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심에 서라!” “정상에 올라라!” 확실히, 가장자리는 밀려났다. 주변부로 떨어져나간 볼품없는 사람이라고 놀림 받기 일쑤다.
공부든, 직장이든, 심지어 여가 취향까지도 말이다. ‘대세’가 중요하고 ‘중심’이 각광받는 요즘, 일부러 구석을 찾는 이들은
누구인지 알아봤다. 스스럼없이 구석에 서는 이들, 누구의 관심이 없어도 조명 받지 않는 곳에 서는 이들이 있다. 서울의 구석을
비롯해, 수도권이 아닌 지방 지역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사회의 약자들을 꾸준히 찾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조명해 봤다. 이들은 왜
구석을 찾으며, 구석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모두 학교에 간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그리고 대학. 여기에는 어떠한 제외도 없고 다른 방안도 없다. 이것이 사회에서 유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직된 공교육은 교육적 가치보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인재를 찍어내기 위한 과정으로 전락했다. 한국의 교육비민간부담률은 3.1%로 OECD 평균(0.9%)의 세배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수치의 증명이다. 공교육에 실망한 일부는 새로운 방식의 교육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구석’으로 나아갔다.

성미산 학교

성미산 학교는 서울 한가운데에 있는 ‘구석’이다. 서울 한복판에 ‘구석’이 왠말이냐 싶겠지만 아스팔트 도심과 명백하게 다른 그 곳은 ‘구석’이 맞다. 구석답게 성미산 학교가 있는 성미산 마을은 지도에 보이지 않는다. 행정구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식으로 불러보면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1동쯤 되겠다.
 

성미산 학교의 특징은 학교가 마을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동네 뒷산인 성미산을 중심으로 1천여 명의 주민이 공동육아를 계획했다. 한푼두푼 모아 어린이집을 만들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돌보았다. 아이들이 자라다보니 학교가 필요했고 그래서 성미산 학교가 탄생했다. 지리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커뮤니티에 의해 탄생한 마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이 살아도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성미산일수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의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성립된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성미산이라는 공동체적 성격을 유지할수 있었던 비결이다.

성미산 학교는 마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마을에서 마음껏 뛰놀수 있는 이유도 선생님이 곧 동네 어른이기 때문이다. 임용고시를 거쳐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사 대신에 아이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육에 참여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마을 뒷산인 성미산에서 생태교육을 받고, 선생님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지금도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비록 아직도 부족하고 대학진학 등의 현실적인 갈등도 많지만 성미산 학교의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풀뿌리 사회지기 대학교

대안학교가 꼭 초, 중, 고등학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육이 활발한 미국의 경우 혁신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들이 여럿 있다. 명문대학으로 유명한 아이비리그처럼 크지는 않지만 교양학부(Liberal Arts College)라 불리는 학생 수 1000~2000명 정도의 작지만 알찬 대학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안대학에 대해서는 불모지다. 그동안 대안학교는 유행을 타고 번져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었지만 대학에 대한 시도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풀뿌리 사회지기 대학은 한국의 몇 없는 대안대학 중 하나다.

풀뿌리 사회지기 대학은 기존의 획일화된 교육을 제공하는 일반대학과 시작을 달리한다. 풀뿌리라는 이름처럼 풀뿌리 정신을 담은 교육, 지역사회를 살리고자 하는 대학이다. 배우고자 찾아오는 이는 ‘배울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40여 명의 ‘가르칠 이’가 하나가 되어 토론하고 학습하며 풀뿌리로 자라난다. 1:1로 배우면서 개개인이 자신만의 교육과정을 만들어 간다. 인문사회를 배울 수도 있고, 지역사회에 일하기 위해 사회지기 과정에 들어가기도 한다. 영화나 문학 쪽으로 가기 위한 길찾기 과정도 있다.
 

학교의 ‘구석’은 공교육의 대안을 찾는 이들이 만든 장소다. 그러나 이 구석이 언제까지나 구석으로 남지는 않는다. 현재 많은 대안학교들이 비제도권 고급사립학교로 변질되었다. 대안학교가 성공을 거두면서 고학력층, 부유층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의 목적과는 다르게 대학진학 위주로 가는 대안학교도 생겨났다.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는 비인가 대안학교는 ‘구석’의 구석으로 밀려나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또 다시 ‘구석’을 찾아나간다. 더 나은 대안을 찾아, 대안에서 대안으로 나아가며 교육에 대해 고민한다. 교육은 흔히 백년대계라고 한다. 경쟁으로 싸고 쉽게 인재를 만든는 것, 그것이 과연 교육이라 할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