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2일, 그는 집에가서 ‘울겠다’고 말했다. 이 날 박정근씨는 무죄를 받았다. 그가 트윗 때문에 경찰청에 출두했다는 소식이 그랬던 것처럼, 2심의 무죄소식 역시 기다렸다는 듯 트위터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며칠 후인 9월 6일, 홍대 인근 카페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다. 카페 안에는 리트윗 사건을 풍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박정근 후원회가 주관한 ‘감사의 밤’이었다. 같은 디자인의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도 곳곳에 보였다.

감사의 밤 표어이기도 한 ‘트윗 리트윗 앤 철컹철컹’은 리트윗 사건 내용을 하나로 요약해주는 문구다.
 
2011년 겨울, 박정근씨는 북한 대남선전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 트윗계정의 글을 리트윗했다. 그것을 이유로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 혐의로 구속되었다. 올해 들어 비슷한 이유로 압수수색을 받거나 소환된 이들은 여덟 명이다. “진짜 큰일 났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더 이상 트위터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를 받는 것에 대해 놀라지 않았거든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충격받지 않았다는 얘기죠.” 이 날 사회를 맡은 박정근후원회 후원회장 김성일씨의 말이다.

박정근 사건 이후 8명이 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피해자를 돕기위해 ‘박정근 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후 그는 피해자들이 법정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박정근씨의 구속 뒤 변호사 선임 비용 및 보석금 등을 모으기 위한 통장으로 존재하던 ‘박정근후원회’는 그렇게 현실이 됐다. “그들을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뒷받침 할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국가보안법과 표현 및 사상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가 오갈 계기가 마련되었다. 후원회의 운영위원들은 모두 트위터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들이다.
행사는 트위터로 인한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소개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집에서 압수수색을 당하거나 공안분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자다 깨서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었는데, 경찰이 방문해 있었어요.” 이승환씨가 기억하는 압수수색의 첫 장면이다. 경찰은 당시 이씨에게 트위터를 하지 말라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김정도씨는 작년 10월 압수수색을 받았다. “찜질방에서 자는 사이 집에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러 왔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는 압수수색이 끝날때 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공안분실에서 7시간 정도 조사를 받았다. 찬양·고무, 이적 표현물 배포 혐의였다.

발언자들이 피해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정근후원회 제공
 
며칠 전 무죄판결을 받은 박정근씨는 행사의 취지를 다시 설명했다. “무죄 축하 기념이 아니라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공소장에 229건의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으로 기록되어 있다. 2011년 9월 21일 압수수색을 받고 6차례 정도 조사를 받은 후 2012년 1월 11일 구속되었다. “1심에서는 그 중 100여개가 무죄였고, 2심에서는 완전한 무죄를 받았어요.”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이 상고를 한 상태다. 박씨는 대법원 판결 이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무죄선고 받고 대법원 가면 어지간하면 뒤집힐 일 없다고 하시는데, ‘예전같이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나처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재판 과정 때문에 리트윗 같은 행위가 진절머리 나는 부분도 있고요.” 그러면서도 그는 “일단 무죄 판결 받았으니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살아야죠”라며 웃어보였다.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죄 판결 받아서 3심에서만 피고인이고, 이제 그냥 자영업자입니다.” 그의 사진관은 곧 다시 주인의 손길을 받을 터였다.
사건 이후로 우리민족끼리 트윗을 리트윗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신종협씨 역시 작년 초 박씨가 구속 됐을 때 몇달 간 항의차원에서 리트윗을 했다. 총 325건이다. 올해 5월 압수수색을 받고, 일주일 뒤 출국금지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그 다음달에는 다섯차례 공안분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주위의 무관심이 가장 힘들었어요. 박정근이라는 사람과 이 사건을 알고있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변호인단의 이민석 변호사 “누구라도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1년에 40건 미만이던 
국가보안법 사건은 지난 MB정부 들어 4배 이상 증가했다 
피해자들의 자기소개 후에는 가수 단편선씨의 공연이 이어졌다. 그는 박정근씨가 구속되었을 때 수원남부경찰서 앞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다. 그는 무대 시작 전 “무죄를 받은 친구 앞에서 노래를 불러줄 수 있는 기회가 인생에 흔치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 날은 박정근씨를 변론해 온 두 변호사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박정근 후원회는 이민석, 이광철 변호사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이민석 변호사는 “2011년 친일파 청산 사건으로 상을 받고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상을 받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그 역시 국가보안법으로 조사받은적이 있다. “2011년 5월에 서울지방변호사협회 블로그에 북한 관련 글을 썼는데, 의뢰인의 지인이 절 국보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그는 조사당시 검사에게 “나는 북한을 찬양하지 않지만, 누군가 북한을 찬양한다고 해서 처벌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에게나 적용될 수 이 법으로 누군가 ‘당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게 박정근씨였어요. 올해 재판 과정에서 저한테 무혐의 통지가 왔어요. 그 무혐의를 받는데 1년 10개월이 걸렸어요.” 
이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사소한 것까지 처벌할 수 있는 것이 국보법이라는 것이다. “‘나는 괜찮겠지’ 라고 생각 하시겠지만 아닙니다. 변호사인 저도 국보법으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만약 제가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구속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는 박정근 씨 사건을 통해 누구라도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뒤이어 감사패를 받은 이광철 변호사 역시 약 17년 전 국보법 ‘사범’ 이었다. 실제로 구속되어 구금되었던 경험이 있다. “국가보안법 사건은 1년에 40건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는데, MB정부 들어 2008년에 40건, 2009년에 70건, 2010년에는 152건까지 사건이 늘어났습니다.” 2010년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가 있었던 해다. 이 변호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 법에 저촉되어 무죄를 받아낸 것이기에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광철 변호사는 민변에서 국보법 폐지 모임의 대표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견지해야하는 것은 나와 생각은 다르지만 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연대하고 힘을 합하는 태도입니다.” 

이민석, 이광철 변호사와 박정근 씨. 박정근후원회 제공
 
이 날 발언한 피해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박정근후원회 제공
 
박정근씨가 무죄 판결을 받을때까지 후원회는 그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 하고, 다른 피해자들 역시 계속 후원하고 지지할 예정이다. 후원회 사무국장 김대환씨는 2년 전 박정근씨가 압수수색을 당한 이후로 관련된 활동을 해왔다. “정근씨의 무죄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과 함께 축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어 기뻤지만, 동시에 다른 피해자들을 보며 2년 동안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이 더 늘어난 것 같아 착잡하기도 합니다.” 그는 최근의 ‘서울시공무원 간첩 사건’을 예로 들며 “이것이 조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가보안법이 사회에 공포를 조성하는 악법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실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돕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또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할 수 있는 힘들을 모두 쏟을 생각임을 밝혔다.
이날 사회를 맡은 후원회장 김성일씨는 행사 막바지, ‘부당한 처우를 나쁜 사람이 받는다고 해서 그 처우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정근씨가 무죄 판정을 받았지만 완전한 무죄는 아닐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이 무죄라면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유죄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