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지: 명사. 지폐나 서류 따위의 가운데를 둘러 감아 매는 가늘고 긴 종이.
*책 띠지: 90년대 초, 일본의 띠지 광고를 김영사에서 광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도입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책에는 표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광고지도 아닌 것이 둘러져있다. 화려한 추천사, 자화자찬식의 문장이나 통계, 또는 저자의 사진이 들어간 경우도 있다. 벗기자니 책의 일부 같고 그대로 두자니 책을 꽂거나 꺼낼 때 자꾸 찢어진다.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했을 때, 새 책에 둘러진 이 녀석이 찢어져 있다면 괜히 기분이 상한다. 책을 읽고 있으면 자꾸 빠지고 때론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 처치 곤란한 종이의 이름은 띠지였다. 이 애매한 띠지들은 왜 생겨난 것일까.

일반적으로 띠지의 제작비용은 3000부 기준 권당 95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1쇄를 3000부라고 봤을 때, 1쇄에 30만원이 안 되는 값이다.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수단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베스트셀러 코너의 책들은 열권 중 일고여덟 권은 띠지를 두르고 있다.



                                                                             

ⓒ고함20

가격은 싸지만 띠지에 실린 문구는 가격 이상으로 화려하다. <새벽 3시, 바람이 부나요?>(다니엘 글라타우어| 문학동네)의 띠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올해 읽은 소설 중에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진짭니다.” “<타임> 선정 최고의 영미 소설 100선!”(팔코너|존 치버|문학동네), “한국 소설문학의 성취!”(외딴방|신경숙|문학동네), “서울대 대출 도서 1위!”(총, 균, 쇠|제러드 다이아몬드|문학사상사), “만화책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는 첫 저자가 될 것이다.”(만화로 보는 경제학의 거의 모든 것|마이클 굿윈|다른). “전설의 베스트셀러 영화화!”(화차|미야베 미유키|문학동네)

일반적으로 띠지에는 책표지에 싣기 민망한 추천사나 시의성의 문구가 사용된다. 마케팅을 위해 띠지는 ‘오그라드는’ 자화자찬을 마다하지 않는다. 화려한 문구들을 보고 있으면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눈에 띄기 위한 띠지의 몸부림은 대체로 비슷비슷하다. 분명 이 책을 설명하는데, 띠지만 봐서는 이 책이 저 책 같고 저 책이 그 책 같다. 다른 책에 둘러놔도 어색하지 않다. 표준 띠지 문구 작성법 같은 매뉴얼이라도 있을 것일까. 띠지만으로는 책의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띠지들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 이상 글귀만으로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요즘은 띠지의 디자인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보통 띠지가 가로인 데 반해 <지옥설계도>(이인화|해냄출판사)의 띠지는 세로다. 그 외에도 사선으로 구멍을 뚫어 표지 디자인과 어울리게 만든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안도 다다오|안 그라픽스), 띠지를 벗기면 표지의 아름다운 여성이 좀비가 되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세스 그레이엄 스미스|해냄출판사), 종이 한 장을 비스듬히 접어서 띠지로 만든 <증여의 수수께끼>(모리스 고들리에|문학동네) 등 띠지는 눈에 띄기 위해 독특하고 기발한 모습으로 진화했다.

이렇게 튀는 디자인과 미사여구로 치장한 띠지는 독자들의 구매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까. 2011년 12월호 ‘월간 라이브러리&리브로’에 따르면 응답자의 86.7%는 띠지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띠지의 활용에 대한 질문에는 ‘즉각 버린다’가 39.1%, ‘보관하다 찢어지면 버린다’가 13%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책에 둘러 보관한다’ 23%, ‘책갈피로 쓴다’가 14%였다. 고함20이 지난 7월 12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책을 구입할 때 가장 영향력 있는 부분으로는 ‘책 내용’이 28%로 가장 높았고 작가(20%)와 제목(20%)이 뒤를 이었다. 띠지가 큰 영향을 끼친다는 응답은 없었다. 결국 띠지는 독자들에게 책 디자인의 일부, 혹은 포장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1쇄에 30만원이라는 띠지는 비용뿐만 아니라 그 효과마저도 저렴해 보인다.

화려한 간판들이 즐비한 곳에서는 어떤 간판도 눈에 띄지 않는다. 띠지는 독자의 눈에 띄기 위해 화려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눈에 띈다하더라도 독자는 자신이 원하는 내용과 취향이 아니면 외면한다. 오히려 디자인의 독특함과 홍보성 문구의 자극보다는 구입 후에 느끼는 띠지 자체에 대한 거추장스러움이 더 크다. 독자들에게 띠지는 더 이상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라기보다는 쉽게 찢어지고 구겨지는, 불편함이 더 많은 애물단지에 가깝다. 환경을 생각해 보면 하루에 1200만 그루의 나무가 종이가 되기 위해 사라진다는데 재활용도 안 되는 띠지가 낭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정적 요소들이 뚜렷함에도 출판사들은 여전히 띠지를 두른다. 이제는 관성처럼 사용하는 띠지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