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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렐라] 결혼식이 빛이면 저희는 그림자예요: 예식장 알바

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왕자는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구두 한 짝 덕분에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상상해보건대,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추면서 투명한 유리구두를 통해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았을 것이다.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닌 탓에 크게 붓고 부르튼 그녀의 발을 왕자는 분명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알바렐라 2013에서는 일터 안팎에서 험난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시대의 알바렐라들에게 유리구두 대신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체크리스트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사회를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알바렐라들이 행복한 결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함20과 독자들이 그 길을 터줄 수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 알바 수난기, 다시 쓰는 그 여섯번째 이야기. ‘결혼식’의 이미지는 언제나 환하고 눈부시다. 순백의 웨딩드레스, 반짝이는 조명, 주변을 가득 채운 무수한 꽃들까지, 결혼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한 치의 그림자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림자 없는 빛은 있을 수 없다. 김렐라(23)씨와 만나 빛나는 결혼식장 풍경 이면에서 숨죽이고 있는, 예식장 알바라는 이름의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함20


Q. 하셨던 알바 소개 부탁드립니다. 

2010년 9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약 2년 동안 서울 광진구의 한 예식장에서 홀 서빙을 했어요. 시급은 알바 초기에 5000원씩 받다가 나중에는 7000원까지 받았고, 월 80시간 정도 일했습니다.

Q. 알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예식장 홀 서빙 알바를 이미 하고 있던 친구의 소개로 일하게 되었는데요, 주말 알바라는 점이 좋았어요. 평일에는 학교를 다녀야 하니까 주말에만 시간이 났거든요. 시급도 후했고요.

Q. 그러고 보니 일하는 과정에서 시급이 많이 올랐네요. 근로 계약을 할 때 그런 시급 인상 규정이 있었나요?

시급 인상 규정은 없었어요. 애초에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도 않았고요. 전적으로 알바 담당 직원의 재량에 의해 시급이 정해졌죠. 그러다보니 시급이 정해질 때 담당 직원과의 유대관계, 친분 등이 많이 고려돼요. 저 같은 경우에는 2년 넘게 알바를 했기 때문에 담당 직원과 꽤 친했어요. 또 이 일이 많이 힘든데다가, 정해진 근로 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주말마다 그때그때 예식장에서 호출하면 일하러 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쉽게 알바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 혼자서 일한 적도 있었는데, 그런 것도 감안되어서 시급이 금세 올랐죠. 

Q. 알바가 많이 힘들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했나요?

주차 안내나 예식장 정리 같은 일들도 있었지만, 주요 업무는 하객들이 식사할 때 서빙을 하는 거예요. 뷔페 요리가 제공되는 경우에는 하객들이 식사를 끝내고 나면 그 접시를 치우는 일을 맡고, 코스 요리의 경우에는 직접 음식을 나르는 일을 하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예식 일정에 맞추어서 일을 하게 되는데, 예식 일정이 유동적이다 보니까 따로 쉬는 시간이 없어요. 보통 일정이 점심시간대에 잡히기 때문에 예식장에서 호출이 오면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야 해요. 그런데 낮부터 예식 일정이 줄줄이 이어져 있으면 아침부터 출근해서 일정이 다 마무리될 때까지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일정이 별로 없는 날에는 4시간만 일하고 퇴근할 수도 있었지만, 보통은 10시간, 12시간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했어요. 그래서 주말에만 일했는데도 한 달 기준으로 80시간 넘게 일하게 된 거죠. 

맡아야 하는 하객들의 숫자도 많았어요. 예식 행사 한 건 당 하객이 평균 200명 정도였는데, 기본적으로는 알바 서너 명이서 서빙을 했어요.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이 이 예식장 일은 내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다 알바를 그만두고 저 혼자 나와서 일한 적도 있었어요. 그때는 제가 150명 정도의 하객을 상대하고, 나머지는 직원들이 맡았죠. 그런데 그나마도 접시 치우는 일 정도밖에 안 도와주고, 그 밖의 일은 다 제가 해야 했어요. 

또 어쩌다 시간이 나서 쉬려고 해도 휴식공간이 없었어요. 직원들의 휴식공간이 있긴 했는데 알바들은 사용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동통로에서 쉬거나, 흡연실에서 쉰 적도 있었어요. 흡연실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잖아요. 그래서 저희 알바들 사이에서 ‘너구리굴’이라고 불렸어요. ‘너구리굴 가서 쉬자’, 뭐 그런 식으로요. 그런 점들 때문에 일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Q. 서빙을 하다가 하객들과 부딪혔던 적은 없었나요?

많았죠. 하객들 중에 뷔페 음식을 싸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과 싸우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예식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철저히 규제했는데, 알바들에게는 구체적인 규제 이유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그냥 발견하면 무조건 막으라고만 이야기했어요. 그럼 알바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제지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마찰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정작 그런 일이 벌어지면 직원들은 알바들을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어요. 직원들은 그저 보고만 있고, 알바들만 쩔쩔 매면서 하객들을 말리는 거죠. 그러다가 일이 커지게 되면 그제야 직원들이 나서서 ‘알바들이 잘못 했으니까 저희가 처리하겠다.’ 그런 식으로 넘어갔어요. 애꿎은 알바들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유야무야 끝나는 거죠. 

나중에야 음식을 싸 가는 하객들을 규제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싸 가지고 간 음식이 상하거나 해서 문제가 생기면 예식장에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래요. 그렇게 간단한 이유인데 왜 알바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던 건지, 이해가 안 갔어요. 

또 제가 일했던 예식장에서는 주류가 제공됐는데, 술에 취한 하객들이 지나친 요구를 할 때가 있었어요. 뷔페 요리를 제공하는데 갑자기 코스 요리를 주문한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이런 요구에 대해서는 알바들이 뭐라 대답하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이때도 직원들은 뒷짐만 지고 있고, 알바들만 나서서 하객들을 상대하다가 언성이 높아진 적이 많았어요. 

나중에 직원들과 어느 정도 친해진 뒤에 왜 그렇게 하냐고 물어봤어요. 처음부터 직원이 나서면 하객들 제재가 안 되는데, 알바들이 먼저 하객들과 싸우고 나중에 직원들이 나서게 되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저희를 장기판 위의 말처럼 여겼던 거죠. 

Q. 근로조건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도 2년이나 일했네요. 그렇게 오랫동안 일한 이유는 뭐였나요?

일단은 아까 말했듯이 시급이 높았어요. 그리고 따로 정해진 근무시간 없이 예식장에서 호출할 때마다 당일치기로 일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쉬고 싶은 날에는 마음대로 쉴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그런데 그런 점들 때문에 오히려 근로조건이 합리화되기도 했어요. 시급도 높고 언제든지 쉽게 알바를 그만둘 수도 있으니까 일이 좀 힘들어도 괜찮지 않냐는 식으로요. 예식장 직원들뿐만 아니라 제 주변 친구들도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좀 안타까웠어요. 

Q. 근로조건에 대해서 직원들에게 건의를 해본 적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예식장에서 먼저 호출해야 일하러 갈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직원들에게 찍혀서 직원들이 날 부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러다가 오래 일한 덕분에 나중에 알바들을 통솔하는 팀장이 됐었는데, 그때서야 건의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항상 똑같은 대답만 돌아왔어요. 우리도 어떻게 해 줄 수 없다, 그 대신 시급을 많이 쳐주겠다고요. 

그런 식이다 보니까 결국에는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 그만두게 됐어요. 팀장이 되고 난 뒤에 이런 저런 불만을 토로해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너는 시급도 제일 많이 받는데 왜 그렇게 말이 많냐는 반응만 돌아오니까요. 같이 알바 하는 친구들에게도 미안해지고요. 

Q. 지금 와서 그때 알바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힘들었던 기억이 대부분이지만,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많이 친해진 덕분에 추억처럼 여겨지지도 해요. 같이 일하면서 서로에게 힘든 일이나 불만들을 하소연하다보니까 알바들 간 유대감은 많이 커질 수 있었거든요. 알바를 그만둔 뒤에도 지금까지 계속 연락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래도 직원들이 알바들의 입장을 좀 더 고려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에 많이 아쉽죠. 알바들을 조금만 배려해줬어도 알바들뿐만 아니라 직원들과도 유대감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예식장 직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우리가 돈을 받고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알바를 모든 걸 감수해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아서 너무 아쉬워요. 알바들을 장기판 위의 말처럼 이용하려 하지 말고,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서 대우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3 Comments
  1. Avatar
    우주고아

    2013년 5월 10일 00:43

    예식장 근무 강도가 높은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예식장 시급이 타 알바에 비해 높은 이유는 뭘까?

    초과근무?????
    무급으로 시간외 근무를 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인터뷰를 보니까 그런 내용도 없고…

    행패부리는 손님?????
    시급 4천원짜리 호프집 알바가 보기에 얼마나 가소로울까….

    당시에는 당연히 힘들테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의 어른들 말이 와닿지 않겠지만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지금 32살 직장인이고, 저도 20대 때 호프집,공장,고시원총무,단란웨이터 등등 다 해봤는데
    페이지급이나 사내 성희롱 등의 부당한 경우를 제외하고 단순히 “일이 힘들다”는 이유로 이런 인터뷰를 쓰는 건
    정말 자신이 나약하다는 반증밖에 안되는 것 같아 씁쓸하네요….

    • Avatar
      불편한 혜윰

      2013년 5월 10일 01:54

      본 기사 하단의 체크리스트조차 확인하지 않고 댓글다는 우주고아님의 ‘스킵’은 해당 댓글이 소위 ‘꼰대질’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는 듯 하구요.

      글에서 “일이 힘들다”는 이유만을 캐취하시는 우주고아님의 이해력은 조금 아쉬움이 남네요.

      그렇죠. 그렇구 말구요.
      우주고아님은 제대로된 알바도 못 하는 무직자들이 “보기에 얼마나 가소로울까”요.

  2. Avatar
    조봉국

    2013년 5월 15일 11:58

    잘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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