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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 Korea, 성큼 다가온 삶 속 섹드립 혁명

대학교 1학년, 강사의 섹드립에 나 혼자 침을 튀기며 웃었던 순간의 어색한 공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나머지 70명은 어찌 그렇게 엄숙한 표정을 짓던지 야속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 이후로도 이미지 관리를 위해 웃음을 참아야 한다는 사회규범은 익히지를 못했다. 섹스와 성욕은 인류 공통의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다른 유머보다 공감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섹드립을 치는 것이라면 몰라도 반응하는 것마저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은 갑갑했다. 
“라면 먹을래요?”
친구들이 ‘좋아요’를 누른 동영상이 내 뉴스피드에 뜨는 것을 과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친구들이 ‘좋아요’를 누른 SNL Korea클립들을 보면 어떤 친구가 눌렀는지 한번 다시 살펴보게 된다. 그리곤 묘한 유대감을 느낀다. 더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같은 프로그램을 본다는 사실이 이런 유대감을 형성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SNL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웃으면 안 되는 섹드립에 같이 웃어주는 느낌이랄까.

라면... 먹을래요?

섹드립에 웃는 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 기저에 깔린 성적인 함의를 다 읽어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걸 재빠르게 읽어내고 웃을 정도로 섹스와 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표가 나는 웃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섹드립에 웃으면 안 되는 무언의 합의가 있었다. 아무리 여자라도 성에 대한 기본 지식을 아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고등학교 1학년 까지 섹스가 뭔지 모르는 친구도 봤고, 포르노에 실제 섹스가 나온다는 것을 모르는 대학교 3학년도 만났다. 섹드립에 웃을 정도의 배경 지식으로도 충분히 ‘헤퍼’보일 수 있는 게 한국 사회다.
그래서 SNL 코리아는 ‘해방감’을 느끼게 해준다. 친구의 ‘좋아요’를 보면서, 아 이제 강의시간의 가벼운 섹드립에 웃을 수 있구나 싶다. SNL에 등장하는 점잖은 유명인들은 어떤가. 똥도 안 싸는 거세된 존재였던 아이돌 그룹이 “장총 좀 치워줄래?”라고 말하고, “내가 싼 정액”을 이야기 한다. 개그일 뿐이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한번도 ‘발기’와 ‘사정’을 알고 있다고 암시조차 할 수 없었다. ‘이미지’가 전부인 연예인들도 저런 개그를 할 수 있다면, 우리도 웃어 줄 수는 있다. 유명 연예인들이 SNL Korea 광팬을 자처하는 것은 섹드립에 좀 웃어도 ‘이미지’에 마이너스 될 것 없다는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SNL이 개그 소재로 삼고 있는 것들은 우리 사회에서 숨겨진 것들이 많았다. 여성의 성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그 중 하나였다. 기존 개그가 단순히 몸 좋고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여성을 희화화하는 데서 그쳤다면 SNL은 여성도 적극적인 성욕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기존의 게이 소재의 개그가 게이에 대한 비하를 내포하는 불쾌함을 피할 수 없었다면, SNL은 동성애 갈등을 아예 뛰어넘어 그들의 존재를 전제하고 시작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큰 차이다.
조금 오버하면 SNL 코리아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의 사회문화적 혁명을 일구고 있다. 재밌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삶을 조직하는 방식, 우리가 사회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 사회적 변화는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온다. 요즘 어떤 변화가 성큼 다가와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SNL은 확실한 매개체였다.
체 게바라의 티셔츠가 잘 팔리는 것을 보고 혁명도 상품화 되는 시대를 개탄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혁명의 상품화’가 아니라 ‘잘 팔리는 혁명’은 다르다. ‘혁명을 상품화’ 하는 것은 내용 없는 표상에 불과하지만, ‘잘 팔리는 혁명’은 관심가지지 않던 핵심을 눈에 띄게 포장한 것이다. 혁명도 잘 팔려야 의미가 있다. 
SNL 코리아 제작진이 대의를 가지고 방송을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시청자가 원하던 열린사회에 대한 니즈를 파악해 팔아먹을 프로그램을 만드는 중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대한민국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페미니스트들과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그룹들이 인정받고 싶어했던 ‘여성의 성욕’, ‘게이 섹스’를 단숨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대중의 욕구에 부응하는 매체의 파워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삶에서의 자연스러운 변화, SNL 코리아가 만들어낸 파급효과에서 배울 점을 찾는 중이다.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2 Comments
  1. 행인

    2013년 5월 22일 22:20

    기사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체 게바라 티셔츠를 언급하신 부분에 대해서 약간의 논의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체 게바라의 티셔츠를 잘 팔리는 혁명으로 비유하셨는데 티셔츠가 어떤 방식의 혁명이 될 수 있는지 부연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실은 티셔츠의 소비가 과연 ‘잘팔리는 혁명의 핵심’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 히아

      2013년 5월 26일 09:17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체 게바라의 티셔츠 부분을 자세히 보시면, 체 게바라의 티셔츠는 ‘잘 팔리는 혁명’이 아니라, ‘혁명의 상품화’의 예시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잘 팔리는 혁명’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고, 비슷해 보이지만 체게바라의 티셔츠로 대표되는 ‘혁명의 상품화’는 지양해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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