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녹색 뱃지를 달고 용산역 광장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당일 개최되는 제1회 녹색당 대의원대회에 참석하는 당원들이다. 함께 대의원대회 대회장으로 걸어가는 도중 “혹시 이 중에 대의원으로 선출된 분 계세요?”라고 묻자, 잠깐 서로를 쳐다본 후 멋쩍게 웃으며 대답한다. “저희 세 명이 다 대의원이에요.”

이들 3명의 대의원은 전북 지역을 대표하여 대의원대회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아직까진 대의원이라는 직함을 쓰는 것이 어색하다. “사실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 뽑은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추첨이 아니라) 추천이라고 들어서, 누가 나를 알고 추천을 했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전북 대의원 조정현씨의 한마디다.

녹색당은 올해 첫 대의원대회에 앞서 전국 16개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과 연령, 성별을 고려하여 30명당 1인씩 추첨을 통해 총 140명의 대의원을 선출했다. 이중 여성 대의원의 비율이 53%를 차지하고 있고,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별도로 선출된 3인의 청소년, 3인의 장애인 대의원이 포함된다.

가위바위보를 통해 서기를 선출하고 있는 모습 ⓒ 녹색당

당일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대의원은 88명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대의원들로 복작거리는 가운데, 대회장 안에서는 ‘탄소발자국 줄이기’ 캠페인 홍보가 한창이었다. 운영위원들이 건네는 녹색 카드에는 탄소배출 제로를 위해 대회장 내에서 종이컵과 나무젓가락, 비닐봉지 등의 사용을 금지하며, 대회 참여자들에게 개인 컵, 손수건 등을 사용하도록 권장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복도에선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이 몇 명이 뛰어다닌다. 곧 정치적 모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가장 먼저 진행된 의장, 부의장 등 임원 선출 과정에서는,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후보를 임원으로 선출하는 등 탈권위적 모습을 선보였다. 추첨에 이은 파격적인 선출 방법이다.

의장 선출 후에는 심의에 앞서 각 안건의 발의자로부터 간략한 안건 설명을 먼저 듣는 시간을 가졌다. 안건 설명에 있어서는 전문 용어가 아닌 시민의 언어로 설명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발의된 내용도 청소년 당원의 당권 문제, 영양댐건설계획 백지화 결의, 대의원대회 권환 확대, 지방선거에 대한 준비, 농업식품안전분야 활성화, 햇빛발전소 사업 등 각자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했다.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은 “필요한데 발의하는 주체가 없어 논의를 못하고 있던 안건들이 많이 나왔다”며 안건의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의원들이 10개 모둠으로 나뉘어 토론을 하고 있다. ⓒ 녹색당

심의는 대의원들간의 모둠토론과 투표를 거쳐 진행되는 의결의 2단계로 진행됐다. 각 대의원들은 운영위원들의 도움을 받아 각자의 모둠 속에서 돌아가며 발언했다. 안건에 대한 각각의 의견과 제안을 모둠원 모두가 함께 검토하여 기록하였다. 10개 모둠은 다양한 지역, 성별, 연령으로 구성됐다.

본격적인 의결이 진행되는 중에도 다양하고 풍부한 질의가 이루어졌다. 대의원들은 안건에 대한 찬반 발언을 들으며 안건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대의원이 제시한 질문들에는 중앙운영위원장이 당을 대표하여 상세한 설명을 했다. 의장으로 선출된 충남 대의원 강국주씨는 “아주 높은 분들이 발언하는데도 개의치 않고 질문을 던지는 대의원분들을 보니 아주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토의가 진지하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전국 사무처 활동가 처우 개선을 위해서 농업에 종사하는 당원들이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을 공급하기로 결의하자는 내용이 나오자 다같이 환호하기도 하는 등 유쾌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보이는 대의원들을 보며 김현 사무처장은 “보통 다른 시민단체나 정당 총회에서 (대의원들이) 거수기 역할만 하고 가기 때문에, 그걸 방지하기 위해 녹색당 홈페이지와 이메일, 문자를 통해서 사전교육을 한 성과를 느낀다“고 말했다.

의장은 하나의 안건에 대한 논의가 끝날 때마다 의결을 위해 다같이 표찰을 들어 동의와 제청을 요구할 것을 요구했다. 방 안 가득 녹색 이름표가 물결쳤다.

표찰을 들어올리며 동의를 표시하는 대의원들 ⓒ 녹색당

그러나 사전교육이 충분한 효력을 보였다고는 평가하기 힘들었다. 중앙운영위원회에서 나온 사업계획과 회계 안건의 경우, 수정 제안은 거의 나오지 않았고 대신 소극적인 의견 제시에 그치는 모습을 보였다. 당 차원에서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사전 교육을 진행하였으나, 전문적이고 거시적인 분야이니만큼 단기적으로 이루어지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분석된다.

추첨으로 뽑힌 만큼 안건에 대한 관심도와 이해도의 차이 역시 분명히 존재했다. 운영위원이 토론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발언권을 주려 배려했으나, 주로 관심이 많고, 평소 의제팀 활동을 하며 발언을 많이 해오던 대의원들의 발언량이 비교적 더 많았다. 20대 대의원들 역시 청년 문제를 제외하고는 발언이 적었다.

올해 13세의 나이로 최연소 청소년대의원으로 뽑힌 최여름씨의 경우, “어리다 보니까 하면서 약간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며, “(토의 과정 중에) 어려서 더 배려해주거나 쉽게 말해주는 게 별로 없었고, 모둠 토의에서 발언을 하기는 했지만 의견이 반영된다는 느낌은 하나도 못 받았다”고 말했다.

발언권 문제에 대해 김 사무처장은 ”물론 현실적으로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발언을 할 수 밖에 없지만, 발언을 함으로써 다른 당원들이 그 관심사를 듣게 되고, 그러면서 교육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우려반, 기대반이었다는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런 차원으로 대의원대회를 통해 내가 관심 있던 의제에서 출발해 다른 관심사로, 교류가 되지 않을까”하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이날 심의, 의결된 안건은 결산, 사업계획, 사업예산 등 3가지와 대의원이 발의한 4가지 안건, 수정안 1가지 안건, 각종 위원회 선출 안건, 그리고 현장발의 안건 등 10여 가지였다. 이 중에서 수정안 안건이 부결되고 나머지는 모두 가결되었다. 4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이번 대의원대회에 전반에 대해, 대의원들은 “안건 심의, 의결 전에 이루어진 모둠토론이 안건을 이해하고 소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많은 안건을 토론하기엔 시간이 다소 부족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