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왕자는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구두 한 짝 덕분에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상상해보건대,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추면서 투명한 유리구두를 통해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았을 것이다.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닌 탓에 크게 붓고 부르튼 그녀의 발을 왕자는 분명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알바렐라 2013에서는 일터 안팎에서 험난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시대의 알바렐라들에게 유리구두 대신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체크리스트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사회를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알바렐라들이 행복한 결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함20과 독자들이 그 길을 터줄 수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 알바 수난기, 다시 쓰는 그 스물 두 번 째 이야기. 외모를 가꾸는 것이 중요한 시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화장품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화장품 용기를 제조하는 공장은 과연 깔끔한 화장품의 이미지처럼 단정하고 청결한 곳일까? 21세기, 1970년대 작업 환경에서 군대 생활을 경험한 공장 알바생 최렐라 씨(24)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공장 아르바이트, 어떻게 일하게 되었나요?
알바몬에서 광고를 보고 알선 업체를 통해 공장과 컨택을 했습니다. 공장 측에서 연락을 받고 2012년 말부터 2013년 초까지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에 소재한 회사의 제조라인에서 일했습니다.

Q. 급여는 어떻게 받으셨나요?
시급은 2012년 당시 최저시급으로 받았고 2013년이 되면서 인상된 최저시급을 받았습니다. 원래 주 5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 게 기본인데 6시30분 이후로는 최저시급에 1.5배를 곱한 추가수당을 받았습니다. 급여 형태는 월급이었고요. 원래대로라면 5일만 나오면 되는데 6일을 나오면 6일째 날은 1.5배에 해당하는 추가 수당을 지급받았습니다. 같이 일하는 알바생도 대부분 대학생이니까 돈을 더 받기 위해 나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Q. 구체적으로 했던 업무는 무엇이었나요?
주된 업무는 화장품이나 샴푸 등의 용액이 용기에 담겨 나오는 것을 불량품이 없나 확인한 후에 박스에 넣고, 그 박스들을 다시 파레트에 적재해서 보관하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박스가 가벼우면 15kg, 무거우면 28kg까지도 나갔던 것 같네요. 파레트는 상자들을 쌓아놓으면 지게차가 상자들을 들어 올릴 수 있게 하기 위해 깔아놓은 발판 같은 것을 말합니다. 

Q. 상당한 체력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네요. 작업하는 과정에서 속도에 대한 요구도 많이 받으셨겠네요?
네. 그건 일상이었죠. 보통 2초당 박스 하나가 제게로 컨베이어 벨트에서 운송되어 왔습니다.

Q. 그렇게 빨리빨리 하다 보면 실수도 꽤 하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제가 취급한 화장품 중에 염색약과 파마약도 있었는데요, 염색약이랑 파마약은 1,2제가 나눠 있고 1제는 꼭 2제랑 같이 써야 합니다. 파마나 염색을 할 때 맨 처음에 바르는게 1제구요, 파마약이나 염색약의 독성을 중화시키기 위해 바르는 게 2제입니다. 보통 파마약이나 염색약을 구입할 때 보면 두 개를 세트로 팔아요. 그게 잘못 들어가는 경우가 생기면 그날 했던 작업 박스를 다 열어 봐야 했죠. 그리고 만약 박스 안에 불량품이 있으면 다 제대로 해 놓아야 했고요. 그런 실수가 초반부에 많았죠. 실수를 하면 관리자가 저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Q. 욕설을 들으면 기분 나쁘진 않나요?
처음엔 물론 기분 나빴죠. 그런데 자주 듣다 보니까 익숙해지기도 했고, 같이 일하는 다른 알바생이 실수하면 그게 제 작업도 꼬이게 만드니까 저도 그 사람에게 욕을 하게 되더라고요. 

Q. 다른 알바생과의 사이는 어땠나요?
업무 시간엔 다들 자기 일 하느라 바쁘고 쉬는 시간도 2시간에 10분 정도밖에 안 주는데, 그 짧은 시간에 물 마시고 화장실 갔다 와야 되니까 별로 얘기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냥 업무 시간에 같은 라인이 한 팀처럼 일하니까 한 사람이라도 실수하면 나머지가 힘들어지니까 실수 안 하게 봐주는 정도? 저는 그나마 같은 학교 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랑만 친했네요. 

Q. 같이 일한 사람 중에 진상은 없었나요?
남자 탈의실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원래 알바생의 업무가 아닌데도 그 사람이 알바생한테 청소를 시켰어요. 내가 왜 업무도 아닌 일을 해야 하나 화가 났죠. 전 처음에 한 번만 하고 나중엔 안 했어요. 알바 그만두면서 나올 때 그 사람이 사물함 열쇠를 놔두고 갔길래 사물함에 치약 뿌리고 과일 껍질 던지고 도망갔어요.

또 같은 알바생 중에 여자가 한 명 있었는데 사소한 거에도 꼬투리를 잡더라고요. 일을 하는데 뭐가 잘 안 되면 저한테 얘기해서 고치면 되는데 혼자서 궁시렁대다가 열 받으면 나오던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화를 내는 거예요. 그러면 같이 일하는 남자친구가 와서 뭐라 하는데 일이 꼬이는 거죠. 그 한 명 때문에 전체가 관리자한테 욕 듣고, 그 여자분 혼자서도 욕을 많이 들었어요.

Q. 알바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였어요?
그냥 매순간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말로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는, 앉아서 화장품만 박스에 담으면 되는 편한 일이라고 들었는데 막상 실제로 해보니까 1톤짜리 화장품이 나오는데 서서 그걸 빠르게 15~28kg 박스에 담고 그 박스를 지게차로 올려서 다른 데다 옮겨 놓는 일이었어요. 또 워낙 빨리빨리 해야 하다 보니까 12월 말인데 그 안에서 반팔만 입고 일했는데 냄새가 나니까 환기시켜도 땀이 주룩주룩 날 정도였어요.

Q. 정말 힘들게 일하셨군요. 근로 조건이 많이 안 좋았던 것 같은데 특히 어떤 점이 안 좋았어요?
업무 환경에서 개선이 필요한 점들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거요. 컨베이어 벨트가 노후돼서 그 당시에는 평균 신장을 맞춰 만들었는데 지금은 10, 20년이 지나서 너무 낮은 거죠. 컨베이어 벨트가 10m 정도 있으면 기계가 화장품 용액을 담으면 그 벨트에 실려서 저한테 오는 건데 벨트가 너무 낮아서 불편한 거예요. 나중엔 허리가 아팠어요. 아, 지금 딱 이 탁자 높이 정도 되겠네요. (그는 바로 앞에 놓인 탁자를 가리켰다.)

용기에 화장품 원액을 공급하는 기계도 낡아서 적정량을 공급하지 못하고 넘쳐서 새거나, 너무 세게 조여서 용기가 터지거나, 파마약의 1제가 빠져 있거나, 제조날짜가 찍혀야 하는데 찍히지 않는 경우도 많았어요. 이런 건 회사 측에서 유지 보수를 잘하고 부품만 바꿔줘도 되는데 그런 손쉬운 노력조차 안 하니까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었죠.  

 Q. 그럼 일하다 보면 옷이 더러워진 적도 많았겠어요.
항상 더러웠죠. 공장에서 작업복을 지급하긴 했는데 잘못해서 파마약이 터질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그 냄새가 몸에 배어서 하루 종일 가더라고요. 그리고 컨베이어 벨트도 더러워져서 일하는 데 불편하기도 했어요.

Q. 기억나는 에피소드 같은 거 있으시면 말해주세요.
좀 무서웠던 게, 전 그 당시 1층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왜 고등학교 때 급식실에서 급식 차 싣고 다니던 엘리베이터 같은 거 있잖아요. 1층에서 어떤 사람이 1톤 정도 되는 화장품 용액이 담긴 통을 밀면서 그 엘리베이터에 싣고, 2층으로 올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신발을 구겨 신어서 잘못해서 바닥에서 미끄러져서 2층에서 1층으로 떨어진 거에요. 구급차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 날 관리자한테 알바생 전체가 안전 복장 잘 지키라고 갈굼당했어요.

엄청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요. 아까 말했던 파마약이랑 염색약의 1제와 2제의 용량을 기계가 균형을 맞추어서 알맞게 담아야 했는데, 못 지켜서 담는 일이 종종 있었어요. 그래서 1제가 남으면 그걸 처리해야 하는데  주변 하천에다 그냥 버리더라고요. 환경오염의 주범인 거죠. 하루에 저희가 용기에 담는 양이 5톤인데 그 중에서 100kg를 버렸어요. 

Q. 마지막으로 최렐라 씨에게 공장 알바란?
하….진짜 제가 했던 알바 중에서 제일 힘든 알바였어요. 제가 아직 군대를 안 갔다왔는데 군대를 간 느낌이 딱 이 느낌이겠구나했죠. 그래도 도움이 된 게 거기도 나름의 작은 단체니까 그 단체에서 최하위 구성원으로 있던 경험을 했으니 제가 나중에 졸업하고 군 장교로 갈 예정인데, 통솔자가 되면 그 밑의 계급 사람들의 고충이나 그런 마인드를 잘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