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왕자는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구두 한 짝 덕분에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상상해보건대,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추면서 투명한 유리구두를 통해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았을 것이다.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닌 탓에 크게 붓고 부르튼 그녀의 발을 왕자는 분명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알바렐라 2013에서는 일터 안팎에서 험난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시대의 알바렐라들에게 유리구두 대신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체크리스트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사회를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알바렐라들이 행복한 결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함20과 독자들이 그 길을 터줄 수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의 알바 수난기. 다시 쓰는 그 열여섯 번째 이야기. 먹음직스러운 데다 값도 비싸 쉽게 접하지 못하는 음식 중 대표주자는 단연 초밥이다. 특별한 날에 큰맘 먹고 가곤 하는 회전초밥 가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일, 각양각색의 롤과 튀김, 빛을 받아 반짝이는 생선 초밥들을 하루 종일 마주 대하던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서빙 알바’. 그가 보고 느낀 초밥집은 어떤 곳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지금부터 들어보자.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25살 대학생 정렐라입니다. 친구의 소개로 2007년 1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일산의 회전초밥 프랜차이즈에서 주말에 일했습니다. 중간에 한 달 정도 쉬었긴 했는데 바로 다시 시작해서, 꾸준히 일한 건 1년 2개월 정도 되는 것 같아요.

Q. 급여는 어떻게 받으셨나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4300원이었나. 당시 최저 시급을 딱 맞춰서 받았어요. 군대 가기 직전인 2009년의 마지막 2개월 동안은 5000원 받았고요. 학교 다녔으니까 평일엔 일을 못 했고 주말에는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그러니까 오픈부터 마감까지 일했어요. 중간에 밥 먹는 시간 1시간 있어서 11시간 일했죠.

Q.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12시간 중 1시간뿐인 건가요? 점심 저녁 따로 없고요?
아, 아침에 가자마자 청소를 할 때 옆에 이모님(설거지해주시는 분)이나 경력 짧은 주방 형들이 밥을 차려놓으세요. 11시 30분에 오픈이라 10시에 출근하면 청소하고 밥 먹고 같이 하거든요. 그게 아침 겸 점심이고, 방금 말한 3시 반에서 4시 반은 점심 겸 저녁이라고 생각하고 먹어요. 청소하면서 그 시간에 같이 밥을 먹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쉬는 시간이죠. 어차피 남자들은 1시간 30분 중에서 10분 만에 밥 먹은 다음에 담배 한 대 피고 다시 일 시작하고 그랬으니까.

Q. 남은 초밥 같은 것도 드시지 않나요?
네, 주방 형들이 마른 초밥을 줬어요. 생선이 촉촉하고 신선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공기 중에 있으면 마르거든요. 맛이 없진 않은데 손님들한텐 나갈 수 없으니까 주기도 하고, 여유 있는 시간에 뭐 먹고 싶다고 하면 주기도 했고요. 그런데 혹시 초밥 좋아하세요? 만약 좋아하신다면, 초밥 집 알바 해보면 좀 싫어지실 거예요. 일 끝나고 남는 건 다 저희가 먹었는데, 처음에는 좋지만 나중에는 내일도 이렇게 많이 남을 걸 알기 때문에 지겨워져요. 어차피 맛있는 생선 초밥은 인기 있어서 다 나가고, 흰살 생선이나 롤 같은 것만 많이 남고 그렇거든요.

Q. 총 몇 명이서 함께 일했나요?
다 합쳐서 서빙 직원은 12명 정도 됐고요. 조리사들은 총 10명이었어요. 거기에 이사님, 사장님은 매니저급으로 계셨고. 사장님은 거의 안 나오시고 이사님이 관리하셨죠. 사장님 친구인데 지분이 적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어요. 직원이란 게 알바생이랑 정직원 합친 총 명수고, 제가 있을 땐 서빙은 모두 알바를 썼어요. 평일엔 서빙 알바는 4명 나왔고 주말에는 사람이 많다보니 오전에는 4명, 오후 그러니까 5시 반부터는 7-8명이 했죠.

Q. 제일 바쁠 때 계셨던 거네요?
그렇죠. 주말이 제일 바쁘죠. 아무래도 초밥 집이다보니까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뭐 이럴 때 좀 많이 붐벼요. 매상이 3배 정도 뛰고 그랬으니까. 그럴 때 친구들한테 나 좀 살려달라고 외쳤어요. 그런 날 집에 가면 몸에서 생선 비린내가 나서 다음날 그 옷은 입지도 못했어요. 제 옷 입고 일하는 게 아니라 드레스룸에 박아 두는데도 그 쪽으로 냄새가 다 퍼졌거든요.

Q. 회전초밥집의 서빙은 어떤가요?
A레일과 B레일, 2개가 돌아가는데 A레일에는 예컨대 생선초밥만 놓고, B레일에는 롤 종류나 튀김 등을 올려요. 레일에서 손님들이 직접 꺼내 먹지만, 가끔 특별하게 우동이나 소바 등을 주문하는 손님들이 계시고, 그것들은 레일에 올려서 돌릴 수 없으니까 가져다 드려요.

또 초밥은 서빙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리사 형들이 직접 올려요. 위에 올라온 초밥이라도 안 신선해 보이면 바로 만들어서 드려야 하는데, 혹시 그런 거 얘기 못 하는 손님들도 있을까 봐 20분마다 한 번씩 얘기해요. “드시고 싶으신 게 있으시거나 더 신선한 걸 원하시면 앞에 있는 조리사에게 직접 말씀해 주세요.” 일본 음식점의 특징인지 뭔진 모르겠는데 목소리를 엄청 크게 내야 되거든요. 손님이 오시면 문 열리자마자 “감사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해야 하는데 나중에는 귀찮아서 마지막 단어인 “다-” “쇼-”만 하다가 걸려서 혼나기도 했어요.

또 처음 자리에 앉으시면 미소 된장국, 와사비, 컵 같은 거 놓아 드리고, 술이나 음료수 같은 것도 서빙해요. 나가시면 접시 계산하고, 마감으로는 라꾜(파뿌리)와 생강 싹 걷어서 냉장고에 넣어 신선하게 보관하고, 통들 설거지하고, 레일에 올라와있는 것들 빼고. 그런 것들 했어요. 그리고 아침저녁에 청소하고요.

Q. 하셨던 일 중에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미소장국 통 옮기는 거요. 40kg 정도 되는 통에 장국을 가득 담아 주방에서 홀까지 매번 옮겨야 했는데, 통이 비었는지도 확인하고, 주방에 다시 국을 끓여달라고 시간 계산하는 것도 해야 했는데 이게 남자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거든요. 보통 하루 매출이 600만 원 정도 날 경우에 평균 3번인데, 3번까진 뭐 괜찮아요. 그런데 가끔 1500만 원, 2000만 원씩 파는 날은 7-8번 정도 왔다 갔다 하는데, 진짜 팔이 후들거려요.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서빙으로 남자는 거의 안 뽑아서 여자들이 아무리 7-8명 나와도 남자는 저 1명밖에 없었거든요. 그거 제외하고는 아무래도 11시간 서 있는 게 힘들었죠.

Q. 사장님은 어떠셨어요?
사이코였어요. 돈 엄청 밝히고, 엄청 짠돌이였어요. 알바생들 못 믿고. 어느 수준이었냐면, cctv가 원래 손님들 도망가지 않나, 사건 터지면 보려고 감시하는 용도로 설치해둔 거잖아요? 근데 그걸 집에서 볼 수 있게 한 거예요. 알바들이 일을 열심히 하나 안 하나 감시하는 거죠.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어느 날 손님이 진짜 없었어요. 초밥 집이라는 게 날씨가 너무 덥거나, 비나 눈이 오면 손님이 뚝 끊겨요. 초밥은 금방 상할 것 같은 이미지니까요. 그 날 손님이 11시 반부터 3시까지 1명도 안 왔어요. 그랬는데 전화가 오더니 알바생 2명 돌려보내라고… 그 때 알게 됐죠. 아, 이 인간이 집에서 보고 있구나. 결국 자기 아내를 직원으로 채용해서 저희를 감시하게까지 했어요. 그전까지 우리가 몇 년 간 쌓아둔 노하우 같은 게 있잖아요. 그 사모님이라는 사람이 그걸 한 번에 다 바꾸더라고요.

Q. 예를 들면 어떤 걸 바꾸려고 하셨나요?
요리나 튀김을 먹으면 깔아주는 다다미스러운 나무 판이나, 우동 그릇, 굴 껍질 같이 어지럽기만 하고 식탁에 필요 없는 것들이 쌓이곤 하는데, 매번 주방에 가지고 들어갈 순 없으니 커다란 통에 그것들을 모아서 담아놨죠. 그러다 그 통이 가득 차면 주방으로 들고 들어가곤 했는데, 그 통이 더럽다고 치우고 주방으로 바로 들고 들어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선이 너무 길어지죠. 또, 접시를 셀 때 색깔별로 다섯 오자로 셌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계산하기 힘들다고 그걸 숫자로 하나하나 쓰라고 그랬어요. 원래 해오던 방식이 아니라서 실수도 많이 했는데, 죄다 우리 잘못이라고 하더라고요. 와사비 짜는 모양도 바꾸려고 그래서 여자 분들이 엄청 귀찮아하더라고요. 그리고 두 명 이상 모여 있으면 슬쩍 끼고, 사람들 흉도 보고 다녔어요. 그러니까 다들 싫어했죠. 2008년 10월 쯤 들어왔는데, 그 사람 때문에 알바 그만둔 사람도 많아요. 더 이상은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면서.

Q. 계약된 일 이외의 일은 없었나요?
밤 10시에 일이 딱 끝나면 좋은데, 손님이 안 가고 그러면 10시 반 11시까지 가끔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10 이후부터는 급여를 전혀 안 줬어요. 그래서 몇 번 얘기하긴 했는데, 직원들은 챙겨준 걸로 알고 있는데 알바들한테는 전혀 안 해줬어요. 처음에 얘기했다가 안 되는 거 알고 다들 포기했어요. 또 공휴일이나 명절처럼 손님 많은 날에, 너무나 당연하게 나오라고 강제했어요. 평일 5일에 팔 걸 하루에 파는 날이라 엄청 대목이긴 한데, 그런 날엔 알바도 쉬게 되어 있으니까 안 된다고 하면 네가 안 나오면 어떡하냐, 그럼 너 대신 할 수 있는 애를 뽑아놓고 쉬어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나갔었죠. 몇 번 당하고 나서는 한참 전에 이 날 절대 못 나온다고 선수 쳤어요. 나오게 하면 그만둘 거라고 말하면서요.

Q. 손님들과 관련된 에피소드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자기 앞에 음식 직접 갖다 주지 않는다고 쌍욕하는 할아버지들이 가끔 계세요. 테이블마다 뜨거운 물 나오는 정수기가 따로 있는데, 100도 가까이 되니 주의하라는 설명이 다 쓰여 있는데도 손가락 직접 댔다가 데이고서는 저희한테 화내는 여자도 있었어요. 이 주변에 사는 학생들은 나중에 꼭 이 회전초밥집에 가서 먹겠다는 꿈을 키우고 살아요. 2명이서 배 좀 채웠다 싶게 먹으면 10만 원 정도 나오는 비싼 집이거든요. 생선초밥 중 제일 싼 게 한 접시에 3300원이고 장어나 참치는 5000원, 1만 원까지 나가니까요. 아빠 카드 훔쳐서 초밥 먹고 카드 긁고 나서, 디저트 먹겠다고 앉아 있다가 아버지한테 머리채 잡혀서 나간 학생도 봤어요. 또 학점 F 받았던 교수님이 계셨는데 교수님 가족이 식사하러 온 적도 있어요. 민망해서 그 날은 숨어서 도망 다녔네요. 참, 훈훈한 손님도 있어요. 토요일 밤마다 오시는 노부부가 계셨는데, 어느 날 사케 한 잔을 따라주셔서 받아 마셨더니 테이블에 만 원이 올려져 있었어요. 친해졌다고 팁을 주신 거예요.

Q. 마지막으로 풀지 못한 한이 있다면?
마지막 나갈 날이 이틀. 3월 쉬고 2월까지 일한다고 하고 알바를 늦지 않게 가려면 9시에 일어났어야 했거든요. 군대 가기 직전이라고 7시까지 술을 마시고, 알바 가야지 하고 씻고 나왔는데 갑자기 이사님한테 전화가 와서, 너 말고 일할 사람 생겼다 하면서 이제 그만 나오라는 거예요. 당일에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빈정이 확 상했죠. 알바 같이 하던 사람들이랑 만나서 엄청 욕했어요. 그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끝에 좋게 끝났으면 좋은데. 아쉽지만 그렇지가 않았어요. 스시집 알바 나름대로 재밌게 했는데, 끝 감정이 정말 나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