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이화여대 중강당에서 ‘여성들의 삶’을 주제로 문화제가 열렸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점으로, 평범한 여성들의 삶의 현실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풀어내는 자리였다. 전국학생행진에서 전체 행사를 주관했고, 다양한 학회와 학생회들이 동참했다.

기획에 참여한 송지영(25, 아주대 자치학술공간 <세아> 대표) 씨는 “여성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모르잖아요. 같은 여성인데도 뉴스만 보거나, 사회적 편견에 갇혀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노동자든 학생이든 모든 사람들이 현실에 대해 같이 알고,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문화제는 독특하게 라디오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총 3부의 각 코너는 사연 낭독과 논의, 신청곡의 구성을 취했다. “국민연료 썬연료” 광고가 울려퍼지자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회자 반지수(한국외대 정치외교학) DJ의 “이 사회의 빛나지 않는 것들, 주목되지 않는 여성들의 삶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봅니다.”라는 오프닝 멘트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1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여성들의 근로 환경을 알아보는 1부의 첫 순서는 “네네 고객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였다. 서울시 다산콜센터 직원의 실제 사연이 상황극 형식으로 발표되었다. 애인이 되어달라거나 욕설을 내뱉는 사람 등에게도 감정을 숨기고 친절하게 대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 콜센터 직원이다. 실제로 이들 중 35%는 통원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 우울증’의 증상을 보인다(2011년 헤럴드경제 기사 인용).

뒤이어 <내가 만난 OO노동자> 코너는, 각 학교 학회 및 동아리에서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해 여성 노동자들의 실태를 보여주는 발표 시간이었다. 인터뷰에 응해준 아주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은 최저 임금도 받지 못했으나 지금은 노조 설립과 노동권 투쟁을 통해 상황을 많이 개선한 사례로 꼽혔다. 임신했다고 해고를 당하거나, “보기 흉하니 앞치마로 배를 가려라.”는 등의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보육노동자들의 충격적인 현황도 보고되었다.

1부를 마치는 영상 ‘지식채널e-엄마의 취업’에서는 감정 노동의 90%를 여성이 담당하고 있다는 문장이 제시되었다. 간병인, 가사도우미, 청소 등의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집안일까지 이중으로 도맡아 하는 서글픈 ‘엄마’들의 삶을 바라보는 20대 관객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2부 : 일상 속의 두려움, 성폭력

2부는 일상에서 여성들을 위협하는 성폭력의 사례와 대처 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이었다. 먼저 나레이터가 스크린에 나타난 ‘한 여대생의 사연’을 낭독했다. MT에서 술에 취한 과 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나,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오히려 비난을 받고 위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반 DJ는 “이런 안타까운 사연들이 진지하게 다루어지기보다는 자극적인 가십거리처럼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선물이 함께하는 best 5 퀴즈” 코너가 뒤를 이었다. <성폭력에 대한 편견 best 5> 중 2위와 3위를 맞추는 사람에게 각각 도서 1권씩 증정되었다.

다음은 성폭력상담소에서 피해자 치료를 맡고 있는 김두나 씨와 성폭력의 해결 방안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게스트와의 대화’ 시간이었다. 김씨는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성충동 약물치료, 신상공개 등 가해자에 대한 강력 조치가 최근 다수 통과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성폭력 특별 수사대’도 꾸려졌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런 조치들이 과연 성폭력 예방과 근절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책 대부분이 강제적이라 인권 침해 가능성이 있고, 단기적으로 신체적, 심리적 억제만 유도하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김씨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인식의 개선이며, 인권감수성과 관련된 부분들이 일상 속에서 점차 바뀌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폭력이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여성을 비하하고 성차별적 문화가 만연한 사회, 그리고 여성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공연한 폭력이 허용되고 묵인되는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성인 성폭력의 74%가 아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만큼, 학교나 직장 같은 공동체 내의 문화 재정비도 필요합니다.” 

3부 :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와 희망의 목소리

반지수 DJ는 “여성이 혼자 여행하기 어려운 사회. 이 말은 여성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 자체를 위협하는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현실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들이 계십니다.”라는 멘트로 변화의 목소리를 소개하는 3부를 열었다. 청소노동자 이화여대 분회 부회장 손정민 씨는 유령같이 살던 수많은 ‘아줌마’들이 비로소 노동조합을 통해 임금교섭, 정규직화 등 권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내용의 스피치를 발표했다.

문화제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심도 있는 내용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윤다정(미디어스 기자)씨는 “생각보다 짜임새가 좋아서 놀랐고, 여성주의자 입장에서 단편적인 지식 전달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아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고 말했다. 한양대 정치경제학회 ‘상록’의 선배 소개로 문화제를 찾았다는 이예완(20)씨는 문화제를 통해 진짜 현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저도 남자지만, 우리 사회가 너무 남성 중심적인 사회인 것이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화여대 인문학동아리 ‘박하’의 임솜이(23)씨와 경희대 ‘아프라사스’ 최휘협씨의 마무리 연설과 함께 문화제가 막을 내렸다. “한국사회가 성평등해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러나 저임금, 비정규직, 육아와 가사, 성폭력. 여성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불안정하고, 감정노동과 돌봄노동을 도맡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직장 내 성폭력, 외모규제, 복장규제를 감당해야 합니다. (중략) 여성을 비롯해 모두가 좀 더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스스로 생각, 행동, 표현을 되돌아봅시다. 함께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