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인 취업난이 대학의 동아리 문화도 바꾸고 있다. 금융, 광고, 마케팅, 컨설팅 등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워낙 지원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준비된 인재’가 아니면 가입조차 버겁다. 반면 80년대 학생운동과 90년대 대중문화 분출 속에서 생겨난 여러 동아리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실례지만, 신입생이세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면 동아리들은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건물 마다마다 벽을 가득 메운 포스터들이 학생들의 눈길을 끈다. 이것으로는 부족한 것인지, 학내에 천막을 치고 자리 잡아 신입생으로 보이는 학생에게 접근하는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동아리들이 학생들을 유치하고자 하지만 웬걸, 이 시대의 대학은 오늘날의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름하여 ‘동아리 양극화’다. 소위 ‘잘 나가는’ 동아리의 신입회원 모집은 다소 여유롭게 진행된다. 동아리 홍보를 위한 설명회에 신입생, 복학생 할 것 없이 학생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가입을 위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학생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들 동아리는 한 학기 신입회원만 100여 명을 육박한다. 이에 비해 비인기 동아리의 고민은 늘어간다. 회원 수 부족으로 동아리 유지도 어려운 상황에서 신입회원 모집으로 인한 부담이 더 가중되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한 번만 설명을 듣고 가라고 애원하고 과자, 음료수 등 먹을거리를 건네며 다가가도 반응은 차갑다.



ⓒ한국대학신문

 



찬밥 신세 면치 못하는 동아리의 위기



인하대에서 비주류문화를 연구하는 동아리에서 활동 중인 최씨는 동아리의 회원으로 고민이 많다. 동아리 내의 세대교체가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회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정한 주제에 대해 책을 읽고, 발제와 토론을 하는 세미나를 한다. 세대교체를 해야 하는데 아직도 고학번들이 동아리 일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 그나마 주도하고 있던 회원들도 코스모스 졸업을 하거나 어학연수를 갔기 때문이다”며 “올해는 새내기가 한명도 없었다. 임원 선출할 때, 인수인계 할 때는 더 오지 않는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아리의 역량이 떨어져 동아리를 이끌어 가기 힘들 뿐 아니라 다음 새내기를 모집할 때도 난항을 겪는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 되어 결국엔 동아리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 마르크스주의 연구회 ‘프로메테우스’는 현재 대내외적 활동이 거의 중단된 상태며, 이화여대에서는 2년 전 노동문제 연구 동아리가 문을 닫기도 했다.



서예나 바둑, 풍물놀이, 전통무술 등 취미 중심의 동아리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 동안 신입생을 많이 받지 못해 존립마저 위태롭기 때문이다. 공연동아리의 단장을 맡고 있는 이모씨는 “일 년에 한번 있는 정기연주회에 설 단원들이 없어서 10년 선배이신 분들이 와서 도와주기도 한다”며 “연주회를 위한 연습일정이 빡빡하기 때문에 열정이 없으면 활동이 지속되기 어려워 그런 것 같다”고 전했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고 학점관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동아리는 기피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생존전략, 동아리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동아리들과는 반대로 지원자가 넘쳐 고민인 곳도 있다. 취업에 도움이 될 법한 동아리다. 애드컬리지, 애드파워 등 연합광고 동아리들은 지원자가 너무 많아 면접을 보고 과제제출까지 해도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한다.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는 영어회화연합동아리들의 지원자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학내 동아리의 분위기도 이와 비슷하다. 



경희대의 금융경제동아리 회원 진모씨는 “어제 하루만 60명 정도가 설명을 듣고 갔다. 주로 2, 3학년만 모집하는데도 20명 이상의 신입생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될 법한 동아리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기계발 동아리’도 인기가 많다. 인하대의 ‘스펙업’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 중인 장모씨는 “마케팅, 광고 공모전등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한다”고 동아리를 소개하며 “혼자 취업 준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이 찾아 온다”고 전했다. ‘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한패를 이룬 무리’라는 사전적 정의가 무색할 만큼 취업난 속에서 동아리가 또 하나의 생존전략이 된 것이다.



‘신입생스러움’을 즐기지 못하는 신입생의 속사정



동아리박람회가 한창인 연세대에서 만난 신입생 김은영씨는 “회화실력을 키우고 싶어서 이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에 가입할 생각”이라며 “향후 스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동아리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생에 대한 로망 중 하나가 동아리 아니였냐는 웃지 못 할 질문에는 “입학 전 까지는 그랬다”고 웃으며 “주변 친구들이 벌써 이것저것 준비하는 것을 보니 덩달아 불안해져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악기 다루는 것이 취미인 신입생 최민지씨도 “악기 관련 동아리에 들었으나 스터디 동아리에도 하나 더 들어갈 생각”이라며 “예전의 동아리가 전공과 생계수단에서 벗어난 삶에서의 또 다른 의미를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동아리는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동아리 양극화는 결국 대학 생활 4년을 즐기지 못한 채 미래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현 대학생들의 씁쓸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취업이 전쟁같은 세상이지만 스무 살, 그 푸른 나이에 기업이 원하는 인재에 맞춰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고민을 하는 신입생도 있다. 민중가요에 맞춰 몸짓을 하는 모임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호정씨는 “처음에 부모님이 그런 동아리를 뭐하러 하냐고 말렸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동아리는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을 배우는 것. 대학 때가 아니면 어렵지 않을까요?”라고 담담하게 자기 생각을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