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왕자는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구두 한 짝 덕분에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상상해보건대,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추면서 투명한 유리구두를 통해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았을 것이다.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닌 탓에 크게 붓고 부르튼 그녀의 발을 왕자는 분명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알바렐라 2013에서는 일터 안팎에서 험난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시대의 알바렐라들에게 유리구두 대신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체크리스트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사회를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알바렐라들이 행복한 결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함20과 독자들이 그 길을 터줄 수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의 알바 수난기다시 쓰는 그 열 세번째 이야기일렬로 늘어서서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를 외친 뒤, 깔끔하게 틀어올린 머리를 한 다정다감한 여직원이 편안한 룸으로 인도하는 장면. 전형적인 중국 코스요리 전문점의 첫인상이다. 수능을 갓 마친 열아홉 여학생이 경험한 기상천외한 식당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놀라지 마시라, 코스요리 수만큼 다양한 스트레스가 있다는 사실에.

 
–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윤렐라(20)구요.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수능 끝나고 중국 코스요리 전문점에서 일했어요.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 중간에 1시간 반 정도 쉬는 시간이 있었고요.

 

– 매일 일하신 건가요?

 일주일에 1번, 주말엔 손님이 많아서 주로 평일에 쉬었어요. 원래 요일이 지정되어 있었는데 계속 근무자가 바뀌니까, 직원들 편한 쪽으로 하다 보니 저는 계속 쉬는 요일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수능 끝난 직후라서 알바생이 유난히 자주 바뀌었거든요.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고요. 일하던 당시가 크리스마스, 연말, 신년, 졸업 입학 시즌이라 일이 유독 많아서 하루이틀하고 관두는 사람도 많았어요. 처음에는 저까지 2-3명 되다가 새 직원으로 들어오시는 분들도 계셔서 알바는 한두 명 정도밖에 안 되었어요.

 

– 급여는 어떻게 받았어요?

 2012년 당시 최저 시급인 4580원을 받았어요. 2주 후부터 올려주셔서 5500원을 받고 일했는데, 갑자기 대리님이 월 120만원으로 바꾸자고 하셔서 얼떨결에 바꾸게 됐어요. 환산하면 하루에 5만원인 건데, 월급으로 말하니까 많아 보이잖아요. “되게 많이 받겠다. 120이면 되게 많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요. 생각해보라, 가 아니라 바꿔라, 이렇게 통보하시니까 얼떨결에 그런다고 했죠.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되게 어이없더라고요.

 

– 계산해보니 시급 4167원 정도네요. 최저시급보다 낮은 건데, 항의해보셨어요?

 좀 아니다 싶어서 대리님께 문자를 보냈는데, “너 생각해주는 건데 왜 그러냐.”며 오히려 화내셨어요. 손님이 없으면 알바가 일을안 하니까 가게 입장에서는 돈이 나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시급으로 하는 알바들은 귀가시켰거든요? 근데 저는 월급제니까 귀가 안 시키고 끝까지 일을 시켰죠. 다른 알바생한테 집에 가라고 할 때, “봐, 시급제로 했으면 너도 저 때 갔어야 해, 돈 더 못 받아.” 이러셨어요. 노동력 착취죠. 정말 화났어요.

– 근로 계약서는 안 쓰신 거예요?

 네. 보건증이랑 통장 사본 떼고, 미성년자였으니까 부모님 동의서 받고, 그것밖에 안 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마음대로 급여를 정했나 봐요. 또 일 그만뒀어야 할 때는 갑자기 일당으로 급여를 따지시는 거예요. 분명 월급제로 주시겠다고 해놓고는. 4일 정도 못했으니까 일당 4만원으로 쳐서 16만원을 깐 얼마를 주겠다고. 월급제는 그렇게 운영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모르겠어요. 뭐라고 할 말이 없더라고요. 주방 사람들이랑 친해서 지금도 연락하는데, 얘기 들어보면 월급을 되게 밀려서 주고 그랬대요. 사장님이 조폭이라는 소문도 돌았는데, 양아치 맞다고 욕을 많이 했죠.

 

– 식당에 직원, 매니저 같은 계급 체계가 있는 건가요?

 대리님. 주임님. 이렇게 있고 나머지는 직원과 알바예요. 주방 5명, 홀 6명 정도. 직원 다 합쳐서 10-12명 정도 됐던 것 같네요. 저는 직원들이랑 다를 바 없었는데, 알바로 들어온 거라서 직원 분들이 급여를 더 많이 받았어요. 확실하진 않는데 160~180만원 사이였을 거예요. 대리님이 180만원 정도 받으신 것 같아요. 대리님이 주로 카운터를 보시고 사장님과 연락을 하셨어요.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처음에는 주방에서 주로 일했는데, 설거지해서 나오는 그릇들 물기 닦고 정리해서 넣고, 후식 만들고, 반찬 담아놓는 일들을 했어요. 그리고 손님들 나가시면 방 치우고 세팅하고, 아침에 전체 청소하고. 그렇게 했죠. 그런데 다른 알바들과 달리 제가 오래 버티다 보니 홀에 투입됐어요. 코스 요리를 큰 접시에 날라서, 앞접시마다 조금씩 덜어주는 서빙을 했죠. 손님 들어오실 때 앞에 서서 인사하고. 마감까지 했어요. 사실 홀이 바쁘면 홀에 나가있고 주방이 바쁘면 주방에 있고 그랬어요. 저야 알바니까 뭐 시키는 대로 한 거죠. 거의 모든 일을 다 한 셈이에요.

 

– 홀서빙은 예상 못했던 업무였을 텐데 사장님이 시키신 건가요?

 홀에 나가서 일하라고 하신 건 사모님이에요. 사장님이 가게에 잘 안 나오세요. 사모님은 매일 영수증 같은 거 처리하고. 매출을 아셔야 되니까 하루에 한 번 정도 나오셨어요. 사장님은 가게 안 나오셔도 CCTV로 저희를 감시하셨어요.

 

– CCTV로 감시하셨다고요?

 네. 사장님 댁의 TV랑, 사장님의 핸드폰이랑 연결해서 보신 것 같아요. 사장님이 맞은편 건물에 스크린골프장도 같이 운영하셨는데, 거기서 보시는 것 같았어요. 주방이 손님들한테도 안 보이고 먹을 것도 많아서 사람들이 주방에서 쉬는 걸 좋아했거든요? 근데 사장님은 일 없을 때 홀 사람들이 주방에서 쉬는 걸 안 좋아하셔서, 손님 없을 때 장식품 위에 먼지 닦고 벽 닦는 대청소를 하기도 했어요. 거의 쉴 틈 없이 일한 것 같아요.

 

– 홀 서빙으로 일 바뀐 것 말고는 초과 업무는 없었나요?

아뇨, 있었어요. 맞은편 건물에서 스크린골프장 운영하신다고 했잖아요. 저희는 코스 요리 레스토랑이라 배달을 안 하는데, 그 골프장이 지어진 지 얼마 안 돼서 사장님이 음식 서비스를 해줬던 것 같아요. 골프장 손님들한테 주문 들어오면 제가 배달을 갔어요. 겨울이었고, 배달통에 음식이 많이 들어가다 보면 무겁고 귀찮은데 되게 자주 배달해야 했어요. 뿐만 아니라 화장실 청소를 하기도 했어요. 화장실 청소해주시는 분이 계시긴 했는데 시간 나면 저도 자주 청소했던 거에요.
 

– 업무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식사 후 그릇 치우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한 층을 전부 쓰는 큰 식당이고 대부분 신발 벗고 들어가는 룸식인 데다 단체석도 많아서 되게 손이 많이 가요. 잔반도 있고, 다 들고 옮겨야 하니 무겁고. 치우다가 벨 울리면 다른 방에 들어가야 하기도 하고. 그래서 드신 그릇 차곡차곡 정리하고 가시는 손님들이 계시면 정말 고마웠어요. 아, 그리고 주방이랑 홀이랑 별로 사이가 안 좋아요. 어떤 음식점이든 대부분 그런가봐요. 홀은 손님 입장 생각해서 음식 속도나 요구 사항을 주방에 전달해야 하는데 주방은 일단 빨리 주문받은 음식부터 내보내야 하니까 의견 전달을 하면서 갈등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주방 식구들이랑도 친한데, 가운데 껴서 여기저기 휘둘리다 보니 힘들었어요. 돈 문제 이후로 대리님과 되게 틀어지기도 했고. 많이 울었죠.
 

–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12시간 동안 거의 서 있어야 하니까 다리랑 발바닥이 진짜 아파요. 스타킹을 신어야 하는데 정말 올이 매일 나가는 거예요. 구두 신을 때 신는 살색 덧신을 신어도 이틀에 하나 나가서, 스타킹 사는 데 돈이 많이 들었어요. 예약제로 운영되는 고급 레스토랑이다보니 복장 규정도 있거든요. 그냥 살색 스타킹을 신거나 맨다리여야 해요. 양말도 못 신게 해서요. 또 유니폼을 입는데, 셔츠랑 마이랑 치마로 구성되어 있어요. 정장 스타일이에요. 신발은 통굽 슬리퍼를 줬어요. 알바생은 홍파오(붉은 중국식 옷) 같은 거 입고 까만 바지를 입는데. 머리도 꼭 묶어서 머리망에 넣어야 했어요. 사장님이 앞머리 있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옆머리도 깔끔하게 넘기라고 하시고요. 음식 하는 데니까 머리카락 떨어지면 안 돼서.
 

– 힘들어서 그만두신 거예요? 왜 그만두시게 됐나요?

그만둘 생각도 있긴 했는데, 잘렸어요. 이렇게 말해도 되나? 대리님이 사장님한테 저에 대해 안 좋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 한 달 채우기 4일 전쯤에 저를 따로 불러서, 나중에 다시 부를 테니까 그만둬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때가 직원들이 많이 들어와서 자리 잡아가던 시점이라, 알바는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자르신 것 같아요.
 

– 대리님 말고 다른 분들이랑은 어떻게 지냈어요?

 주방 오빠들이 재밌게 장난쳐주고, 홀 식구들도 제가 막내라 예뻐해 주셨어요. 어리다고 무시하는 건 없었어요. 아무래도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까 홀에서 같이 일하는 언니들, 이모들과 친해지죠. 일 끝나고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요. 그나마 예약 손님d; 없을 때나 한 테이블 정도만 있을 때는, 팀을 나눠서 돌아가면서 예약이 제일 늦게 잡힌 방에 들어가서 쉬었어요. 온돌방이라서 좋았죠 헤헤.

 

– 그렇군요. 일하면서 진상 손님도 많이 봤겠어요.

별 거 아닌 거 가지고 트집 잡으시는 분들이 많았죠. 음식을 천천히 달라고 하셔서 주방에 부탁하면 음식이 너무 안 나온다고 뭐라 하고, 후식이 녹차나 커피에 과일이 딸려 나오는데 다른 음식은 없냐, 왜 이것밖에 안 주냐, 맛이 짜다, 고추잡채 시켰는데 왜 고기가 없고 피망만 있느냐 다시 만들어와라, 등등. 그럴 때 “아 네 죄송해요. 다시 가져다드릴게요.” 하는데, 요리하시는 분들께 다시 만들어달라고 할 땐 제가 괜히 죄송해져요. 특정 메뉴 할인해주는 행사 기간엔 회원 아닌 분들이 얼버무리면서 할인 가격 받으시려고 하길래 주임님이 본인 돈으로 메우시고 해드린 적도 있어요. 평판도 있고, 사장님 귀에 들어가면 혼나고, 싸우면 보기도 안 좋으니 저희는 ‘을’ 입장에서 죄송하다고 하는 게 제일 깔끔하게 해결하는 방법이에요. 본인이 음식 드시다 양념 흘리셨는데 그걸 닦아달라고 하신 손님도 있어요. 주임님이 물티슈 같은 걸로 직접 닦아주셨어요. 손님이 왕이에요 진짜.
 

– 그래도 재밌는 기억도 있죠?

 그럼요. 저희가 직접 접시에서 서빙해 드리기 때문에 서빙스푼 말고는 음식에 다른 게 거의 안 닿아요. 그래서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식을 보면 “야 여기 음식 남았어!” 하고 다같이 달려가서 문 딱 닫고 집어 먹었어요. 일이 하도 많으니까 점심 저녁 다 먹어도 배고프거든요. 크림새우가 제일 맛있었는데…… 또 식당 입구부터 주방 앞까지 직사각형 연못이 있는데 거기 물고기랑 거북이가 살아요. 한번은 거북이가 바깥에 나와서 깜짝 놀란 적도 있어요. 물고기 죽으면 장화 신고 건지러 들어가고, 재밌었어요 나름. 손님들이 돌잔치 하고 남은 떡 주고 가시기도 하고 기분 좋아지신 손님들이 1-2만원 팁 주실 때도 있었고요. 제가 일을 잘 해서 사모님께 칭찬도 들었어요. 처음에 이렇게 힘든 일을 해봤고 잘 해냈으니 어딜 가더라도 예쁨 받고 잘 할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 있으세요?

 대리님께 한 마디 하고 싶네요. 사회 초년생에게 사기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러시는 거 아니라고요. 돈 문제로 갈등 있고 난 다음에 사람이 싹 바뀌는 걸 봤거든요. 덕분에 사회 나가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감정을 어떻게 숨기는지 등을 뼈저리게 느꼈네요. 친구가 이 식당 알바 어떠냐고 물어보기에 이렇게 말해줬어요. “괜찮긴 한데, 엄-청 힘들어. 가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