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5일 대한문 앞에 있던 쌍용차 분향소 천막이 철거되었다. 작년 4월 4일 쌍용차 해고노조가 죽은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분향소 천막을 설치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중구청은 분향소를 철거한 뒤, 화단을 조성했다. 그리고는 철조망으로 화단을 둘러쳤다. 4월 5일 대한문 앞에서 쌍차 촛불문화제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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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차 촛불문화제를 가기 위해 광화문역에 내렸다. 입춘도 한참 지나 4월이 되었지만 모두 겨울 외투를 걸치고 돌아다녔다. 그날은 봄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기온과 바람이 불었다. 게다가 다음날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고, 4월 5일 저녁 이미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대한문으로 향하는 길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은, 형광의 복장을 갖춘 경찰들이었다. 붉은 봉을 까닥까닥 휘적거리는 이 형광의 경찰들은 대한문으로 가까워질수록 정렬된 대열로 서 있었다. 그들은 대한문을 금방이라도 문제가 생길 ‘위험한 공간’으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대한문에 도착하자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쌍차 촛불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신부는 “비통한 심정이지만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갖자”며 시종 담담한 표정과 어조의 신부는 추모미사 마지막에 울분을 토해냈다. ‘국가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강도 집단’이라 말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격언을 빌린 신부는 “4월 4일 쌍용차 분향소를 철거한 대한민국 땅에 참다운 국가가 있는가?”라며 반문했다. 대한문 앞에 있던 많은 사람 중 신분의 반문에 답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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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20분경 미사가 종료되고 약 10분간의 쉬는 시간이 있었다. 대한문 매표소 앞쪽에서는 “살기 좋은 안전 특별구 중구”라는 문구가 새겨진 파란 조끼를 입은 중구청 공무원들이 출석을 확인하고 있었다. 한 직원은 방금 온 직원에게 어서 출석을 확인하라며 재촉했다. 출석 확인은 왜 하는 것일까. 대한문 앞에 오지 않는 직원에게는 어떤 불이익이라도 가해지는 것일까. 궁금증에 다가가고 싶었지만 파란 조끼를 입은 이들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았다. 매표소 앞에 있던 파란 조끼의 일부 직원들은 추모미사가 끝나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뒤쪽으로 이동했고, 일부 직원들은 뒷짐을 지고 촛불집회를 힐끔거렸다.

 
그 옆쪽 대한문 돌담길에서는 학생들이 촛불집회에서 공연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한 학생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다른 학생들은 ‘잘할 수 있다’며 서로 다독이고 있었다. 대한문 주변을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두려움이나 걱정 따위를 느끼지 않는 듯 했다. 그들의 표정은 기타 반주와 율동만큼이나 생기 있고 해맑았다. 반면 학생들의 주위에는 경찰들이 아무 말도 없이 고목처럼 삐딱하게 서 있었다. 몇몇 간부로 보이는 경찰들만이 무전기로 쉼 없이 보고되는 사안들을 확인하며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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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뒤 사회자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분향소를 잃었다”고 운을 뗀 뒤, 이들을 위한 민중의례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으로 쌍차 촛불문화제를 시작했다. 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대한문 귀퉁이에 조성된 조잡한 화단을 가리키며 “22명의 영정을 이 무덤에 얹힐 것”이라며 중구청이 미관을 위해 분향소를 철거하고 화단을 조성한 중구청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본인의 침통한 심정을 담은 시를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지고는 “다시 일어서려 한다”고 소감을 말하자, 촛불문화제 참여자들은 말없이 박수를 치며 그를 다독였다.

 

이어서 평택 송전탑에서 철탑농성을 하고 있는 복기성 노동자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전화 인터뷰 시작부터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던 그는 “노동자들의 실망과 슬픔, 함께 살아보자는 절박한 심정이 파괴되었다”며 울분을 토해내더니 그럼에도 그는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싸울 것이며, 많은 시민들과 이 시대의 슬픔을 끝내고 함께 살아가고자 한다며 또다시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이들에게 감사의 말과 다짐을 전하며 전화 인터뷰를 마쳤다. “함께 잘 사는 사회.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하는 사회를 만들자. 우리도 지치지 않겠다. 함께 해주어 고맙다. 승리할 것이다”

전화 인터뷰가 끝나자 이번에는 다양한 참여자들이 촛불문화제에서 참여해 발언하고 문화공연을 선보였다. 노동가수 지민주 씨는 4월 4일 중구청이 쌍용차 분향소를 철거할 때, “많은 문화예술 작품이 짓밟히고 찢겼다. 그러나 그런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발언한 뒤 ‘길, 그 끝에 서서’를 부르며 촛불문화제의 흥을 돋우었다. 지민주 씨의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려 하자, 촛불문화제 참여자들은 “앵콜, 앵콜!”을 외치며 돌아선 그녀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노래 부르게 하기도 했다. 그녀와 함께 참여자들은 노래를 부르고 박수로 호응하는 시간 동안 대한문 앞은 작은 소규모 공연장이 된 듯했다.
이어서는 대한문을 찾은 대학생들이 촛불문화재를 주도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연합동아리 몸짓 패 ‘투혼’은 쌍차 문제와 분향소 철거에 대해 “절대 묵고할 수 없다”고 말하고 꽃다지의 ‘불나비’에 맞추어 문선을 선보였다. 다음으로는 돌담길 옆에서 연습하고 있던 학생들이 참여자들 앞에 섰다. 본인들을 성균관대 학생실천단 ‘선언’이라고 밝힌 학생들은 민중가요에 맞추어 생기 있는 노래와 율동을 선보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본 공연을 하고 있을 때에도 경찰들은 미동조차 없었다. 대부분의 경찰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눈에는 초점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땅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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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에는 앞에 나와 공연을 하는 학생들 이외에도 많은 수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대한문 곳곳에서 문화제를 함께하고 있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촛불문화제 시작부터 9시가 넘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다. 연설자의 구호에 맞추어 제창하기도 하고, 공연 중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공연이 끝나고 그곳에 있던 누구보다 열심히 박수를 치던 이들은 바로 젊은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촛불문화제가 끝나고도 여운을 쉽게 떨쳐내지 못 했다. 적어도 막차시간 까지는 대한문 앞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학생들부터, 천막에서 쌍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이들까지. 그들은 대한문 앞에서 벌어진 모든 일이 마치 자신들이 겪은 일인 것처럼 동감하고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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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곳에는 쌍차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대한문 앞을 본체만체 지나가는 수많은 행인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대오를 갖춘 경찰들과 파란 조끼를 입은 구청직원들, 한 손에는 촛불을 하나씩 들고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는 이들을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난 듯이 보며 지나가곤 했다. “나 이런 거 처음 봐! 사진이나 찍어가자!”며 사진 한 장 찍고 ‘재미난’ 구경을 했다며 홀연히 지나가 버리는 행인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대한문 앞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사는 타인일 뿐이었다. 4월 5일 쌍차 촛불문화제가 열린 대한문 앞은 누군가가 절규하고 울분을 토해내는 공간, 그들과 공감하고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반면 누군가에게 대한문 앞은 구경거리를 보며 스쳐 지나가 버리는 그냥 그런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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