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에 있었던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들의 투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지만 이미 미디어나 언론에 수십 번씩 언급되고 노출된 ‘이슈’는 어떤 말도 놀랍지 않게 만들어버렸다.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 혹은 형편없이 낮은 임금과 식대에 대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아니 어쩌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혹시, 청소노동자 투쟁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건 아닐까. ‘20대인 내가 청소노동자 투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고함20>의 청소노동자 기획기사는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는 4개의 기사를 쓴 고함20의 구성원들의 물음과도 맞닿아 있다.  -편집자 주 



지난달 27일 오전 11시, 용산구 서울경인공공서비스노동조합 사무실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서울시립대 분회장 윤세현(63)씨와 사무처장 박주식(62)씨가 조합원 총회를 마치고 오기를 기다리며, 고려대 노조 현장대표 윤명순(66)씨는 작업복 조끼를 벗어 접어두었고 맞은편에 앉은 홍익대 분회장 이숙희(58)씨는 기자에게 커피 한잔을 권했다. 학교 내에서 학생과 고용인으로 마주치는 청소노동자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이웃 아주머니 또는 아저씨로서, 또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마주한 이들의 얼굴은 한편으로 어딘지 친근했다. 현재 겪고 있는 갈등과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는 2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경인공공서비스노동조합 사무실. 청소노동자에 대한 포스터가 입구에 붙어있다.


 

–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윤명순(이하 윤): 고려대 현장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청소노동 일은 14년째고, 고대에선 10년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왔을 때 노조가 출범한 지 3개월 됐더라고요. 들어가자마자 바로 노조 가입을 했는데, 입사한지 1달 만에 소장과 싸웠습니다. 쉬는 시간 동안 은행 볼 일을 잠깐 보고 왔는데 용역회사 현장 관리소장(총 책임자)이랑 전 대표가 어디 갔다 왔냐고 따져 묻더니 뭐라 하는 겁니다. 나는 노동법대로 쉰 건데 이게 잘못됐다면 화장실 가는 것도 보고하라고 교육 다시 시키라고,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그 때 대표인 사람이 저를 지적해서 교육부장을 맡아달라고 하데요. 그때부터 교섭위원으로 나가게 돼서 노조 활동을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대표를 맡아서 활동한 건 4년 됐고요.
  
이숙희(이하 이): 저는 2004년 10월에 홍대에 들어왔고, 6년째 되던 2010년에 노조를 설립했습니다. 하루 총 11시간을 근무하는데 오전 오후 1시간씩 휴식 시간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안 줬어요. 말이 휴식이지 어떤 외출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측에서 교육하는 시간마다, 돈을 안 줄 거면 차라리 퇴근을 일찍 시켜달라, 월급도 적은데 그래야 투잡(two-job)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조직부장이신 유안나 부장님이 학생 한두 명과 함께 몰래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때다 싶어 바로 가입했어요. 한 달 만에 모든 청소노동자가 가입함으로써 100%로 시작했고, 지금도 그대로 가고 있고요.
  
윤세현(이하 현): 저는 서울시립대 분회장을 맡고 있고, 학교에 들어온 지는 한 10년 됩니다. 우리는 노조에 가입을 한다든가 조합을 만들면 무조건 해고당하는 줄 알았어요. 여러분이 와서 설득해줘서 처음에 5명이 가입했다가, 조금씩 늘어나 작년 10월 23명이서 노조 출범식을 하게 됐어요.
  
박주식(이하 박): 서울시립대 사무장을 맡고 있습니다. 시립대에서 청소 일한지 5년쨉니다. 윤세현 분회장님이 인터뷰 하신다길래 총회 끝나고 함께 왔습니다.
 
– 네 분이 겪으신 문제가 각기 조금씩 다를 텐데,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서울시립대의 상황을 먼저 들려주세요.
 
현: 현재 저희가 투쟁하는 가장 큰 문제는 고용보장입니다. 올 2월 말에 용역회사가 계약 만기가 됐는데 서울시에서 3월 1일자로 우리를 직접 고용했어요. 이제 용역과 계약하지 않고 시의 공무직(서울시에 고용된 형태)으로 바뀐 거예요. 처음엔 좋은 건줄 알았는데, 이 정책이 반쪽짜리인 거예요. 우선 말로만 기간제지 내년까진 무기계약직(기간제 무기직)이고, 그 준공무직 기간이 지나면 공무직이 되는 거라 아직 고용이 불안정해요. 뿐만 아니라, 전에는 70살이 정년이었고 70살이 넘어도 일을 했었는데, 65세로 단축돼서 2014년 말이면 23명이 길거리로 나가게 돼요. 그 다음해엔 20여 명이 또 나가서, 3년 안에 70-80%가 잘려나간다고 보면 돼요. 발표했으니 번복할 수는 없지만 대신 다른 방법들이 있거든요. 촉탁식도 있고, 계약직도 있고 묘안이 있을 텐데, 학교에선 시에 가서 얘기하라 하고, 시에 가면 학교에서 해결하라고 해서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고 다녔어요. 시의회 열릴 때 1인시위도 하고, 노동조정위원회와 인권위원회도 가봤는데 신통한 얘기가 나오질 않아요. 그러던 중 8월 26일부터 시의회가 다시 열리고 있어서 우리도 공동대책위원회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박: 사실 어제 처음으로 총장 면담을 했어요. 우리가 들어갈라치면 본관 문 서너 군데를 모조리 셔터 내리고 빗장까지 걸어 잠가놨는데. 드디어 어제 처음 만나줬어. 몇 개를 협상했습니다. 우리가 총무과 직원이랑 협상한 43가지 내용을 새로 온 노무사 직원이 다 뒤집으려고 하길래, 현행대로 놔두고 나머지를 협상하자는 것 하나. 방금 말한 정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달라는 것 둘. 노조활동 탄압하지 말고, 시위나 집회 열었다고 임금 삭감하지 좀 말라는 것 셋. (내가 8만원, 옆에 분회장은 11만원 넘게 까졌어요.) 조그만 노조사무실을 얻었는데 이왕이면 여기에 책상이나 의자 등 집기를 제공해달라는 것 넷. 최근 생긴 미화원 휴게실을 (그 전까진 경비실 남는 데를 빌려 썼어요. 좁은 데서 남녀 뒤엉켜 있을 수밖에 없었죠.) 다른 동에도 몇 개 더 제공해달라는 것 다섯.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9월 10일에 파업할 거라고 경고를 했습니다.
 
– 고용형태가 가장 문제가 되는 거군요.

박: 그렇죠. 시에서 정년을 65세로 발표한 건, 그 때부터 국민연금 혜택을 보라고 한 거래요. 그런데 한 달 전 저희가 국민연금 수령 실태조사를 해봤는데,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연금을 받을 사람은 공무원들뿐이고, 청소노동자 중에 연금을 한 푼도 못 받는 사람은 13명이에요. 나머지는 10-20만원밖에 못 받아요. 이 양반들이 청소일 하러 들어오기 전에 국민연금을 다른 데서 먼저 부어왔으면 더 받을 수 있는데, 다른 업종에 있다 보니 그걸 못 한 거예요. 자영업 하다, 뭐 하다 망하니까 어딜 가도 좋은 직장 못 잡잖아요. 경비 아니면 청소부지. 그러니까 여기서 일한 만큼만 연금이 나오니, 한 달에 그 돈으로 생활이 되냐 이거지. 부양가족 없는 분들, 혼자 계시는 분들이 3분의 1이 넘는데. 정말 나이 많이 드신 분들한텐 생계가 달린 문제예요.
  
현: 국민연금공단에서 뭐라고 하냐면, 못 부은 사람들한테는 또 일시불로 600-700만원을 내래. 그러면 주겠대. 그런 돈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생활이 될 수가 없죠.
 
– 고려대와 홍익대에서는 정년 보장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이: 지금 서울시내 45개 대학 중 10개 대학, 1개 병원이 집단 교섭이라는 걸 하고 있어요. 각 학교 용역회사의 대표들과 노조 분회장들끼리 모여서 단체로 협상을 하는 거예요. 여기에 고려대와 홍익대도 포함되어 있죠. 그래서 2010년부터 4년째 정년이 70세, 시급 5700원으로 모두 같아요. 그 전까지는 1년마다 용역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썼는데, 회사 맘에 안 들면 1년 만에 잘리는 거잖아요. 홍대 49일 농성도 저희가 갑작스럽게 해고당한 것 때문에 시작한 거고. 그래서 저희가 고용은 책임지라고 요구하면서 단체협약(단협)으로 대체하자고 했죠. 그 후부턴 용역회사가 바뀌더라도 저희는 그대로 학교에 머물 수 있게 됐어요. 올해 10월부터 또 다시 교섭 연장을 시작해야죠.
 
– 단체교섭이 이루어지기 전의 문제와 그에 대한 투쟁은 어떠했나요?
윤: 고대에는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는 데다 하루 세끼 식대가 1만원밖에 없었는데도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그래야 하는가보다 했지. 부족한 식대는 폐지를 팔아 충당했어요. 그런데 학교 기물이니 만지지 말라,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으로 우리가 2009년에 폐지 투쟁을 참 크게 했지요. 나중에 교섭해서 2만 5천원, 3만원 받게 됐어요. 식대도 생기고, 전까진 폐지를 쓰레기통에서 일일이 골라내고 뒤져야 했는데 이젠 다 버리니까 얼마나 일하기도 편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본인들이 느끼니까 이루어지는 게 있어. 우리의 권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이렇게 쟁취하고.
  
이: 홍대 49일 농성은 유명하잖아요. 용역 바뀌면서 한꺼번에 노동자들이 해고당해서, 그것 때문에 들고 일어난 거였는데, 홍대 농성 이후로 알아서 긴 데가 많아요. 홍대 투쟁을 보더니 시립대에서도 청소노동자 월급을 78만원에서 105만원으로, 123만원으로 올려 주고. 경희대 같은 경우 30명을 고용했으면서, ‘40명을 쓰고 있다’고 학교랑 계약을 맺은 용역회사가, 노동조합 생기고 나선 10명분의 차액을 내놓고 나가기도 했고요.
 
– 홍익대의 경우 청소 노조의 승소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나요?

이: 법적으로 변호사들끼리 하는 거지, 뭐 그 전이나 후나 그렇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건 없어요. 물론 비오는 날 청소노동자들한테 물 퍼내라고 안 시키는 것, 더 이상 교수들 방 몇 십 개씩 청소 안 해도 되는 것, 소장들의 끔찍한 횡포가 줄어든 것 등등 처우 면에서 바뀌긴 했지요. 형사건 민사건 모두 우리가 다 이기긴 했어요. 이기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건데, 결정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동안의 과정이 …… 저를 비롯해 생전 경찰서 한 번 안 가본 사람들이 법원, 검찰까지 가서 조사받는 그 과정이, 저는 진짜 눈물겨워요.
  
박: 결과는 사실 별 거 아니지요.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참 힘들고, 무지하게 외로운 싸움이거든요. 툭하면 시 재정이 없어서 못 해준다는 식으로 나오는 실정이라. 참, 하루가 몇 달 같아. 권리보장해달라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제 시간에 퇴근해본 것도 까마득한데. 학교와도 싸워야 되고, 시하고도 싸워야 되고. 눈물 날 때가 많아요. 하하.
 

인터뷰가 진행된 사무실을 배경으로 조합원 4분의 모습을 담았다.
기자를 제외하고 왼쪽부터 이숙희(58)씨, 윤세현(63, 가운데)씨, 윤명순(66)씨, 박주식(62)씨.

 

– 노조 설립 이후 해결된 문제나 처우가 개선된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현: 시립대에는 공무원 반장이 있었는데, 나이 많으신 분들한테도 막말하고 악질적이라서, 그 사람 밑에서 일하지 않는 게 소원이었죠. 그리고 동원을 많이 시켰어요. 건물 리모델링 등 모든 공사에 남자 미화원들을 투입시키고, 천장에 암면이 있는데도 마스크도 안 주고 마구잡이로 일을 시켰어요. 그런 걸 피하기 위해 여러 분회장님들과 우리 대학의 대학문화(주:서울시립대학교 교지) 출판하는 학생들과 함께 설문조사를 하고 투쟁을 벌여 결국 그 반장, 총무과 악질 공무원, 용역회사 감독. 3분을 밀어냈습니다. 큰 걸 얻어낸 거죠.
  
박: 또 조금 있으면 추석이잖아요. 추석 3일 동안에는 근무를 안 하기로 했어요. 그 전엔 명절 때라도 당직을 섰었거든. 학생도 안 나오는데 공무원은 쉬면서 왜 우리는 못 쉬게 하는 거냐고요. 가정주부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손주들 보고 차례 지내야 되는데. 또 전에는 아파도 병가를 낼 줄 몰랐는데 이제는 마음 놓고 쓸 수 있고. 사람들이 말 못하고 혼자 끙끙 앓던 일을 이제 노동조합 사무실로 전화해서 말을 해요. 이런 조그만 결과물을 얻으려고 수십 일 수백 일을 싸우는 거예요.
  
윤: 고대는 다른 학교랑 좀 다른 게, 학교 측에서 노동활동 탄압하는 일이 없어요. 최초로 노조가 설립된 대학이니만큼 용역회사가 새로 들어오면, 학교 측에서 노동조합 존재를 명시하고,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먼저 말해요. 이제는 그게 원칙이 되었으니 회사가 떠나도 우리는 그대로 학교에 남아 있는 거지.
  
이: 일단 들어오면 무조건 가입서부터 쓰게 하고 있어요. 또 한국전력과 중앙대의 용역회사가 동일한데, 한국전력에서 얼마 전 노동조합이 만들어져서 시급 올리니까, 중앙대 조직원들이 나서려고 했대요. 그런데 회사 측에서 노조 압력을 무마하려고 먼저 시급 올려서 계산했다는 거예요. 그럴 때 놀랍죠.
 
–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윤: 안 그래도 고대에서는 작년부터 자기들이 직고용 한 번 해보고, 용역하고 비교해서 어떤 게 더 나은가, 하고 시작했어요. 오래 일하신 분 순서대로 직접 고용됐는데, 앞으로도 늘려갔으면 좋겠어요.
  
현: 시립대의 경우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도 아직 많아요. 들어오려고 주춤대다가 학교에서 봉급 올려주니까 눈치 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가만있어도 이렇게 해주는데 노조를 뭐 하러 하느냐는 거예요. 나이 어린 사람들한테는 몇 년 있으면 공무원 된다고 유언비어 퍼뜨리기도 하는데 그걸 믿는 사람들도 있고. 외로운 싸움이죠. 조합원은 46명인데 좀 아까 총회에도 20명만 왔더라고. 돈만 문제인 건 아니고, 고용보장과 정년연장, 복지 같은 여러 가지가 아직도 미해결이니까 그것도 생각해야 한다는 걸 말해줘야 해요.
 
– 학생들의 참여는 어떠한가요?
이: 홍대는 학생의 참여가 적어요. 그게 항상 안타까운데… 어제 중앙대 분들께서, 우리 노동자들보다는 학생들이 뭔가 얘기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학생들이 6-7명 왔는데 그 학생들 얘기 듣는 게 본인들은 마음이 놓인다고. 어쨌든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이잖아요. 학생들이 나서주는 게 맞아요. 그런데 나서주는 학생이 많이 없죠.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제일 무서워하는데.
  
현: 학생들이 우리 집회할 적에 나와서 발언도 해주고 하니까 훨씬, 사람들이 움직여요. 너무 좋아하지. 외대 학생이 우리 시립대 수요집회에서 발언을 하는데, 외대 이사장이 조카에게 청소업을 줬대. 그래서 거기는 들어올 적에 각서를 받는대. 노조라는 ‘노’ 자만 끝내면 당신은 무조건 해고라고. 외대 학생이 그 말을 하면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은 이런 노동조합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이러는 거야. 이렇게 싸우는 걸 보니 나도 외대에서 노조 만들기 위해 힘써보겠다고. 어찌나 고맙던지.
  
박: 학생들이 많이 참여해주는 데가 부러워요. 어머니 아버지 힘내세요, 우리가 지지합니다. 보면 얼마나 힘이 나. 우리도 총학생회 찾아가서, 현수막 걸어달라고 말했는데 안 걸어주는 거야. 지난 총학생회장은 노동조합 자체를 부정했었고. 부모랑 비슷하게 생각해주면 안되나 싶어서 눈물 난 적이 여러 번 있어요. 근데 학생들도 공부하랴 취업 준비하랴 힘들잖아요. 자기네도 졸업하면 비정규직이 될지 정규직이 될지 모르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학생들이 어떨 땐 안타깝고 부끄럽고, 그래요.
  
윤: 고대도 학생들이 노동조합을 함께 만들어줬어요. 6년 동안 조용히 있다가 2009년에 처음 투쟁이 일어난 건데도 150명씩 학생들 달려와서 총장실에 같이 들어가 줬어. 함께 해주니 우리가 힘이 많이 생겼지. 그 때 학생들이 지금까지 나에게 연락을 해요. 이런 학노연대 사업 하면 좋지 않을까요? 하고 물어봐주고. 힘이 많이 돼요. 항상 함께 가야 된다는 걸 여실히 느꼈습니다.
 
–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신가요?
현: 다음 주부터 학생들에게 선전을 하려고 해요. 총장님 만난 것 알리고, 시에 가서 싸우려고 투쟁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돌리고 나면 총장실에 올라가거든요. 그럼 뭔가 방책이 얼른 나오지 않을까.
  
박: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돕고 싶어도 눈치 보여서 못 돕는 학생도 있을 텐데. 정상적인 대우를 못 받고 있는 사람, 엄마 아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일로 여겨주고 나서주는 학생이, 용기 있는 학생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시립대 선전 활동에 학생들이 많이 동참할 걸로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물론 학생들이 관심이야 갖고 있지. 우리가 서명 받는 게 이것저것 많잖아요. 항상 그런 얘길 하죠. 이게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앞날과도 관련 있는 거라고. 직접 나서서 하는 학생은 적어도, 관심은 많이 가져요. 물론 고용이나 임금에 대한 투쟁은 기본적인 거고, 조합원들의 여가활동이라던가 복지 개선 쪽으로 많이 싸워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우리 일 열심히 하면서.
  
윤: 고대는 뭐든지 청소노동자들과 같이 하길 원하니까, 끈을 놓지 말고 학생들과 같이 활동할 것을 긍정적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홍대보다 고대 청소노동자 연령이 조금 높은데, 노동조합이 있으니 우리가 70살까지 일하고 나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으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마음 가지고 학생과 의논하면서 일해나가길 바랄 뿐이죠.
  
현: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 게 너무나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근데 시립대에서 잘 해야 노동조건이 더 열악한 다른 학교들도 우리 본을 떠서 잘 해주지 않을까, 또 다른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힘을 받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을 해요. 눈에 잘 보이진 않아도 한두 가지씩 뭔가 바뀌잖아요. 그런 걸로 힘을 얻어요. 그걸로 그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