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본 후 친구와 택시에서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때였다. 운전을 하던 택시기사가 본인은 그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대충 내용은 알고 있다며 자신의 의견을 쏟아냈다. “힘으로 약한 세력을 제압하려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완전히 눌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테러가 일어나는 것처럼 끊임없이 저항한다.”라는 주장이었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 정부와 고위층의 권력에 이용당한 윤영화(하정우 분)는 모든 것을 잃고 괴로워한다.

정치 민주화를 달성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위태롭다. 너무나 쉽게 상처가 나고 너무나 쉽게 흔들린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보았던 ‘한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문장이 기득권에 의해 훼손되고 있는 현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민간인 사찰, 언론통제, 국정원의 정치 개입 등 권력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위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서울광장을 뒤덮은 촛불을 대하는 기득권의 방식 역시 무력을 앞세워 시민들을 제압했던 과거의 기득권과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점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과거 70~80년대의 기득권이 ‘눈에 보이는 폭력’으로 대응했다면 2000년대의 기득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즉, 촛불 뉴스를 전혀 다루지 않도록 하는 강력한 언론통제와 시위현장을 전경버스로 에워싸 바깥의 시민들은 시위 현장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 등을 통해 알 권리를 훼손하는, 민주주의의 실질적 구현을 막는 폭력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 현장에 차벽을 쌓아 바깥에선 현장을 볼 수 없도록 만든 모습 ⓒ 오마이뉴스

그러나 영화에서 정부와 고위층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진 윤영화가 테러범의 폭탄 스위치를 누르며 자폭을 택하는 것처럼 권력을 이용한 민주주의의 제압은 분노의 연쇄작용을 일으킬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 할지라도 국민은 충분히 폭력의 영향력을 느끼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피로 민주화 이룩한 국가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영화 속 내용처럼 테러가 자행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영화에서 국민의 생명보다 권위를 더 중시하고 고압적으로 대응했던 정부의 태도가 폭탄이라는 부메랑을 맞은 것처럼 세력 유지를 위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현실 기득권의 태도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어려운 것이죠”
택시기사의 마지막 말처럼 민주주의는 달성하기도 어렵지만 그 가치를 지키는 일은 더욱 어렵다. 더군다나 우리는 민주주의가 극심히 훼손됐을 때 어떤 사단이 벌어졌는지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권력을 이용한 민주주의의 훼손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기득권이 민주주의를 좀 더 소중히 다뤄야 할 이유는 우리의 지난 경험과 이 영화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