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을 향한 쓴소리, 언론유감!

수많은 언론들에서 날이면 날마다 다뤄지고 있는 20대, 청년, 대학생 관련 기사들. 20대를 주목하고 다그치고 때로는 힐난하는 기사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요? 20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20대를 요리하는 키보드 위의 손끝들을 20대의 손으로 처단합니다! 매주 20대, 청년, 대학생 키워드로 보도된 기사들 중 어떤 기사가 좋고 어떤 기사가 나쁜지 알아보는 ‘언론유감’ 연재입니다.

BEST
[왜냐면] ‘창조경제’의 시대를 사는 대학생에게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597562.html

창의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근본적 의미에서, 창의성은 물음의 능력이다. 순수한 호기심과 궁금증, 그것이 창의성의 시작이자 끝이다. 남이 알려준 어떤 전제에도 만족하지 않고 모든 것에 계속해서 질문할 수 있는 마음의 가려움이 창의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예민하게 깨달아야 한다. 호기심은 제도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니 제도로서의 경쟁을 거쳐 대학에 들어와, 학점과 스펙과 취업이라는 지상 목표를 부여받은 대학생들에게 제도(틀)에 갇히지 않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가지라는 말은 사치가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취업 경쟁의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연예인 가십 기사를 읽는 말초적 호기심은 가지되, 역사나 철학에 관한 교양 고전은 언감생심이려니와 조금 복잡해 보이는 사회문제에 대한 신문 칼럼조차 멀리하는 것이 요즘 대학생의 적나라한 모습 아닌가. 그러나 고백의 어조로 말하거니와 이것은 그대들의 탓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입시와 취업이라는 제도적 경쟁에 필요하지 않은 관심, 곧 ‘필요하지 않은 호기심’은 뒤로 치워두라고 이 사회가 그대들에게 줄곧 말해왔으니까 말이다. 부끄럽지만 이것은 대학도 마찬가지여서, 다들 모집 경쟁을 위해 ‘잘 가르치는 대학’이라는 현란한 광고는 내걸되 정작 무엇을 잘 가르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는 것이 요즘 대학의 모습 아닌가.

바야흐로 ‘창조경제’의 시대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국정 기조로 내세운 이후, 사회 각계에서는 어떻게든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물결에 합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서울대는 논란이 일자 금방 철회하긴 했지만 ‘창조경영학과’를 신설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여지없이 대학생들에게도 창의성을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시작되었다. 스펙 경쟁에 시달리며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도 없는 대학생을 신경쓰는 시선은 어디에도 없다. 한겨레 기사에서는 이러한 사회의 흐름과 달리 진정한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대학생들을 향한 진심 어린 위로를 던지고 있다. 진정한 창의력은 나만의 가치를 발휘하여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닌, 주체적 사고능력임을 역설하고 있다.

창조경제의 흐름을 타고 너도나도 꼰대질을 하고 있는 기성 언론과 달리 제도적 경쟁에 치이는 대학생들을 향한 위로에 BEST 기사를 수여한다.

BAD
‘과외 世代’ 대학생들, 전공 과목까지 선행학습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30/2013073000095.html

학점 관리를 위해 개인 과외를 받는 대학생이 생겨나고 있다. 토익·토플 등 취업이나 졸업에 필요한 영어 시험을 준비하려고 외국어 학원에 다니는 것과는 별개로, 중·고등학생처럼 학교 성적을 잘 받으려고 개인 과외를 받는 것이다.

이는 어릴 적부터 사교육에 길들여져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는 세대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대학에서 낯선 강의나 어려운 전공 서적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 학습 계획을 세워 공부해야 하는데, 사교육에 익숙한 요즘 대학생들은 중고등학생 때처럼 ‘돈 내고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20대 개새끼론‘ 에 이어 20대를 향한 또 하나의 담론이 등장했다. 이른바 자기주도학습을 할 줄 모르는 ’과외 세대‘이다.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학점 관리를 위해 스스로 학습하지 않고 사교육을 받는 대학생들을 소개하며 이들을 ’과외 세대‘라 명명하고 있다. ‘과외 세대’ 대학생들은 자기주도학습을 하지 않고 ‘돈 내고 배우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이 개인 과외를 받으면서까지 학점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취업을 위해 재수, 삼수까지 하면서 역대 최악의 고용난에 맞서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학점은 중요한 스펙 중 하나이다. 학점을 높이려면 무엇이든 할 수 밖에 없는 대학생들이 할 줄도 모르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자기주도학습을 통해 효율적으로 학점을 높일 수 있을까? 이미 12년 동안 타율적인 교육과정과 학습 방법에 익숙해진 대학생들에게 이제 성인이니 알아서 공부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스펙의 일종인 학점을 올리기 위해 절박해질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을 비판하고 있는 조선일보 기사에게 BAD 기사를 수여한다.

출처 : 뉴시스


 

Worst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까닭은…(헤럴드 경제)
http://news.heraldcorp.com/view1.php?ud=20130725000220&md=20130728004034_AT

올해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에 무려 20만4698명이 원서를 제출했다고 안전행정부가 밝혔다. 공무원 공채제도가 실시된 이래 지원자가 20만 명이 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년처럼 이번 지원자들도 대부분 대학졸업 이상의 고학력자라고 한다. 금년도 대학 졸업자가 4년제와 2년제를 합쳐 48만여 명 정도인데 대략 이들 중 절반가량이 하위직이라도 공무원을 하겠다고 몰려든 셈이다.
 

당사자인 청년들도 일자리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공무원 지원자가 늘어나는 것은 갈수록 고용안정성을 취업의 잣대로 삼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에서 세계와 경쟁하고, 혼을 담은 창업 정신 발휘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공직을 선호하는 것이다. 지금도 중소기업은 일손이 달려 쩔쩔매고 있는데도 좋은 일자리만 고집하면 일자리가 보일 턱이 없다. 공무원을 하겠다고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현실이 답답하고 착잡하다. 

청년들이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호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지난 언론유감에서도 언급했듯이 올해 20대 고용률이 역대 최저치인 55.8%를 기록한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의 눈이 높음을 지적하며 눈을 낮출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들이 권유하는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청년들이 살벌한 취업 전쟁을 하면서까지 얻을 만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중소기업이 어렵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청년들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삶의 질을 만족시킬 만한 경력직 채용이 많지 않다. 일단 양질의 일자리를 양성하는 것이 우선인데도 청년들에게 열악한 노동 환경과 박봉을 감내하면서까지 일자리를 구하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말이다.

혼을 담은 창업 정신을 발휘하라는 말도 그렇다. 동국대학교 청년기업가센터 센터장 이영달 교수는 청년창업정책에서 10%의 성공보다 90%의 실패확률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10명이 창업하면 그 중 9명이 실패하는 환경에서까지 모험 정신을 발휘하라는 말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라는 말과 같다.

역대 최악의 고용 난을 겪으며 힘든 투쟁을 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꼰대질’을 하고 있는 헤럴드경제의 기사에게 Worst 기사를 수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