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영(29)씨는 며칠 전 강남역 사거리를 지나가다가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하였다. 거리 한복판 고층빌딩 현수막에 질염 치료제 광고가 떡하니 걸려있었던 것. “몇 년 전만 해도 질염 때문에 고생해도 무조건 참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부끄럽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광고를 보고 나니 격세지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박유선(가명, 20)씨는 지난주에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인근 산부인과를 찾았다. 자궁경부암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병원에 가면 어린 환자는 저밖에 없을 것 같아서 긴장했었는데, 막상 가보니까 제 또래 친구들도 많아서 놀랐어요.”

올리비아로렌의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한 ‘퍼플리본 캠페인’ ⓒ 한국경제

여성 생식기 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공론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생식기 염증 진료를 위해 병원 문을 두드린 여성의 수는 2006년 200만 명을 넘어선 뒤 2009년 210여만 명, 2010년 211여만 명, 2011년 216만 명으로 해마다 약 2.5% 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자궁경부암 예방 접종의 경우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질병관리본부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50여건에서 2012년 1만 5000여건으로 4년 새 약 100배 증가하였다.


제약회사 및 의료계의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제약회사 한국먼디파마(유)에서는 유명연예인을 섭외하여 질 세정제 TV광고를 제작하고 질염 예방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케이씨알파트너스 또한 자사의 질 청결제를 서울시의사회에 후원하고 새학기 맞이 무료 증정 이벤트를 실시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자궁경부암 예방 접종의 경우, 지난 2007년 첫 국내 접종이 시작된 이래 대한산부인과의사회를 필두로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암협회 등에서 자궁경부암 예방 캠페인을 주기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접종 대상자의 범위도 점차 넓히고 있다. 김금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자궁경부암연구회 위원은 최근 경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성관계를 맺게 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기에 백신 접종을 하는 등 발 빠른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경향은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있다.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논문 <페미니즘과 몸으로 길찾기>을 통하여 오랫동안 여성의 몸은 남성에 의하여 생식을 위한 존재, 성적 욕망의 대상, 가사를 위한 노동력으로만 규정되었으나,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고 기존 규범에 맞서는 과정에서 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되돌아보기 시작하였다고 분석한다.

고전학자 고미숙씨도 글 <페미니즘과 몸교육>에서 그동안 여성의 몸은 남성의 몸과 달리 입덧, 월경 등 통제가 어려운 경험을 겪는다는 점으로 인해 더럽고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면서 여성의 몸에 대하여 긍정하고 몸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회의적인 견해도 없지 않다. 김소연(22)씨는 “여의사가 운영하는 산부인과가 아니면 진료 받으러 가기 꺼려진다”면서 여전히 치료받는 일이 조심스럽다고 이야기했다. 한수진(가명, 25)씨는 생식기 질환에 대하여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제대로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자궁경부암 같은 경우에는 생식기 질환이라기보다는 암이라는 데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같은 여자가 아니더라도 이야기하기가 편해요. 그런데 질염이나 생리불순은 대놓고 말하기가 아직도 좀 껄끄러워요.”

고미숙씨도 글을 통하여 자신의 몸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전폭적으로 증가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몸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말하기를 회피하는 경향이 남아있다면서 기존 교육이 단순히 성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여성들로 하여금 어렸을 때부터 몸의 의미에 대하여 스스로 고민하고 긍정할 수 있는 계기를 꾸준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