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부로 베트남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의 ‘대중친화적’인 외교 스타일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8일 한복-아오자이 패션쇼에서 박 대통령은 직접 한복을 입고 나와 참석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또 이어 열린 주석 초청 만찬에선 참석자들과 함께 직접 무대에 올라 한국 대중가요인 ‘만남’을 부르기도 했다. 이에 국내 언론은 박 대통령의 이와 같은 대중 친화적 행보에 초점을 맞춰 베트남 순방을 ‘과거사의 아픔’을 씻는 성공적인 이미지 제고의 기회로 앞다퉈 보도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호찌민 전 국가주석의 묘소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 뉴시스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 저자 김욱 교수는 정치인들이 이전에 했던 발언을 뒤바꾸며 사과를 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 사과의 주된 이유는 과거에는 잘못된 행동이 이익이었는데 이제는 사과를 하는 것이 이익이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힘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베트남 순방의 첫 일정으로 호찌민 전 국가주석의 묘역을 찾았다. 언론은 과거 박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베트남 파병’이라는 과거사와 연관 지어 과거사를 청산하고 베트남과 우호 관계를 구축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진단했다.

언론의 보도와 박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김욱 교수의 ‘정치적 사과’론을 떠올리게 한다. 박 대통령의 행보에는 ‘진정성’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지난 2001년, 박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한 것을 두고 개인성명서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참전용사들의 가슴과 대한민국의 명예에 못을 박는 것과 같다”고 비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호찌민 전 주석의 묘역 헌화 후 2001년 발언에 대한 내용은 물론이고 베트남 파병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묘역 방문을 통해 암묵적인 사과가 이뤄졌다고 해도 이는 ‘정치적 사과’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보여준 셈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협력 만찬회에서 호찌민 전 주석의 명언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변화하는 것에 대응한다’를 언급하며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우정과 신뢰가 변치 않는다면 어떤 변화와 도전도 능히 함께 대응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베트남과의 진정한 우정과 신뢰를 얻긴 힘들어 보인다. 박 대통령은 베트남 최대 경제도시인 호찌민시에 있는 한국 기업인 ‘한세베트남’을 방문해 현지 근로자들을 격려했지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지역은 들르지 않은 것 또한 그 증거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특히 심했던 베트남 중부 지역 곳곳에는 여전히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다. 학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어떤 보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살당한 민간인의 유족과 그 피해자는 베트남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양국 간의 이해관계를 위한 정치적 사과가 아닌 진정한 사과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베트남파병 언급을 통해서만 진정한 의미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발돋움과 박 대통령이 순방 내내 강조했던 베트남과의 ‘사돈의 나라’로서의 이행이 가능할 것임을 박 대통령은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