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을 향한 쓴소리, 언론유감!
수많은 언론들에서 날이면 날마다 다뤄지고 있는 20대, 청년, 대학생 관련 기사들. 20대를 주목하고 다그치고 때로는 힐난하는 기사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요? 20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20대를 요리하는 키보드 위의 손끝들을 20대의 손으로 처단합니다! 매주 20대, 청년, 대학생 키워드로 보도된 기사들 중 어떤 기사가 좋고 어떤 기사가 나쁜지 알아보는 ‘언론유감’ 연재입니다.


BEST 
 

‘국가장학금의 역차별’ 성적·소득기준, 현실과 엇박자 (아시아경제)

“2년간 군 휴학을 마치고 올해 복학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국가장학금을 신청했고, 며칠 후 ‘소득심사 통과’라고 돼 있길래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등록금 고지서에 장학금이 반영이 돼 있지 않아 확인해봤더니 직전학기 이수 학점이 12학점 미만이어서 탈락했다고 나왔다. 성적미달도 아니고 이수학점 미달로 신청이 거절당해 우울했고, 이제는 정말 사채까지 써야하나 생각했다.”(A대학 08학번 남학생)
국가장학금의 문제로 자주 지적됐던 높은 성적기준으로 피해를 본 사례도 등장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고 있는 김민형(가명) 씨는 지난해 1, 2학기 모두 낮은 학점을 이유로 장학금 신청에 선정되지 못했다. 김 씨는 “등록금 부담이 있는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이 공부할 동안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성적을 잘 받기 힘들다”며 “정부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대책이라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홍보하지만 그저 나에게는 희망고문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 “지금 국가장학금의 수혜자는 그래도 좀 덜 힘들고 나은 여건에 있는 학생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덧붙였다.  

B학점은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점수일까? 진짜 ‘국가장학금’ 이라면 백이면 백 다른 학생들의 실제 생활환경을 반영하는 형식을 갖춰야 옳다. 대학생 한 명을 ‘구성하는’ 경제적 요소는 매우 다양하다. 현재의 국가장학금은 그 중 일부만을 표준으로 삼는다. 한번의 증언대회로 해결점을 모색하기는 힘들겠지만, 문제제기의 물꼬를 튼 ‘탈락’ 피해 사례를 보도했다는 점에서 베스트 기사로 선정했다. 대한민국 ‘평균’ 20대에 다각도로 접근하지 못하는 여덟칸의 소득분위에 대한 피해사례가 더 많이 터져나오길 바란다. ‘장학금의 주체는 학생’이라는 사실은 끊임없이 대두되어야 한다.

GOOD 
지자체들 세금으로 대학생 전입 장사 (중앙일보) 

경북 김천시 대신동사무소 직원들에겐 최근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 매주 세 차례 관내 김천대와 김천과학대를 찾아가 학생들에게 주민등록 소재지를 김천으로 옮겨달라고 호소하는 일이다. 서울·부산·대구 등 외지 출신 신입생이 주 타깃이다. 주소를 옮기고 6개월이 지나면 전입지원금 20만원을 준다는 ‘당근’도 제시한다. 학생이 전입 의사를 밝히면 이동민원실이 현장에서 곧바로 수속을 해 준다. 전인진 동장은 “5월까지 150명을 전입시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지자체가 전입 캠페인을 펼치는 건 관내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다.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 등의 대부분이 인구를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지자체들에 인구는 곧 경쟁력이다. 중앙정부가 행정 운영에 필요한 돈으로 지자체에 내려주는 교부세는 대체로 인구 1명이 늘면 30만원꼴로 증가한다는 게 통설이다. 그러니 지자체로선 전입지원금 20만원을 뿌리고, 교부세 30만원을 더 타내면 ‘남는 장사’가 된다. 반면 출산 장려 정책을 통한 자연 증가나 지역 환경·인프라 개선으로 인구 유입을 유도하는 정책은 단기적으론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중앙일보

 

이쯤되면 공공기관도 인정한 ‘호갱님’ 이다. 몇몇 지역에서 대학생을 상대로 때아닌 전입 열풍이 불고 있다. 실거주지로 주소를 옮기면 전입 지원금, 아르바이트 자리, 학자금대출 이자 지원 등 콩고물도 떨어진다. 이 방법으로 당장은 지역 인구가 증가해 예산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몇년 뒤면 빠져나갈 ‘임시’ 인구라는게 문제다. 타지인의 주소 세탁(?)이 아닌 지역자체의 힘이 커져야 할 부분이다. 단기적 해결책에 머물 수 밖에 없는 ‘대학생 모시기’의 문제를 잘 짚어낸 기사다. 평소에는 얻을 수 없는 각종 인센티브에 마음이 약해질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더 씁쓸하다. 
BAD
청년실업과 잠곡 김육 (한국경제) 

잠곡은 중년의 나이에 집 한 칸이 없어 토굴을 파 움집을 만들고는 그 속에서 살았다. 잠곡은 2남4녀를 두었다. 모두 8명의 식구가 토굴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잠곡의 젊은 시절은 다른 사람으로서는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15세 때 아버지를 잃었으며, 21세 때 어머니를 잃었다. 인부를 살 돈이 없어 자신이 직접 무덤을 파고서 장사지냈다.
잠곡은 그런 가운데서도 부지런히 공부해 25세 때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급제해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광해군의 난정에 실망해 가평의 잠곡으로 이사해 살았다.
잠곡은 인조반정이 일어난 뒤에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갔다. 이때 잠곡의 나이는 41세였다. 늦게 출발했음에도 잠곡은 고생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경험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직무에 종사했다. 마침내 72세 때 최고위직인 영의정에 올랐고 자신의 집안을 조선 최고 명문가로 만들었다. 요즈음 말로 표현하면 ‘의지의 한국인’인 것이다.

고전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궁금할 뿐이다. 잠곡 만큼의 고통을 겪어야 ‘치열한 삶’ 이라는 기준은 무엇인가? 치열해야만 힘든 상황을 벗어날 자격이 주어지는가? 글쓴이는 20대를 말미암아 각종 우울한 소식이 들려온다며 글문을 연다. 이 칼럼은 ’20대 더 열심히’ 의 전형이며 그 3박자를 잘 갖추고 있다. 첫번째, 타인의 불행을 보고 ‘나는 행복하다’ 라고 자위하는 것. 두번째, 옛날에는 이것보다 더 힘들었으니 지금 너희의 고통은 극복하고도 남는다는 시대론(?) 세번째, 의지로는 못할것이 없다, 곧 ‘하면 된다’는 해묵은 클리셰가 그것이다. 한가지 잣대를 모두에게 적용하는 무채색의 세상을 위해 고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터다. 이런 질문을 하는 20대는 또다시, 당신들을 우울하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