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는 막힌 길을 뚫는다. 암흑으로, 철창으로, 율법으로, 계엄으로, 법제로, 비상조치로 묶이고 막힌 상황을 타파하고자 한다. 그것이 혁명가의 일이다. 낡은 가죽을 벗기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반유신체제 운동으로 박정희 정권에 저항해 온 고 장준하 선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장준하 선생이 공식적 사인인 실족사로 숨을 거둔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로부터 38년, 장준하선생 사인진상조사공동위원회는 지난 26일 장준하 선생의 유골 정밀감식 결과 머리 가격으로 숨진 뒤 추락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38년간 숨죽여 왔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28일, 서울 광장에 고 장준하 선생의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그런 가운데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 겨레장’ 이 지난 28일부터 시작됐다. 서울 시청 앞에 설치된 분향소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길게 늘어선 시민들만이 장준하 선생의 삶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못난 후손이 되지 않기 위해’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묵묵히 헌화에 임했다.

분향소를 찾은 이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이었지만 그 중 20대들도 눈에 띄었다. 직장인 이영근(27)씨는 “장준하 선생을 지난 26년 동안 모르고 살았다. 후손으로서 감사한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윤혜선(27)씨는 장준하 선생을 존경하는 이유를 “독립 민주화 과정에서 뜻있는 일을 하셨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윤씨는 20대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20대들의 현실이 취업, 등록금, 집값 등으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역사 교육이 잘 안 이루어져 있고 선택 사항이라 선택하지 않게 되면 그냥 모르고 졸업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장준하 선생 분향소에서 20대 청년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장준하를 말하지 않는 교과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청년 등불 17기 박세준 (28)씨는 “20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보이는 거 같다”고 말하면서도 20대들이 “교과서에서 장준하 선생님 관련 부분들이 없기 때문에 몰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겨레장에 참가한배우 맹봉학(51)씨도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그들 탓이 아닌 우리(기성세대)의 탓”이라고 못 박았다.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김학진의 2010년도 논문을 보면 장준하 선생을 다룬 근현대사 교과서는 금성, 두산, 중앙, 천재교육, 법문사 등이 있는 것으로 나와있다. 각 교과서는 모두 1페이지내로 장준하 선생과 관련된 내용을 싣고 있다. 이 중 두산, 천재교육, 대한교과서 등은 장준하에 대한 언급 없이 “재야인사, 종교인 등이 유신체제 반대 투쟁에 나섰다”고 서술하고 있다. 법문사, 중앙 등은 장준하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의문사와 관련된 서술은 없었다.

장준하 기념 사업회 조사 결과로 ‘타살’에 의견이 기울어지고 있는 지금, 진상 조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에 발맞춰 새로운 역사가 쓰일지 여전히 묻힌 진실을 껴안고 갈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