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페어는 라이브 무대가 아닌, 음반이 주인공인 음악 축제다. 올해로 세 번째 문을 열었다. 독립 음반 매장과 음악을 즐겨 찾는 소비자들이 모인다. 지난 5월 2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플래툰 쿤스트할레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한정판 LP 구입을 기다리는 이들이었다. 이날 준비된 한정판 LP 300장은 레코드페어를 찾는 손님들을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졌다. 

행사장 안은 크게 1층과 2층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푸른 잔디밭 구석구석을 CD와 LP 상자가 차지했다. 어떤 장르로 포함시킬 수 없는 음반들이 시대를 매개로 한 자리에 있기도 하고, 특정 레이블과 아티스트의 음반이 모여있는 부스도 있었다. 사전 신청을 거쳐 판매를 승인받은 셀러들은 컨셉을 갖춘 각자의 부스에 자리를 잡았다. 행사 시작 몇달 전 레코드페어는 홈페이지를 통해 음반을 판매할 셀러들을 모집했다. 공연 스탭으로 참여한 변산노을(21)씨는 행사 준비를 위해 오전부터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셀러분들 자리 펴는것부터 청소, 레이블 짐 푸는것도 도왔어요. 음반이 잘 팔리는 것 같아서 좋아요.” 

편하게 음반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에, 냉방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쪼그리고 앉아야 볼 수 있는 LP, CD 상자도 많았다. 곳곳에서 한 박스를 다 보고 다른 박스로 눈을 돌리는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겹쳐진 음반들 사이에서 ‘보석’을 찾으려는 구매자들의 노력이다. 


어떤 앨범을 발견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보니, 미처 구입하지 못했던 앨범을 발견하는 기쁨도 곳곳에 있었다. 이지훈(23)씨, 박영인(23)씨는 한시간이 조금 넘게 행사장을 돌아본 뒤였다. “생각보다 물량이 많아서 놀랐어요.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이씨는 미국의 포크 뮤지션 로드리게즈의 음반을 구입했다. “올해 초부터 사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늘 품절이었거든요. 오늘 구하게 되어서 좋아요.” 

박씨는 레코드페어를 위해 대전에서 올라왔다. 그는 재즈 기타리스트인 조지 벤슨의 음반을 두 장 구입했다. “요즘엔 다들 음악을 스트리밍해서 듣잖아요. 레코드페어 분위기가 좋아서 음반을 절로 사게 되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음반 구입을 좋아하지만 점점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해외 중고 음반을 주로 구매한다는 노은지씨는 레코드페어에서 평소 찾기 힘든 음반들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그는 “요즘은 거의 온라인으로 음원이 유통되는데, 이런 행사를 통해 레코드와 음반 구매가 더 활성화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판매 장소는 종종 다과회처럼 느껴졌다. 부스를 지나치는 순간은 모두 음악을 소개받는 자리와 같았다.“지금 나오는 음악이 이 앨범 수록곡이예요. 피아노 음색이 아주 좋아요.” 친절한 셀러들은 스피커 볼륨을 높였다. 곳곳에서 잘 모르는 음악을 추천하는 한편 특정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좋은 셀러는 구매자의 눈길을 읽는다. 박스 가득한 CD들을 유심히 보고 있는데 누군가 곧장 앨범을 꺼내 추천했다. “미국 언더그라운드 앨범인데, 알려져 있지 않은 뮤지션 치고는 참여진이 굉장히 좋아요.” 몇몇 셀러는 CD 안쪽의 고유번호를 읽고 초판 발매 앨범인지를 확인해주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구입이 어려운 음반들로 채워진 부스의 주인 A씨를 만났다. A씨는 음악 동호회 친구와 함께 레코드페어에 참여했다. 그는 오랫동안 음반 수집을 해왔다. “방안이 정리가 안 될 정도로 음반이 모였어요. 그러다 보니 레코드페어에 셀러로 참여할 정도로 겹치는 것도 많아졌네요.” 그는 주로 중복되게 가지고 있는 CD들을 들고 나왔다. 가장 인기가 많은 음반은 행사 오픈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팔린 뒤였다. 
레코드페어의 많은 부스들을 CD가 차지했지만, LP의 물량도 무시할 수는 없다. A씨는 LP와 CD를 들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CD도 디지털 음원이거든요. LP를 재생하면 CD에서 느낄 수 없는 따스함이 있는 것 같아요.” 턴테이블이 없는 청취자들에게 그는 “악기 상가에서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턴테이블을 구할 수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직접 재생해 들어보는것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조언했다.
김대희씨는 레이블 ‘빅뮤직’을 대표해 셀러로 참여했다. “150장 정도의 앨범을 가지고 나왔는데, 손님들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음반보다는 LP나 희귀반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저녁에 둘러보려고 합니다.” 빅뮤직은 재즈 및 어쿠스틱 장르를 중심으로 직접 제작한 앨범들을 판매한다. 레이블이 세워진지 어느덧 6년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열 장 정도의 음반이 발매됐어요. 레코드페어를 통해 홍보도 많이 하고, 대중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레코드페어가 진행되는 동안 2층에서는 뮤지션들의 쇼케이스가 열렸다. 마치 배경음악처럼 라이브가 행사장 전체를 메웠다. 4시 42분, 준비된 쇼케이스의 마지막 순서인 ‘포브라더스’의 공연이 시작됐다. 2층을 바라보며 공연에 몰입한 사람들과 눈앞의 음반에 집중하는 이들이 한 자리에 있었다. 이따금 춤을 추는 사람들도 보였다. 2층에서 바라본 1층은 서로다른 리듬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그 풍경 자체가 거대한 음악으로 보였다.
모든 것은 과거를 지나고, 그 중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잊혀진다. 다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말이다. LP는,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런 필연을 맞이할 차례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레코드는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과거의 주연은 이렇게 오늘의 주인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