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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중순부터 말까지, 여러 대학에서 학위 수여식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전기 졸업식이 한창 열리게 마련이다. 졸업식은 필참이 아니기 때문에 취업을 하지 못해 사람들과 마주치기가 꺼려져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 학부생도 있다. 또한 형식적인 졸업장쯤이야 나중에 시간날 때 과사무실로 찾아가서 받아오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참석하지 않는 학부생 역시 존재한다. 10대 시절 때처럼 밀가루로 범벅된 졸업식을 생각하고 졸업식에 왔다면, 사뭇 다른 풍경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2월 26일 화요일, 여느 대학교와 다름없이 충남대학교에서도 전기 졸업식 행사가 진행되었다. 각 단과대 마다 우수 졸업생에게 일종이 훈장이 수여되었고, 졸업식에 임하는 표정만으로도 취업여부를 유추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대학본부 앞에서는 노동자로 보이는 분들의 집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로 졸업식날 집회를 하는지 알기위해 좀 더 가까이 가보았다.

집회를 보던 중, 아버지 뻘 되시는 한분께서 오셔서 졸업식날 집회를 하게 돼서 미안하시다며 종이를 한 장 건네주셨다. 졸업식 전날 단과대 신문 놓는 곳에 배포한 집회를 알리는 내용과 사연이 담긴 종이라고 말씀하셨다.

ⓒ 충남대학교 해고 청소노동자의 목소리


사연인즉, 용역업체 소속 충남대 청소노동자 분들은 그동안의 소장과 업체의 횡포가 많아 합법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노조결성 덕분에 회사와 단체협약도 체결하고 임금도 제 때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업체는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 터무니 없는 이유를 들어가며 시비를 걸어 폭력사태를 유발하였다. 그 이후 회사측 징계위원들만의 결정으로 노동자 2명에게 해고, 1명에게 감봉 징계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계약만료를 1주일 앞두고서 말이다. 집회에 참여하신 분들을 둘러보니 졸업생들의 부모님 뻘되시는 분들이 대부분 이였다.

그 순간 우리사회의 비정규직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찾는 외침이 주로 생활에 오던 충남대 내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매일 언론에서 보도되는 쌍용차 비정규직 해고사태,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사태,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해고 사태, 그리고 홍익대 청소노동자 해고사태 등의 뉴스를 볼 때 마다 강건너 불구경 식의 마음으로 사태를 관망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우리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니, 청소노동자 분들 없는 대학교는 쓰레기로 뒤덮일 것을 생각해보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였다. 게다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도 받지 못한 채, 어찌보면 당연한 요구인 용역업체의 고용승계 마저 걱정하며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현실과 이론사이에서 괴리감이 들었다. 같이 집회를 보던 졸업생 황보라(25)씨도 “졸업식날 무슨일인가 했는데, 이제는 정말 남일 같지가 않다.”고 말했다.

우리가 나아가는 사회 역시 이런 곳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으로 가득차 있다. 4대 보험도 보장되지 않는 아르바이트, 주로 학비를 벌기위해 일하는 대학생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악덕 고용주들이 너무나 많다. 대학교와 부모님이라는 일종의 보호막 안에서 잠깐 잠깐씩 사회생활을 맛보았지만, 졸업 후 사회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보호해 줄 수가 없다. 21세기형 새로운 신분계급이라고 평하기 까지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신분은 졸업하자마자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졸업생들 중 누구는 정규직으로 누군가는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했던 부르주아와 프롤레탈리아의 계급이론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분류로 어느 정도 적용할 수 있을것 같다.

청소노동자 분들은 말한다. “우리들의 집회와 투쟁을 그런 의미에서 너그러이 이해해주기 바라며 졸업해 나가는 사회에서도 노동조합을 통해 당당히 자기 권리를 찾아나가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충남대 청소노동자 분들의 목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모습을 각성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마르틴 니묄러의 시 ‘그들이 왔다’가 떠오른다.

“맨 먼저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지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지만,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지만,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지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