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사흘’, 사상 초유의 전력대란 위기에 정부가 전국 2만여개 공공기관에 대해 에어컨 가동을 전면 금지했던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의 기간을 일컫는 말이다. 선풍기의 바람마저 열풍으로 느껴질 정도의 더위 속에서, 맨몸으로(?) 맞서 싸워야 했던 공무원들. (모 일간지는 며칠 전 기사에 우리가 “폭염의 ‘역사적 순간’을 지나고 있다”고 표현했다.) 바야흐로 공공기관을 ‘피서지’로 쓸 수 있었던 시절은 종말을 고했다! 그러나 걱정은 마시라. 우리에게는 학교가 있으니까.

방학은 깊어진지 오래, 휑해도 이상하지 않을 8월의 대학교에는 오히려 사람이 넘쳐난다. 카페, 도서관, 스터디룸, 심지어 사람이 없는 빈 교실에도 냉기가 흐른다. 신문은 목이 터져라 전력대란을 외치고 있는데 마치 대학만은 절전의 치외법권에 놓여있는 모양새다. 대학 측에서 지속적으로 절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자칫 삐끗하면 절전을 핑계로 “학문 활동을 방해”한다는 불호령을 듣기 일쑤다. “아껴서 쓰자”는 타박에 대학생들이 되묻는다.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데, 하루 종일 공짜로 에어컨 바람도 못 쐬나요?”

고가의 등록금을 지불한 입장에서, 학생이 복지로서 ‘(추울 정도로) 하루 종일 에어컨이 빵빵한 교실’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특히 한국은 지금 ‘전력대란’이라는 극도의 공급 부족과 ‘폭염의 역사적 순간’이라는 폭발적 수요를 겪고 있다. 대체에너지는 영 개발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울산에선 최고 기온 40도를 돌파했고 전국엔 폭염 특보가 발령나는 등 온난화가 가속화되는 추세다. 시원함의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과거 은행과 공공기관에서 ‘피서’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카페 등을 전전하며 시원한 공간을 구매한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에게 학교는 가장 눈치볼 필요없이 시원함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는다.

대학이 ‘2시간에 1번 에어컨 켜기’ 같은 절전 규칙을 내세우는 것은, 빵빵하게 가동되는 에어컨을 기대하고 등교한 학생에게는 충분한 불만사항이 될 수 있다. 따지자면 (이미 비용을 지불한)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규제가 되는 셈이다. 대학교의 절전 노력은 수요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력의 공급 조절을 위해 수요를 인위적으로 줄여보려는 노력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이미 누리고 있던 시원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학생들이 스스로를 등록금을 통해 시원함을 선(先)구매한 소비자라고 생각할 경우 저항은 한층 크다. 그런데도 왜 지치지 않고 ‘절전’이란 말인가?

전력대란이라는 단어를 한 번 더 되짚자. 현재 전력공급은 기존의 화력 및 원자력 중심에서 태양광 등 친환경적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정부의 다양한 의무화 정책 및 지원에도 불구하고 해당분야의 성장세는 몹시 더딘 상황이다. 공급을 늘릴 방법이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전기세를 인상해 직접적으로 전력수요를 조절하는 방법도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생활에 가장 밀접한 요금인 만큼 반발이 거셀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직까지는 반강제적으로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는 것에 기댄 수요조절 외에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정부의 ‘마의 사흘’도, 대학의 ‘2시간에 1번 에어컨 켜기’도 같은 맥락이다.

엄청난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무더위 앞에 앞날을 위해 전력수요를 조절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외침은 쉽게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냥 머리 한 켠으로 미뤄두고 못 본척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시원함은 상품이 되어버렸고, 수요와 공급 중에 하나라도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 상품은 언젠가 고갈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단기적인 효용을 넘어 크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