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앞은 어수선했다. 누구라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출구를 나서자 곧바로 공사장이 보였다. 재개발 지역에서 으레 볼 수 있는 펜스가 둘러 쳐져 있었다. 그 틈새로 이곳저곳을 헤집은 포크레인의 흔적이 보였다. 서울 한복판 치고는 꽤 무거운 흙먼지가 불어왔다. 
펜스를 따라 직진하면 농성을 지지하는 현수막이 보인다. 지난 13일 토요일, 북아현 뉴타운 재개발 1-3 구역 농성장의 전기 설치 비용 마련을 위한 바자회가 열렸다. 대부분의 농성 장소가 그렇듯, 이곳 역시 녹록치는 않았다. 펜스와 차도 사이 좁은 공간에 길다랗게 바자회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농성장을 기준으로 길 건너편엔 층 낮은 건물들이 차곡차곡 열을 잇고 있다. 바자회가 열리는 곳 바로 옆으로 마을버스와 택시 등의 차량이 계속 오갔다.

도보를 따라 마련된 농성장은 알록달록했다. 그림과 문구가 회색 펜스를 꾸몄다. 테이블과 옷걸이, 돗자리는 기부 물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순대, 주먹밥 등의 음식과 음료도 함께 판매했다. 피자박스 등을 재활용한 메뉴판과 피켓이 눈에 띄었다. 농성장 끝쪽에서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자회에서 만난 디에고(28), 신명선(22)씨는 이미 북아현 수요 저녁 기도회에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두 사람은 각각 바지와 건전기 충전기를 구입했다. 바자회 손님들은 옷과 책, 음반 등의 물건들을 구경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북아현 생존 대책위는 사회운동을 위한 온라인 후원 플랫폼인 ‘소셜펀치’를 통해서도 50만원 가량의 금액을 모금 중이었다. 이날 바자회 물품 판매를 담당한 성노동자 권리모임 ‘지지(GG)’ 활동가 밀사 씨는 “그동안은 행사가 계속 밤에만 있었어요. 일단 오늘 바자회를 해 보고, 나중에 또 하게 되면 괜찮을 것 같아요. 바자회를 계기로 주민분들을 볼 수 있게 되서 좋아요”라며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전기를 모으려고 하는 바자회라 의미가 커요. 농성장에 오기가 아무래도 더 편해질 테니까요.” 북아현 농성장은 가스 난로와 양초에 의지해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왔다. 

북아현 1-3구역, 재개발의 그늘 

이곳은 원래 이선형씨와 박선희씨 부부가 곱창집을 운영했던 곳이다. 이들은 임대보증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지역 재개발을 이유로 가게를 철거 당했다. 1-3구역 노숙 농성의 시작이었다. 그동안 공사 지연 손해배상 소송으로 13억 8천만원을 청구 당하기도 했다. “철거 당시, 고기 등 식자재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트럭에 가게의 물건들이 실려 사라졌습니다. 전자제품 콘센트는 가위로 잘려나갔고요. 후에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지만 찾을 돈도, 둘 장소도 없었어요. 다시 장사를 시작해야만 찾아오는 것이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이선형 북아현 생존 대책위원장은 철거 당시 가게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부부의 농성은 현재 530여일이 넘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9일, 사전 공지 없이 갑작스럽게 건물 철거가 시작되었다. 2층 건물이 깎여나간 뒤에야 포크레인은 작동을 멈췄다. 그러나 이틀 뒤인 11일 철거가 재개됐다. 새벽 5시경 용역 10명이 농성장에 들이닥쳐 자고 있던 3명의 농성자들을 끌어냈다. 지나가던 주민들이 경찰에 알리기도 했지만 제재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세 명이 자고 있는데 내동댕이 쳐졌어요. 한 사람당 용역 서너명이 붙어서 끌어냈구요. 지금 발바닥이 벗겨져 곪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어요. 어떤 용역들은 농성자에게 ‘머리 박아’를 시키기도 했습니다”라고 그날 새벽을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이들을 경찰에 고소하고 인권위원회에 제소할 계획이다. “전날엔 분명히 정보과 경찰이 지키고 있었는데, 왜 하필 사건이 있던 새벽에는 없었는지 우연치고는 희한했어요.”
북아현 생존 대책위 운영위원 신원씨는 이 날 새벽 철거에 대해 “용역들이 농성자들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무릎을 꿇리거나, 핸드폰을 집어던지는 등의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시청과 서대문구청은 이 문제에 대해 면담 요청 등이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다. 신원씨는 또 “트위터로 많은 시민들이 북아현 문제에 대해 시에 건의 하고 있지만, 당국이 회피성 발언만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세린(21)씨는 약 1년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 이곳에 꾸준히 방문해왔다. 이씨는 사안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소수만 북아현에 찾아오는 상황을 안타까워 했다. “아무래도 연대하는 사람이 많다 보면 긴급하게 침탈을 당할 때도 신속하게 대피하고, 주변에 알릴 수 있어 사정이 나은 것 같아요. 여기는 지난 철거 때 속수무책으로 당했어요. 연대하는 분 한분, 철거민 두분. 원래는 더 적게 있을 수도 있었으니 위험했죠.” 이씨는 또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쌍용차 농성장에 가는데, 여기도 방문해주면 좋을것 같아요”라고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이씨는 북아현 문제가 이렇게 장기화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벌써 500일이 넘었는데, 위원장 님이나 연대하는 분들이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와서 머무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는 것 같아 안타깝죠.” 서울시와 구청이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그는 “조합이 폭력적으로 나올 때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공무원들은 수수방관하는 상황에서 시장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불가능한지 의문이 든다”고 의견을 밝혔다.
북아현이 그동안 시와 구청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시민들의 엽서를 모아 시청에 보내거나, 전화로 민원을 넣는 등 나름의 ‘액션’을 표한 적이 있었다. 연대자들이 돌아가며 1인 시위도 꾸준히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박원순 시장에게 트위터에서 멘션을 보내도 답이 없어요. 북아현 문제로 얘기를 했었는데 딱 한번 수동RT로 언급하고 그 뒤로는 반응이 없는 상태예요.”
최근에는 재개발 지역 강제 철거에 대한 대책으로 ‘사전협의체’라는 제도가 생겼다. 조합원, 세입자, 공무원 3자의 5회 이상 협의가 필수이며, 결론이 나지 않으면 구청에서 직권으로 결정이 가능하다. 1-3구역도 사전협의체 구성의 대상이 되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상태다. 이 위원장은 사전협의체에 대해 “조합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협의를 피하고, 구청에서는 조합을 핑계로 협의체를 구성하지 않는다. 허탈하고 서글프다”고 털어놨다. 

누구에게나 있다, ‘머무를 수 있는’ 권리
인터뷰 도중 해가 저물었다. 모처럼 따뜻했던 날씨가 다시 쌀쌀해졌다. 길가에선 계속 모래바람이 불어왔지만 방문객은 점점 늘어났다. 그 와중에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여성이 걸려있던 가방을 꼼꼼히 살피고 구매해 갔다.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는 와중에도 길가로 차량은 계속 지나다녔고, 멀찍이 바자회 풍경을 지켜보는 주민들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바자회에서 판매하는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문화제에 사용될 악기를 세팅하기도 했다. 조금씩 떠들썩한 문화제 분위기가 났다.
7시 반이 되자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이선형 위원장의 인사가 행사의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투쟁은 연애처럼” 즐겁게 해야 한다고 들었다는 위원장의 말이 새삼 따갑게 느껴졌다. ‘즐겁게 싸운다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도 잠시, 어느새 문화제 참가자들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강정마을과 북아현, 용산참사를 주제로 지어진 노래가 울려퍼졌다. 길다란 농성장에 모두 옹기종기 서서 노래를 들었다. 
이날 공연에 참여한 제구씨는 북아현에 좀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특히 이웃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철거민 투쟁에 실효적인 성과를 낸 곳은 거의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전략의 판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북아현 문제 해소에 대해 그는 또 “(홍대) 두리반처럼 해결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모든 철거 투쟁 현장이 두리반 같을 순 없기에 북아현의 싸움이 더 가치 있다고 봐요”라고 의견을 밝혔다. “어쩌면 정신 승리인지도 모르지만, 오랜 투쟁엔 정신 승리도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구요.”


또 다른 공연참가자인 백스프(29)씨는 기독교 단체 ‘
혁명기도원’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연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년부터 북아현에 함께하고 있다. 그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노래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라고 음악으로 연대하는 보람을 밝힌 그는 북아현 문제의 해법으로 시급한 법제개편을 꼽았다. 특히 ‘권리금’과 ‘영업보상’ 문제가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법제 자체가 너무 개발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어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은 재개발을 ‘도시 저소득 주민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서 정비기반시설이 극히 열악하고 노후·불량건축물이 과도하게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하지만, 이 사업이 오히려 그들을 쫓아내고 있구요.”


길가 농성장에서 바라본 건너편 북아현동 모습
 
이선형 위원장은 북아현 문제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에 대해 “투쟁주체가 저 혼자이다 보니 주거권의 중요성에 비해 관심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뉴타운 재개발이 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무척 큰 힘이 됩니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진작 포기했을 겁니다” 라고 연대하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밝혔다. 
문화제 종료 후, 다함께 바자회 물품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웠다. 10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밀사씨가 “끝까지 있어주셔서 감사하다”며 손을 잡았다. 불과 몇시간 동안 지킨 자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낯설게 다가왔다. 흘러넘치기를 바라는 세상의 변두리를 마주한 듯 했다. 

매주 수요일 저녁, 이곳에서는 북아현 1-3구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기원하는 기도회가 열린다. 서울시와 서대문구청 등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이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여기 사람이 있다’는 노랫말 한 마디가 아닐까. 이 짧은 문장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머무를 수 있는 권리, 자리를 지킬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스스로 일궈낸 삶의 터전을 되찾기 위한 싸움의 시간이, 500일을 지나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