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한국에서 왔다 하니 ‘괴물 짱 재밋어’라고 스웨덴 애가 그러던데요.” 스웨덴에 교환학생을 갔다온 정미혜(가명, 23)씨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 어떤 이는 같이 수업 듣던 미국 학생의 바탕화면이 <올드보이>에서 망치 든 최민식 얼굴 클로즈업이었다며 놀라워 했고, 연기 좀 한다는 유명 외국배우들도 앞다투어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 등과 같은 한국 감독의 작품을 관심있게 본다고 밝힌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대한민국의 명 감독 3인방 모두 할리우드에서 인상깊은 데뷔작을 만들고, 이병헌, 배두나 등 한국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을 고려해 보면 세계 영화 시장이 한국에 대해 보이는 관심은 단순한 일회성 호기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영화계가 사랑을 받으며 기틀을 튼튼히 다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 영화계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아카이브’ 구축이다. 흔히 ‘아카이브’라 하면 과거의 오래된 한국영화를 잘 보존하여 후대에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물리적 아카이브’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자국 영화 역사와 흐름을 알리는 ‘정신적 아카이브’ 구축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아카이브’ 구축 과정의 일환이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 ‘카사블랑카’, ‘네 멋대로 해라’ 등등 외국 고전 영화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고, 심지어는 쉽게, 가장 싸게 접할 수 있다(교보문고, 영풍문고에서 자주 보는 DVD 2900원 컬렉션의 단골 주인공). 하지만 한국영화의 경우는 약 1년 전 부터 1990년 대 영화가 저가로 풀릴 뿐 한국 고전 영화는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울 뿐더러, 가격도 대중적이지 않다. 알고 있는 작품도 거의 없을 뿐더러, 인지도도 거의 없다. 한국 20대에겐 한국 고전 영화란 낯설고 찾아보기 힘든, 골동품 같은 존재이다.

고전 영화 관람?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한국 고전 영화는 의외로 인터넷에서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걸 아는가? 그것도 매우 저렴한 가격에 말이다. 한국 고전 영화를 인터넷에서 관람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유투브를 이용하는 것이다. 유투브 검색 창에 ‘한국 영상 자료원’을 입력하고 맨 처음 나오는 ‘Korean Film’을 클릭하여 들어간다. 이 곳은 한국 영상 자료원이 제공하는 한국 고전 영화 아카이브로, 약 80여 편의 영화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데, 1930년대에 제작된 영화 <미몽>을 비롯하여 1996년 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까지 다양한 시대의 영화를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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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한국 영화 데이터 베이스는 역시 한국 영상 자료원에서 제공하며 KMDb 사이트의 VOD서비스를 통해 한국 영화를 다운받아 볼 수 있다. http://www.kmdb.or.kr/vod/vodMain.asp 로 접속하거나, 한국 영상 자료원 공식 홈페이지에서 VOD 메뉴를 통해 접속 할 수 있는데, 연도별, 장르별로 검색이 가능하여 좀 더 체계적으로 한국 고전 영화를 찾아 볼 수 있다. 가격도 공짜이거나 500원 정도! 최신 드라마 한 편 다운 받는 것 보다 저렴하다.

어디서 보는지는 알았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을 볼 것인가이다. 백 여편의 한국 고전 영화 중에서 어떤 영화 부터 시작해야할까?  가장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한국 영화 데이터베이스에서 테마 별로 소개하는 기획전을 찾아보는 방법이다. 최근 가장 눈길을 끄는 기획전은 아무래도 <꽃보다 할배>의 사랑스러운 할배들의 젊은 시절을 소개한 기획전이다. 영화 데이터 베이스 웹페이지 메인에 항상 소개되어 있는 기획전들은 어느 일정한 기준에 따라서 뽑혔기 때문에, 취향 따라 관심사 따라 볼 수 있는 장 점이 있다. 

만약 기획전들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만의 테마를 만들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국 고전 영화 몇 편 봤다는 영화 팬 윤숙연(25)씨는 “테마를 정해서 보면 좀 더 쉽게 볼 수 있다. 영화 한 편 한 편 보면서 완성해 나가는 느낌도 있고,”라며 자신만의 테마를 정해서 보기를 추천했다. 영화학도 김정훈(28)씨는 “촬영기법이나 배경, 등장인물도 모두 낯선 고전 영화를 좀 더 쉽게 보는 방법은 이미 줄거리가 익숙한 경우다”라며 줄거리를 이미 아는 영화 – 소설이나 리메이크 작 – 들을 보기를 추천했다. 그 외에도 유명 배우나 괌심 감독들을 중심으로 보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여기 고함 20의 색깔에 맞는 ‘청춘’ 이라는 테마로 고심해서 선정한 한국 고전 영화들이 있다. 

(참고한 자료와 도움을 준 사람들 : 영화 학도 김정훈, 고전 영화 몇 번 본 영화 팬 윤숙연, 책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 영화 1001>, <클래식 중독 : 새 것 보다 짜릿한 한국 고전 영화 이야기>)

고함 20의 청춘과 닮아 있는 고전 영화 추천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한국 고전 영화의 아이콘 신성일과 엄앵란의 <맨발의 청춘>

20대 남녀의 신분 격차를 뛰어넘는 사랑! 이런 ‘신데렐라’식 사랑이야기는 어느 시대에서나 인기있는 주제였는가보다. 1964년 작 <맨발의 청춘>은 부잣집 딸 요안나와 길거리 폭력배 두수의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요즘의 ‘신데렐라 스토리’와는 다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남자는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고, 여자는 아령을 들어보는 등 소소한 낭만적 요소가 깔려 있다. 고전 로맨스 영화는 으레 그렇듯이 유치하기도  하지만, 60년대 청춘문화를 나타내는 대표적 청춘영화이니, “옛날에는 젊었을 때 저렇게 놀았구나, 저렇게 입었구나” 하는 사회학자적인 관찰자 마인드를 곁들이면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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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한국영화계의 이단아 故 김기영 감독의 <하녀> 

‘청춘’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아름답게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는 청춘 특유의 낯설음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어느 세대보다 더 빨리 받아들이기도 하고, 청춘들에게서 나오는 새로운 생각과 신념들은 혁명과 변화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컬트영화의 대부 故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은 청춘과 닮아있다. 특히 그의 컬트 영화 중 1960년 작 <하녀>는 그의 컬트 본능을 잘 나타내는 초기작이다. 1960년에 만들어 졌다고 하기엔 너무나 세련된 미장센, 탄탄한 스토리, 기괴한 스릴감은 이미 특이한 영화가 보편적이 되버린 2013년도에도 충분히 먹힌

다. 

특히 중국배우 공리를 떠올리게 하는 눈매와 오똑한 코, 섬세한 턱선을 가진, 공리를 닮기도 하고 수애를 닮은 듯한 하녀 역의 이은심 또한 <하녀>를 매력적이고 기괴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 예쁜 얼굴로 쥐를 잡고, 주인 가족의 아이를 죽이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심지어 그 아이는 국민배우 안성기!).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비교해서 감상해 보면 두 배로 재밋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1980년 서울 변두리 청춘들의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년 작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여기서 소개한 영화 중 방황하고 아픈 청춘의 모습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1980년대 개발이 한창인 서울 변두리에서 고민은 많은데 딱히 해답 없이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들은 요즘 청춘들의 모습과 별 반 다를 것 없는 것 같아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과장된 배경 음악들이 좀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의 방황이 남같지 않아서 사랑스럽고 애잔한 영화. 덤으로 안성기, 임예진, 최불암등과 같이 우리에게도 친숙한 스타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우리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인물을 연기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디서 바보같이 말 더듬는 안성기와 젊은 이발소 여직원을 탐욕스럽게 쳐다보는 최불암을 볼 수 있을까? 

 

위에서 추천한 테마 외에도  독특하고 실험적인 故 김기영 감독의 작품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화녀> 시리즈들을 관람하는 ‘김기영 컬트 시리즈 테마’는 한국영화에 대한 지식을 넓혀 줄 것이며, <오발탄>, <로맨스 빠빠>, <영자의 전성시대>와 같이 당시의 사회 문제를 그려낸 영화들을 관람하는 것도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유익한 테마다. 또한 배우 중심의 테마를 정해 ‘트로이카’라 불렸던 당시의 소위 ‘여신’들이 나오는 <막차로 온 손님들>- 60년대 트로이카 윤정임, 문희, 남윤희 중 문희와 남윤희 두 명이 출연한다-, 70년대 트로이카 장미희가 나오는<느미>를 감상하며 지금의 배우들에게 볼 수 있는 획일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배우 자신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감상해도 좋다.

장르와 소재의 다양성에 비해 한국 고전영화는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소수의 영화 마니아들에게만 향유되고 있다. 촌스럽다, 아마추어적일 것 같다, 세련되지 못하다, 대중들이 흔히 한국 고전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고전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나 있었던가? 외국 고전 영화만 ‘클래식하다’라고 여겼던 당신이라면 이제부터 한국 고전 영화에 눈을 돌려보길 바란다. 한국 고전 영화, 꽤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