 「한없이 지루했던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 – 심심할 권리」등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제목들이 한가득 눈에 들어온다.



“시대의 유행을 쫓아가지 않으면 뒤처지고 낙오될 것처럼 위협하는 자본의 부추김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소신이 없다면 늘 불안, 초조, 불만족에 시달리며 살 수밖에 없다. 우리를 얽매는 수많은 의무가 있기에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는 배짱이 필요하다.” (프롤로그 「괜찮아, 대세에 지장 없어」중에서)



그렇다.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상당히 정형화되어버린 요즘이다. 방학에는 꼭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각종 언론의 부추김과 함께 눈덩이처럼 불어나버린 것이다. 현재 20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경쟁 사회에서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기 때문에. 배낭 여행마저도 의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방학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물음 안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무능력하거나 나태하다고 비난하려는 의도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가 무(無)의 상태로 가만히 누워있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규정한 기성 가치들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방학 계획이 “하루 종일 게임하기”나 “만화책 읽기”여도 사실 딱히 상관없다는 말이다. 어김없이 플래너를 펼쳐 들고 조바심에 어쩔 줄 모르는 대학생들이여, 그대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추천한다. 뻔하디뻔한 방학 ‘매뉴얼’을 거부해도 괜찮다. 대세에 지장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