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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시국선언의 이면, 지방대생의 자괴감

대학가의 시국선언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교수집단, 언론인, 종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국선언이 줄짓는 상황 속에서 대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지난 8월 14일에는 고려대 학생 606명이 총학생회와 별개로 SNS을 통해 연대하여 시국선언 행렬에 동참했다.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과 동문회를 축으로 하는 대학가의 시국선언도 그칠 줄 모른다.

ⓒ시사 브레이크

지난 6월 20일 국정원 사태에 대해 대학가에서는 처음으로 서울대 총학생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날 서울대 총학생회가 발표한 것은 시국선언이 아니라 성명서였으나, 이후 대학가에서는 시국선언의 파도가 몰아쳤다.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경희대 등 서울에 소재한 대학들이 곧바로 시국선언 행렬에 동참했고, 대학 총학생회 또는 학생단위의 시국선언은 지금까지도 쉼 없이 계속되고 상황이다.
대학가 시국선언 행렬의 물꼬를 서울대 총학생회가 튼 일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대학교의 총학생회가 가지는 정체성에 대한 논쟁, 대학교의 총학생회가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과 더불어 대학교 총학생회가 학생들을 대표해서 시국선언을 할 수 있냐는 대표성 문제까지 거론되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두드러진 것은 한국사회에서 곪을 만큼 곪은 학벌주의, 특히 지방 소재 대학생들의 열등감 혹은 자괴감의 분출이었다.
서울대의 성명서 발표 이후 대학 총학들 또는 학생들의 연대를 통해 성명서를 발표하거나 시국선언을 할 때마다, 대학가에서는 ‘이번에도 서울대가 이슈메이킹을 주도 한다’는 볼멘소리가 있었다. 그들은 서울대가 마치 한국의 대학을 ‘대표하듯’ 성명서를 발표하자, 이에 다른 대학 총학들이 서울대를 따라서 시국선언에 마지못해 동참하는 모양새가 역력했고 말한다. 서울대가 아닌 대학이 먼저 기자회견을 열거나 시국을 선언한다고 누가 쳐다는 봐주었냐는 식의 하소연도 빼놓지 않는다.

이 문제의 첨단에 있는 것은 소위 지방대이다. 소위 지방대의 일부 학생들은 본인의 대학이 시국선언 행렬에 동참하는 것을 오히려 학교와 학생 본인에게 창피한 일로 치부한다. 대학가에서 시국선언 행렬이 폭발적으로 진행되었던 6월 말에서 7월 초 몇몇 지방대의 커뮤니티를 들여 보면 이런 반응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한마디로  시국선언에 부정일색이다.


댓글에서 확인되는 일부 대학생들의 인식 ⓒ 각 대학의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몇몇 지방대의 학내 커뮤니티로 활용되는 디씨인사이드 대학 갤러리만 찾아보아도 이런 반응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댓글 반응을 통해 그들이 시국선언에 부정적인 근거를 찾아보면, 정치적 중립이나 사안의 객관성 확보를 중요시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본인들이 재학 중인 대학이 ‘지잡대’이기 때문에, 시국선언을 하더라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고가 단단히 박혀있다. 물론 일부 학생들은 댓글을 통해 시국선언 자체를 ‘좌좀들의 선동’으로 보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에게 지방대의 시국선언은  제 분수를 모르는 ‘사치’ 또는 ‘선동질’이다.

서울 소재 또는 수도권 소재의 대학 중에서도 대학의 시국선언을 비난 또는 조롱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학생들의 태도가 눈에 띈다. 이들은 지방대 학생들처럼 본인들의 학교를 ‘지잡대’로 치부하지는 않지만, 대학가의 시국선언 행렬을 ‘서울대가 시작하고 기타 대학이 따라 하는’ 것이라 생각은 동일하다. 이들 역시 서울대 및 소위 명문대가 앞장서는 시국선언에 자신들 학교가 뒤늦게 동참하는 것을 ‘불필요한 정치적 행위’로 여긴다.
그들이 시국선언에 반대하거나 기계적으로 중립적인 견해를 밝혀야 한다는 근거는, 본인의 정치적 판단 또는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객관적 태도를 취하려는 노력 때문이 아니다. 그 이유가 단지 본인의 학교가 ‘명문대’가 아니라는 것은 한국의 학벌주의, 특히나 지방대 학생들의 심리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들은 한국사회가 치켜세워주는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고, 대학구조조정에 내몰릴 위기의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문제를 ‘공부나 해라’는 명령으로 해결하려 한다.
댓글 중에 ‘지잡대’가 아니라 ‘지방대’가 되기 위해서는 시국선언을 해야 한다는 당위를 설명하려는 학생도 있지만, 학생 커뮤니티에서 이런 목소리는 쉽게 침묵 당한다. 아직 학교총학생회나 학생 연대를 통해 시국선언에 참여하지 않은 대학의 학생은 본인의 대학 커뮤니티에서 학생들의 댓글을 보고 난 뒤, “지방대라서 쪽팔리는걸까요. 아니면, 지방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운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구는 걸까요.”라며 학생커뮤니티에서의 반응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2 Comments
  1. 맞음

    2013년 9월 2일 17:08

    그래서 대학생들 시국선언을 보고 그저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는거다.
    순수한 목적이였다면 보기에 이렇게까지 눈쌀찌푸려 지진 않았을거다.

  2. 지방대생

    2013년 10월 19일 00:26

    날카로운 지적이네요.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또 지방에 살다보니 정보를 접근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죠. 지방의 경우 또래 대학이 서울처럼 많이 인접하지 않아서 교류할 기회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 문제가 개개인 수준으로 내려가면 대학사회와 동떨어진 느낌을 받기 쉽죠. 어쨋건 지방대생으로서 반성할일이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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