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에게는 여섯 가지 친구가 있었다. 술, 녹차, 담배, 파운데이션, 묵주, 수면제. 세상으로부터 받은 쓸쓸함과 스스로가 믿는 종교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외로움을 벗들이 달랬다. 고(故) 육우당은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에서 청소년 활동가로 몸담고 있었다. 살아 있다면 올해로 스물 아홉번째 생일을 맞았을 것이다.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아요.” 육우당이 남긴 유서의 일부분이다. 그가 기부한 34만원은 동인련 활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의 일기에는 성소수자를 차별 및 혐오하는 기독교 세력에 대한 비판과 청소년 성소수자로서 겪었던 경험과 좌절이 적혀 있었다. 신상이 노출되면 성소수자에 대한 또다른 공격이 있지 않을까 우려되어 사람들은 본명도 밝히지 못한 채 육우당이라는 호로 그를 기려야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지난 27일 토요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故육우당 10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2003년 4월 25일 스스로 세상을 떠난 청소년 성소수자 육우당을 기리는 자리였다. 육우당 추모 위원회는 4월 22일부터 28일을 육우당 추모주간으로 선포하고, 일주일간 기자회견과 추모제 등의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날 대한문 앞에서는 거리 캠페인 및 문화제가 진행되었다.
 

추모위원회 데스크에 마련된 성정체성 찾기 코너.


3시로 예정되어있던 행사는 수문장 교대식이 끝난 4시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추모위원 한 명이 마이크를 쥐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활기찬 목소리로 행사를 설명했다. 대한문 앞에 깔린 커다란 천막에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물감을 입혔다. 추모 문화제 무대에 걸릴 그림이었다. 시원한 봄바람에 물감은 빠르게 말랐다.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그림을 유심히 보는 시민들이 많았다. 관심을 갖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육우당 추모주간을 설명하는 피켓을 읽고 홍보물을 받아갔다. 추모위원회 데스크에서는 활동 기금을 모으고 성소수자 인권 퀴즈, 지지메시지 쓰기 등을 진행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스티커로 붙여보는 코너도 있었다.
어린이들도 길에서 하는 색칠 놀이에 신이 난 듯 했다. 대한문 화단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 농성장 둘레에는 경찰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문화제 때 사용될 무대 설치가 한창이었다. 큰 무대와 함께 왼편에 경사로가 있는 작은 무대가 만들어졌다. 토요일 낮 대한문 앞은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무지개색 깃발과 페인팅 이벤트, 모여든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으로 온통 알록달록했다. 
문화제는 원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곤 했지만, 올해는 10주기인 만큼 좀 더 큰 곳에서 진행하게 되었다는 것이 동인련 청소년 자긍심팀에서 활동중인 최소류(18)씨의 설명이다. “사람은 꽤 많이 오는거 같아요. 참여도 많이 해주세요. 외국인 분들은 지지 메시지도 많이 써 주셨구요. 그림에 물감으로 색칠을 하는 건 새로운 프로그램인데, 지나가는 분들 반응이 좋아요.”
시민 제니(45)씨는 성소수자 지지 메시지를 유심히 읽고 있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소수자들이 있잖아요. 그게 성 정체성이든 지향성이든, 어떤 것이 되었든 각자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성소수자들이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최소한 한 인간으로서의 권리에 대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추모위원 ㄱ씨는 오후 두시경 대한문에 도착했다. 필요한 물품을 세팅하고, 시민들에게 홍보물과 함께 준비된 초콜렛을 나눠주는 등 행사 준비로 일손이 바빴다는 그는 “간혹 홍보물을 받고 버리는 분들이 계신데, 안 그러셨으면 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ㄱ씨는 시민들이 바쁘게 길을 지나다 보니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홍보물을 나눠주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그래도 행사를 본 시민들이 무작정 돌부터 던지지 않는거 같아 다행이에요.” 인터뷰를 한 추모 위원 등의 참가자들은 시민들의 반응이 냉담할까 걱정이 되었다고 말했다.

추모 거리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는 대한문 앞 풍경.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무지개색 깃발이 보인다.

ㄱ씨는 중학교 재학 중에 ‘육우당’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후, 학교에서 아웃팅(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적 경향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자해와 자살 시도를 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내가 만약 육우당 이었다면 어땠을까, 고민과 함께 자괴감이 많이 들었어요.” 그는 육우당의 죽음이 없었다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지금보다 더 적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죽으면 세상이 바뀔까?’ 하지만 사람이 죽는 것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은 너무 슬픈 것 같았어요. 남아있는 사람들도 아프고요. 그래서 저는 살아남아서 바꿔 나가기로 했어요.”
행사에 참여한 쟝(21)씨는 저녁에 진행될 문화제에 대해 남다른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육우당 관련 자보를 썼어요. 동아리 친구 7~8명에게 (문화제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는데, 함께 성소수자 차별 문제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쟝씨는 또 페인팅 행사 등으로 일반 캠페인을 할 때보다 시민들의 이목을 끌고 관심을 집중 시키는데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행사가 직접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군형법 철폐를 말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청소년 성소수자가 존재하고, 그들이 잘못되었거나 억압, 배제되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법률적 차원의 문제도 해소될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구요.
또 다른 참가자인 청보위(20)씨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이 학교 현장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학교에서 아직도 아웃팅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교내방송으로 성소수자에 대해 안좋은 인식을 심으려 하기도 해요.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작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제소 대상이 되지 않아 차별 받는 상황에서 손 쓸 도리가 없었어요.” 또한 사립학교는 학생인권조례 등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인권침해가 일어나더라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 “다행히 2013년부터는 사립학교 내 인권침해 사례도 인권위 제소가 가능해졌어요.” 그는 군형법, 차별금지법에 대한 인식이 이번 행사로 쉽게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바꿔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일곱번째 친구들이 피워준 봄꽃

저녁 무렵, 문화제 무대에 시민들과 참가자들이 색칠한 그림이 걸렸다. 추모 주간 캠페인 문구인 ‘내 혼은 꽃비 되어 무지개 봄꽃을 피우네’는 육우당이 생전 지었던 시 ‘환생’에서 따왔다. 문화제 시작 전 진행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에서 만난 윤수(22)씨는 많은 시민들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것과 동시에 성소수자가 많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가했다고 했다. “대한문에서 하는 문화제인 만큼 많은 시민분들이 보고 가셨으면 해요.”
미사가 끝난 7시 30분쯤, 음악 공연으로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참가자들 옷깃에 추모위원회에서 나누어 준 무지개빛 뱃지가 달렸다. 손에는 ‘멈춰라 동성애 혐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가 들려있었다. 음악 공연과 발언이 연이어 펼쳐지는 가운데 무대 왼편 스크린에서는 중간중간 성소수자 자녀를 둔 어머니의 인터뷰와 교내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힘쓰고 있는 선생님의 인터뷰가 상영되었다. 발언자들은 차별금지법 제정 및 동성애처벌법 철폐와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중단할 것을 외쳤다. 

큰 무대와 함께 왼편 작은 무대에서도 故육우당을 추모하는 공연이 펼쳐졌다.


음악 공연과 발언에 이어 청소년 성소수자 세 명이 무대에 올라왔다. 이들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고민을 이야기하고, 차별을 철폐할 것을 외쳤다. 첫번째로 발언 한 바람(19)씨는 “나의 성정체성에 대해 사람들은 ‘조금 더 크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다, 아직 어려서 그러는 것이다’ 이라고 말하지만, 정체성은 스무 살 생일에 받는 선물이 아닌 스스로 깨달아 가는 것’ 이라고 발언해 박수를 받았다.
또다른 발언자 ㄱ씨는 “성소수자를 싫어할 수는 있겠지만 폭력으로 드러낸다면 그것은 혐오증” 이라고 말하며 차별하지 않을 ‘의무’를 말했다. 마지막 발언자 ㄷ씨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선악으로 나뉘지 않는다”며 “성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조력자가 될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발언을 마치고 내려온 바람 씨를 만났다. 얼굴은 아직 상기된 채였다. 그의 커밍아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오늘은 남달랐다. “학교에서 말한 것 까지 합하면 횟수로는 두 번째지만, 세상에 나와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인거죠. 마음이 후련해요.” 그는 발언문을 일곱 번 정도 퇴고했다고 했다.
발언과 음악공연이 몇 차례 이어진 후 마지막 곡으로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가 흘러나왔다. 참가자들이 앞 사람 어깨에 손을 얹고 대한문 앞을 원을 그리며 돌았다.
‘난 내 나름대로 아름다워. 신은 실수하지 않으니까. 난 옳은 길로 가고 있어. 난 이렇게 태어났어, 후회 속에 너를 숨기지 마. 네 자신을 사랑해. 그럼 된 거야. 난 옳은 길로 가고 있다구. 난 이렇게 태어났어.게이이든, 이성애자든, 양성애자든, 레즈비언이든, 트랜스젠더이든. 난 옳은 길로 가고있다구. 난 용기있게 태어났어.’
육우당이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면 분명 즐거운 표정을 지었을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의 웃는 얼굴을 상상했다. 죽지 말고 살아서 바꿔나가자는, 육우당의 일곱번째 친구들의 목소리가 대한문에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