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문제, 6월국회 뇌관
6월 임시국회가 지난 3일 문을 열자마자 ‘통상임금’ 문제를 두고 여야의 공방이 시작되었다. 가장 큰 핵심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여부이다.
통상임금은 회사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이다. 기본급과 직책수당이 포함되며 휴일·야근수당을 계산하는 데 기준이 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기업은 연장·야간·휴일근무를 한 직원에게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 초과근무수당과 퇴직금과 직접 관계된 부분인 만큼 임금을 받는 대다수 국민에겐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근로기준법 제56조(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 
“사용자는 연장근로 (제53조, 제59주 및 제69조 단서에 따라 연장된 시간의 근로)와 야간근로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사이의 근로) 또는 휴일근로에 대하여는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여야 한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4일 통상임금의 판단 기준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률안은 1996년 이후 대법원이 통상임금에 대한 판단 기준을 내놓은 이후 정립된 판례이론을 근로기준법에 담은 것이다.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의 범위를 1개월이 초과하는 임금과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하지 않아도 일정한 조건에 해당하는 것”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수 있게 했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도 전날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지급하기로 정한 모든 금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렇게 되면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이다. 

한편 새누리당은 통상임금 문제를 여전히 노사간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인 김성태 의원은 4일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 입니다’에 출연해 “(야당의) 법안이 발의는 됐지만, 물리적으로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법정 기한이 아니다”며 입법에 반대하는 뜻을 내비쳤다. 
게다가 고용노동부와 전국 사업장별 통상임금 실태조사를 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링크) 전국 단위의 실태조사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결론 내지 않겠다는 게 정계의 분석이다.  명확하지 않은 통상임금의 기준으로 소모적인 재판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런 미온한 대응은 국민적 의제로 부상한 통상임금 문제의 해결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박 대통령, 3권 분립 다시 배워야 하나?
통상임금은 오래전 부터 계속된 노사간의 갈등이었지만, 국민적 이슈로 부상한 까닭은 따로 있다. 최근 종영된 ‘직장의 신’으로 직장인을 비롯한 임금노동자들의 권리에  관한 관심이 증폭된 것도 한 가지 이유이다.  더 큰 것은 지난 방미일정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일 박 대통령은 방미 일정 중 대니얼 애커슨 GM 회장에게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 주면, 투자 계속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이에 박 대통령은 “한국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라며 “합리적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화답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윌러드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열린 미국 상공회의소 주최 오찬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당시 한겨레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윤창중 보다 더 큰 사고”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링크)   박 대통령의 방미 관련 기사들을 압도해 버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추문보다 더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다. 
GM은 이미 1·2심에서 패소하고 대법원의 판결만 기다리고 있는 소송의 당사자다. 그런 면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소송과 이해관계가 얽힌 기업의 불만을 “해법을 찾아보겠다”면서 해결을 약속한 것은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말로 풀이될 수 있다. 

1·2심의 판결 뿐만 아니라 대법원도 GM이 아닌 노조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해법’이 기업을 위한 것임은 확실해 보인다. 최근 2012년 3월 대구 시외버스 업체인 금아 리무진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는 판례는 일반적인 추세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행정부의 수장이 사법부의 대표격인 대법원의 판결에 개입하는 것이라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국가 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대통령이 고민 없이 이런 발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헌법의 3권분립이 무시되는 나라로 후퇴하는 것이냐는 지적도 있다.
통상임금 논란의 시작은 ‘기형적인 임금체계’
통상임금을 두고 오랫동안 재계와 노동계가 법정 공방을 벌이는 것은 결국 ‘임금’의 문제다.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는 경우, 추가·특별 근무에 따른 임금이 증가한다. 사용자와 노동자 양 측 모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싸움이 오래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임금 체계에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퇴직금 등을 산정하는 기초인 평균임금에 대한 정의는 규정되어 있지만,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다. 특히 각종 수당의 통상임금 포함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은 ‘통상임금 산정지침’이라는 고용노동부 예규를 통해 정하고 있다. 이 지침에서 정기(고정)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대법원의 입장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부가 대법원과 충돌하는 예규를 수정하지 않는 탓에, 노동자들은 결국 법원에서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기업들은 당연히 대법원 판례가 아닌 고용노동부의 예규를 근거로 들었다. 통상임금 판단기준을 둘러싼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재판장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이유다. 고용부가 통상임금 산정에 대법원 판례를 반영하지 않는 이상 이를 둘러싼 갈등은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고용부가 대법원의 판례를 존중해 현행 예규를 수정하더라도 노사정의 대화가 필요한 지점은 남아있다. 통상임금의 주요 판단 요소인 ‘정기적·일률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 해석이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상정 의원은 개정안을 발의하며 “통상임금은 대법원의 권위를 무시해온 고용노동부의 태도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통상임금 발언으로 인해 정치적인 사안이 되었고, 이제는 법개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말했다. 장시간·저임금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면, 정치인들이 제 일을 해 내는것은 다음이 아닌 이번 6월 국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