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대체 무슨 맛으로 먹어요?”

김홍도, 주막 ⓒ 지식백과

어린 날.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캬아.” 숨을 내쉬는 어른에게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질문. “어른이 되면 알게 돼.”라는 말로는 석연치가 못해 몰래 숨어 한 모금 마셔 봐도, “으악!”하고 내려놓고 말았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으리라 짐작한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 자유롭게 술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지금에도 같은 질문을 한다. 같은 술을 마셔도 누군가는 아무 맛이 없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쓴 맛이 느껴진다고 말하며, 누군가는 정말 달다고 대답한다.

진저리를 치며 술이 무섭고, 싫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유독 발달한 접대식 술 문화, 강요하는 술 문화가 사람들의 술에 대한 혐오감을 높이는 데 일조한 탓이다.

술은 사실 무섭거나 혐오스럽지 않다. 좋게는 사교의 수단으로, 나쁘게는 권력을 강요하는 무기로 쓰이기도 하지만 사실 술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다.

술의 본질은 음식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처럼 똑같이 부엌에 있던 음식. 곡물로 빚어,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 또 우리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부엌에서 만들어 먹던 발효 음식 중의 하나였다.

마치 옛날의 선조들처럼, 요즘에도 아파트 부엌에서 직접 술을 담가 먹는 사람들이 있다. 술이 좋아서, 내 손으로 내가 뭔가 만들어 보고 싶어서, 내 몸에 들어가는 음식을 내가 직접 만들어 먹기 위해서. 무엇보다 “한국술을 가장 멋지게 맛보기 위하여”  ‘막걸리 학교’를 찾는 사람들.

6월 1일, 생애 첫 막걸리 빚기 체험을 위해 기자 역시 ‘막걸리 학교’를 찾았다.

ⓒ 고함20

술 빚기는 간단하다. 쌀을 물에 불려서 물기를 뺀 후, 불에 찜솥을 얹어서 수증기로 쌀을 쪄 고두밥으로 만든다. 이 고두밥을 식혀 누룩과 함께 치대고 열흘 정도 익히면 술이 된다.

주로 찹쌀을 이용해 술을 만드는데, 이 찹쌀을 물에 씻어서 4~5시간 불리는 것으로 술 빚기가 시작된다.

이렇게 쌀을 물에 불려놓으면 쌀알이 수분을 다 빨아들여서 안에까지 촉촉해진다.

이 촉촉해진 쌀을 체솥에 담아 수증기를 이용해 1시간가량 쪄내면 일반 밥과는 약간 다른 고두밥이 된다. 

고두밥은 보통 밥보다 쌀알 상태가 좀 더 ‘낱알낱알’하게 유지되는 특징을 가진다.

물을 같이 잡아 끓이는 밥알과 달리 떡처럼 증기로 찌는 것이기 때문에 쌀알 한 알 속에 스미는 수분의 양이 비교적 더 정량화될 수 있다.

게다가 쌀알에 스미는 수분양이 고르면 고를수록 효모를 받아들이는 양 역시 균일해져 발효에도 더 효과적이라고.

쪄낸 고두밥은 잘 늘어놓아 식히고, 밥의 양이 100g이면 누룩을 10~20g정도, 그리고 물을 150ml정도 잡아 치대기 시작한다.

물을 얼마를 잡느냐에 따라 술맛이 또 달라진다고 한다. 밥 100g 당 물 150ml의 비율은 현대 양조장 같은데서 잡는 기준이다.

(왼쪽 사진은 빻기 전 누룩의 모습이다.)

처음에는 손 안에서 거친 감촉의 누룩과 탱글탱글거리는 밥알들이 따로 논다.

그렇지만 열심히 정진하여 밥알이 뭉개져 떡처럼 될 때까지 으깨야 한다.

팔이 떨어져나가라 치댈수록 맛있는 술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치댄 밥과 누룩을 항아리에 담아두면 곡물의 전분(탄수화물)이 누룩의 당화 효소에 의해서 당화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단 맛을 품게 되고, 이 당을 먹고 또다시 누룩의 효모(이스트)가 내놓는 게 알콜이다. 이 때 당은 알콜로 바뀌면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게 된다.

발효가 시작되면 탄산가스가 생성되면서, 술 항아리에 귀를 기울이면 타닥타닥, 가만히 ‘빗소리’가 들리곤 한단다.


술 항아리는 20~25도 사이에 보관하고 하루에 한 번씩 휘저어 주어야 한다.

(요즘의 아파트는 대부분 에어콘으로 늘 20~25도를 유지하고 있어 의외로 술을 빚기 좋은 공간이라고 한다.)

열흘 정도가 지나, 기포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으면 술이 다 익었다는 증거이다.

 
 

술이 익으면 우선 맑은 술이 위에 뜨게 되는데 그걸 떠낸 걸 청주라고 하고, 밑에 지게미가 있는 것을 체에다막 거른 것이 바로 막걸리이다.

또 이 막걸리와 청주를 증류기에 넣어서 끓여서 냉각하면 소주가 된다.

이렇게 빚은 술을, 아끼는 사람과 나누어 마시는 과정으로 술 빚기는 마무리 된다.

술 빚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술이 “빚을 때마다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세 동이를 담아도 세 동이가 다 맛이 다르다. 온도가 다르고, 손맛이 다르고, 물맛이 다르고, 장소 역시 다르다. 술 항아리를 아이를 돌보듯 할수록 좋은 술이 탄생한다. 발효란 기본적으로 미생물을 돌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 분이 빚은 술에서는, (냄새를) 맡아보니까 생선 구운 냄새가 나더라고. 생선 구워 먹었어요? 물으니까. 맞아요, 구워먹었습니다. 이래요. 술이 그런 냄새 이런 것들을 잘 빨아들이기 때문에 부엌에 둘 땐 조심해야 해요. 국화주를 담을 때는 국화꽃주머니를 매달아두는 것만으로도 국화향이 밴다고 합니다.”

“유럽의 자본주의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세계의 주류 술이 맥주가 되고 말았지만, 만일 쌀 문명이 세계를 제패한다면 맥주를 대체할 저알콜 탄산음료는 막걸리가 될 것이거든요. 그렇게 됐을 때 우리가 얼마나 주도권을 갖고 얘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막걸리를 얼마나 즐기느냐에 달렸습니다. 음식문화는 누리는 자의 것이고 즐기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에요.”

“사서 먹는 김치보다 어머니가 직접 만든 김치가 훨씬 맛있죠? 비교 안하는 거죠? 그것처럼 막걸리도 우리 곁에 있는 핸드메이드 식품이에요. 맥주? 와인? 우리 것 아니에요. 그런데 막걸리는 재료가 일단 좋거든요. 우리나라의 찹쌀을 찌고, 전통 누룩을 섞고, 직접 손으로 치대어서 정성들여 온도 관리를 해요. 내 것용으로. 한국인이 직접 만들어보면서 직접 누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막걸리 학교’의 교장, 허시명 선생의 말이다.

ⓒ 고함20

MT나 뒷풀이에서 술을 먹고 게임을 하면서 지면 벌주를 마시는 광경은 한국인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이런 술 게임은 역사도 깊다. 신라 말기 포석정에서는 흘러가는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잔이 자기한테 오면 술을 한잔 마시고 개인기를 보여주는 놀이를 했었고, 안압지에서 발견된 주령구는 후래자삼배(늦게 참여한 사람이 세잔의 술을 연달아 마시는 것)의 원조격인 ‘석잔 한꺼번에 마시기’ 등의 벌칙이 적힌 술게임용 14면체 주사위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좋은 경치 아래에서 술을 마시며, 마시는 술에 운치 있는 이름을 붙이는 게임을 즐겼다.

한국 문화의 결을 따라 술이 있다. 다만 본질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아무거나 마시게 되고, 아무렇게나 마시게 된다.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에 먹힌다. 그렇기에 술 빚기를 해보는 이유는, 쉽고 재밌고 멋있으며 ‘맛있는’ 술을 배우기 위함인 것이다.

ⓒ 막걸리학교

6월 1일에 모인 <배움술 기행단> 단원들은 첫 날 ‘막걸리 학교’에 모여 오래로부터 전해 내려 온 한국 고유의 술문화와 바르게 술을 마시는 법을 배우고, 직접 막걸리를 빚는 체험을 했다. 그리고 이튿날인 2일에는 ‘배다리술박물관’에 방문하여 전통 술을 만드는 도구들을 관람하고, DMZ 내에 위치한 ‘장단콩마을’에 들러 된장과 간장의 발효과정을 엿봤다.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감악산의 ‘머루주양조장’이었다. 산 경사를 파 만들어진 지하 셀러에는 한가득, 달콤한 나무의 냄새가 스며있었다.

우리는 첫날 다함께 빚은 막걸리를 15일에 모여 열기로 했다. 이틀간 우리가 시음한 막걸리는 총 7종류에 이르렀다. 투어가 끝날 무렵에는 온통 쌀 냄새가 났다. 푹 젖어있다 돌아온 집에서 컴퓨터를 켜보니, 어느새 도착한 메일엔 참 따뜻한 말이 적혀 있다.

'술은 잘 익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