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철회했다. 당초 국가호분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하는 곡을 공모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관련단체와 야당, 심지어 여당 내부의 반발에 부딛치자 기존 입장을 변경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수난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까지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공식곡으로 행사식장에서 제창되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명박 정부인 2009년 행사부터 합창단이 부르는 것으로 변경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사망한 윤상원을 기리는 노래로 80년대 독재에 반대하는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이 노래 속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의미와 함께 당시 독재정권에 반대했던 그 이념과 가치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이유를 문제삼아 굳이 기념식에서 임을위한 행진곡 제창을 반대할 이유를 찾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80년 광주에서 벌어졌던 학살은 명백한 국가에 의한 폭력이며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을 추모하는데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견은 없다.

추측컨데 이명박 정부에서 그리고 국가보훈처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껄끄러워 한 이유는 두 번 째 이유, 광주의 이념과 가치를 계승하는 문제 때문일 것이다. 80년대 광주에서 벌어졌던 학살의 기억은 당시 대학생들에게 많은 부채의식을 남겼고 이는 곧 80년대 학생운동의 등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당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이제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자칫 정부로썬 야권 세력의 정치적 자산을 공유하는데 거리낌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비록 광주에서의 학살과 그로인한 부채의식이 80년대 내내 운동권 학생들의 정치적 자산이었을지 몰라도 87년 민주화의 결과 그 이후 6공화국에 들어서 광주의 유산은 특정 정치세력이 아닌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비록 라 마르세예즈가 처음 혁명군 사이에서 불릴때는 그것이 협소한 의미를 가졌을지 몰라도 현대 프랑스에 들어 그 혁명의 결과를 좌파와 우파가 가리지 않고 누리기에 라 마라세예즈가 프랑스의 국가가 되었듯이, 광주의 유산은 지금에 와서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민주공화국을 만든 초석으로 남아있다. 역사를 그저 역사로 판단하는 유연함이 조금 더 요구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