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기온이 영하 3도를 기록한 15일.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역 주위에는 여전히 많은 노숙인들이 길거리에 나와 있었다. 역사 밖 계단에서 한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자가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담배 값을 구걸했다. 그 뒤로는 한 노인이 술에 취해 눈이 풀려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서울역 지하도에는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노숙인들을 위한 합숙소가 설치되어 있다. 길에서 잠을 청하는 한 노숙인에게 합숙소에서 잠을 자지 않느냐고 물으니 다음과 같이 답한다. “거긴 사람이 너무 많아. 너무 답답하고 복잡해.”

합숙소가 있다고 해서 모든 노숙인들이 그 곳에서 자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는 자기 집이 있는데도 지하도에서 잠을 청한다는 여성 노숙인도 있었다. “집도 있어. 가족도 있고. 시누이도… 근데 못 살아. 더는 묻지 마. 여기가 추워도 마음은 편해.”

“가장 힘든거요? 밥이야 급식 나와서 주니 얻어 먹고, 잠은 뭐 지하도에서 침낭 덮고 자면 그럭저럭 잘만 한데. (문제는) 희망이 없는거죠. 가서 막노동이라도 해야되는데. 허리가 아파서 일도 못해요. 일자리도 없고. 나이 먹고 힘은 빠지는데 돈 벌 데는 없어지니 희망이 없죠.” 백발이 성성한 59세 노숙인의 한탄이다. 그는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붉은 눈시울을 감출 수는 없었다. 
기자가 만난 많은 노숙인들이 배고픔보다 심각한 마음의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16년간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며 매주 무료 급식을 진행해 온 용산노숙자선교회 최성원 목사(68세)는 많은 노숙인들이 정신적 고충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010년 동국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하여 서울, 경기, 부산 지역 노숙인 408명을 대상으로 노숙인의 정신건강 실태에 대해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30.6%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21.7%의 응답자들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노숙자들이 자주 상담을 요청하러 온다는 최 목사는 열심히 상담을 해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최 목사는 최근 정치계와 시민사회가 복지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노숙인들의 정신적 고통 문제까지는 신경쓰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정부에서 나서질 않으니 저희 같은 사람들이라도 나서서 도움을 주려는거죠.”

밤이 되자 밖에 나와 있던 노숙인들은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지하도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또 일부는 역 바깥에서 삼삼오오 모여 소주병과 자원봉사자들이 건네 준 컵라면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큰 소리로 말싸움을 하며 서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도 보였다. 조금 전 인터뷰를 진행했던 59세의 노숙인이 이번에는 술냄새를 풍기며 다가왔다. 더 할 말이 있다는 거였다. 그의 말은 10분이 넘도록 이어졌다. 마지막 말이 여운을 남겼다. 
“가끔씩 자원봉사 오시는 분들 중에 목사님 같은 분들이 ‘술 먹지 마라, 대체 뭐하는 거냐’ 이렇게 핀잔을 주는 분들이 있어요. 그게 그렇게 고마워요. 누가 술 먹지 말라고 한 마디씩 해주는 게. 나한테 관심을 주는 것 같아요. 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