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방영된 무한도전 ‘무도를 부탁해’ 특집은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무도를 부탁해’는 학생들이 무한도전 제작진이 되어 방송을 만들어 본다는 컨셉이다. 초,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7월 12일부터 7월 31일까지 지원서를 받았다. 제출된 지원서는 1000여개에 달했다. 8월 17일 방송에서는 지원서 서류 심사를 통과한 20여개의 팀이 직접 구상한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최종적으로 초등학생 이예준 군과 안양예고 학생 3명이 ‘무도를 부탁해’ 특집에 참여하게 됐다.

방송 직후 일부 시청자들은 이예준 군과 안양예고 학생들이 선정된 이유가 의아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다른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더 흥미로웠다면서 선정 기준에 불만을 표출했다. ‘무도를 부탁해’의 아이디어 발표에 참가했던 시청자들도 진행에 문제점이 많았다며 무한도전 작가들을 비판했다. 참가자마다 발표 시간이 달랐고, 작가들이 임의로 발표를 중단시키기도 했다는 비판이었다.

'무도를 부탁해' 방송 다음날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비판 글들 ⓒ무한도전 시청자의견 게시판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아이디어를 모집한 과정이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슷하긴 했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무도를 부탁해’가 오디션 프로그램이라 말한 적이 없다. 애초에 명확한 심사 기준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오디션 과정처럼 보이긴 하지만 ‘무도를 부탁해’는 여전히 예능 프로그램의 일부분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공정성을 담보해야 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과한 공정성은 프로그램의 재미를 떨어뜨릴 뿐이다. 참가자들에게 같은 발표 시간을 엄수하도록 하고, 참가자들의 점수를 체계적으로 산출해냈다면 공정하기야 했겠지만 재미는 정말 없었을 것이다. 예능을 보는 건지 다큐를 보는 건지 헷갈렸을 테다. 예능 프로그램에 필요한 건 공정성이 아닌 재미다. 공정함이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배기지 못한다면 예능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안양예고 학생들이 일본어로 된 명찰을 달고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한 것도 논란이 됐다. 방송 이틀 전이 광복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한 부분을 편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아니면 최소한 안양예고 학생들이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한 이유가 나왔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외국어고 일본어과 학생들이라면 이해가 갔겠지만, 예고 학생들의 앞뒤 맥락 없는 일본어 자기소개가 쌩뚱 맞았다는 것이다.

논란이 된 안양예고 학생들이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장면 ⓒ방송화면 갈무리

광복절 주간이라고 해서 일본어 사용이 지탄을 받을 까닭은 없다. 안양예고 학생들은 자기소개를 특이하게 해보려고 일본어를 준비했을 테다. 자기소개 내용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시청자들은 단지 일본어를 방송에 내보냈다는 이유로 무한도전을 비난했다. 이는 광복절 주간을 맞아 반일 감정이 과잉된 결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본 군국주의의 만행은 분명히 잘못됐다. 만일 무한도전이 일본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발언을 내보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일본어 몇 마디를 내보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광복절 주간에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기억해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일본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반감 표출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일본어 자기소개에 앞뒤 맥락이 없었다는 지적은 더욱 유치하다. 원래 예능 프로그램의 발언들은 쌩뚱 맞기 마련이다. 쌩뚱 맞기 때문에 웃음을 준다. 정녕 예능 프로그램의 발언 하나하나마다 어떤 맥락으로 한 말인지 설명해주길 원하는 건가. 쌩뚱 맞은 말이 웃기면 웃고, 아니면 그냥 넘기면 그만이다.

시청자들은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필요 이상의 비판을 하고 있다. 방송 제작자들은 비판에 대해 해명을 할 뿐, 반박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일부 시청자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과하게 비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번 ‘무도를 부탁해’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방송제작자들은 결코 시청자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박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시청률에 따라 프로그램의 존폐가 갈리는 현실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방송제작자가 시청자들의 의견에 맞서 싸우는 순간 시청자들은 그 프로그램에서 등을 돌린다. 방송제작자의 태도가 불량하다는 말까지 더해질 테다. 시청률은 자연히 떨어지고 프로그램은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방송제작자는 순식간에 일거리를 잃게 된다. 시청자들의 지적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고, 무조건 사과와 해명을 해야 하는 방송 제작자들은 ‘을’이라 할 수 있다. 계약서는 없지만 시청자와 방송제작자간의 갑을 관계는 강고히 존재한다.

논란이 커지자 트위터를 통해 해명을 한 무한도전 김태호 PD

무한도전 시청자들은 ‘갑’의 횡포를 그만둬야 한다. 시청자라는 ‘갑’의 지위를 이용해서 프로그램을 마구잡이로 비난하는 행위를, 시청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물론 프로그램에 정말로 문제가 있을 때의 정당한 비판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번 ‘무도를 부탁해’ 논란처럼 예능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 웃자고 만든 예능 프로그램이 공정성, 역사의식과 같은 가치까지 지녀야 할 의무는 없다. 너무 많은 가치를 지닐수록 프로그램의 본질인 웃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말자. 무한도전을 보는 1시간 20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웃어 보자. 이것저것을 따지거나 꼬투리를 잡으려 하지 말자.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껏 웃어보자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