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하루키 신작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가 떠난 해’가 출간됐다. 하루키 신작은 출간이 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는 하루키 신작을 사기 위한 줄이 길게 이어졌다. ‘색채가 없는~’이라고 줄여서 불리는 하루키 신작의 긴 제목만큼이나 긴 줄이었다.

하루키의 작품을 읽는 주된 독자층은 ‘하루키 세대’라고도 불렸던 30대~40대 초반이다. 특히 30대 여성 독자의 비중이 높다. 하지만 20대 사이에서도 하루키는 꽤나 인기가 많다. 교보문고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하루키 신작 ‘색채가 없는~’의 독자 26%가 20대였다. 42%를 차지한 30대 다음으로 높은 비중이었다. 한국갤럽의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20대의 35%가 하루키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대 사이에서 하루키가 어느 정도 통하는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찾아보기 위해 하루키 덕후인 고함20 기자들과 수다를 떨어봤다. 각자 자신이 하루키의 작품을 처음 읽은 사연을 시작으로, 20대들이 하루키의 작품을 읽는 이유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7월 1일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하루키 신작을 사려는 독자들의 긴 줄이 생겼다. ⓒ연합뉴스

#1. 여성에게 접근하려고 읽기 시작한 하루키의 작품

행객 : 각자 하루키 작품을 처음 접한 건 언제였어? 그리고 그 때 받았던 느낌도 궁금해.

블루프린트 : 나는 고등학교 때 읽은 ‘해변의 카프카’가 처음이었어. 하루키에 대해 전혀 몰랐었는데, 친구가 추천해줘서 읽게 됐어. ‘해변의 카프카’를 읽을 때 자꾸 인상이 찌푸려졌었어. 그런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도 너무 재밌어서 다 읽은 거야. 그 때 하루키의 묘사에 빠지면서, 재밌는 소설의 기준이 하루키가 됐어. 그 친구가 하루키라는 엄청난 존재를 나한테 알려준 셈이지.

야한보일러 :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하루키의 작품을 처음 읽었어. 당시에 좋아했던 여자애가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선 읽기 시작한 거였지. 그 때 읽은 작품은 ‘상실의 시대’였어.

행객 : 그럼 하루키를 통해서 접근을 한다는 목적은 성공했어?

야한보일러 : 그건 말하지 않겠어. 그런데 원래 일본어 번역투를 좋아하기도 했어. 일본인들이 자주 쓰는 “뭐랄까” 같은 표현들을 좋아해서, 하루키의 작품을 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지.

: 나도 ‘상실의 시대’가 처음이었어. 중3때였는데, ‘상실의 시대’가 많이 야하긴 하지만 성장에 관한 책이란 느낌을 받았어. 그 때가 집, 학교, 학원만 오가면서 갑갑했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때였어. 그래서 그런지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가 세상과 소통을 시작하면서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어, 나도 커서는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한 거지.

행객 : 그럼 모두들 하루키의 작품을 처음 접하고 난 뒤, 지금까지 꾸준히 읽어온 거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은 빌려보기 보다는, 사서 보기 마련이잖아. 각자 소장하고 있는 하루키의 작품은 몇 개나 돼?

야한보일러 : 한국어로 번역돼서 발매된 소설은 다 샀어. 에세이는 10편정도 있고, 단편집도 몇 개 있어. 전공책보다 더 많은 것 같아. 부모님이 보면 화를 내실지도 몰라.

: 나는 6개. ‘1Q84’나 ‘해변의 카프카’ 같은 경우는 여러 권으로 돼있으니깐, 권 수로 치면 더 되고.

블루프린트 : 내가 가장 적네. 말 안할래. 그런데 하루키의 작품이 많아서 사기 부담이긴 한데, 너무 인기가 많아서 도서관에서 빌리기가 힘들어. ‘1Q84’는 도서관에서 예약한 사람이 많아서 예약하기가 힘들었어. 오래 기다려서 겨우 빌렸는데 출간된 지 6개월 된 책이 10년은 된 책처럼 너덜너덜하더라고.

하루키의 작품들로 가득한 야한보일러의 책장

#2. 책 이상의 소장품은 사지 않는 게 하루키에 대한 예의

행객 : 그럼 책 말고 하루키 관련 소장품들은 없어?

야한보일러 : 그 정도까지 덕후질을 하진 않아. 그런데 하루키가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하게 되는 건 있어.

블루프린트 : 맞아. 하루키가 작품 속에서 얘기하는 물건들에 나도 모르게 애착이 생겨. 맥주도 그렇고. 굴튀김도 그렇고.

야한보일러 : 굴튀김! 내가 원래 굴을 되게 싫어했는데 굴튀김은 좋아하게 됐어. 에세이에서 하루키가 좋다고 말한 느낌이 있으면 따라 해보곤 해.

블루프린트 : 묘사하는 사물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하루키는 묘사를 잘해. ‘태엽 감는 새’에서 아내의 향수, 원피스, 핸드백 등을 묘사하는데, 정말로 내 앞에 있는 것 같았어. 그걸 넘어서 내가 그 물건들을 가져야 할 것 같고, 찾아다니게 되고.

: 나도 책 이상의 소장품은 없어. 하루키 본인이 책 이외의 상품화를 안 좋아하는 것 같애.

야한보일러 : 우리나라에 하루키 관련해서 상품화된 게 별로 없지. 항공사에서 하루키 관련 여행 풀세트는 있었는데, 그것 말고는 본 적이 없어.

블루프린트 : 그런데 상품화가 되면 살 거 같애.

: 나는 상품화가 돼도 사지 않는 게 하루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

블루프린트 : 그럼 하루키한테 허락받은 것만.

: 그렇게 허락을 받을 때까지 엄청…….

블루프린트 : 연락 안 받고 잠수탈 거 같애. 소설 쓰는데 방해되니깐.

하루키 신작 '색채가 없는~'의 표지 ⓒ민음사

#3.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행객 : 이번에 나온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제목이 길어서 겨우 외웠는데, 어떻게 봤어?

블루프린트 : 이전 소설들이랑 분위기가 좀 달랐어. 그리고 고양이가 안 나왔어.

야한보일러 : 그 전에도 고양이 안 나온 적 많지 않어?

: 그 놈의 고양이 진짜.

블루프린트 : 고양이가 중요하다고!

: 나는 ‘색채가 없는~’이 ‘상실의 시대’의 변주라고 생각했어. 특히 시로는 나오코를 연상시키는 캐릭터고, 마지막 부분에서 사라는 미도리를 연상시켰어. 느낌이 상당히 다르긴 하지만.

야한보일러 : 섹스를 안 한 게 큰 차이지. 왜 끌어안은 다음에 진도를 더 안 나갔을까.

: 그리고 ‘색채가 없는~’에서 주인공 쓰쿠루가 학창시절에 4명의 친구와 오각형의 형태로 관계를 유지하다가, 이유 모를 사정으로 관계가 깨지면서 상실감을 느끼는데 ‘상실의 시대’에도 비슷한 과정이 나와. ‘상실의 시대’에서는 주인공 와타나베가 나오코, 기즈키와 안정된 삼각형의 형태로 관계를 유지했다가, 기즈키가 죽으면서 관계가 깨지고 상실감을 느껴.

블루프린트 : 난 이번 신작 좋았어. 하루키의 다른 소설들이 대개 환상이랑 현실의 경계에 있는데, ‘색채가 없는~’은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얘기였어. 그래서 와닿는 부분이 더 많았고, 밑줄을 긋거나 구절을 저장한 부분도 더 많았어.

야한보일러 : 나도 읽기 편해서 좋았어. ‘색채가 없는~’이 나온 다음에 하루키의 다른 작품보다 임팩트가 적다는 악평이 있었어. 그런데 그 말이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번 신작이 독자의 눈을 바쁘게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야. 그만큼 주인공의 동선, 감정을 따라서 읽으면서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어.

: 맞아.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실적이고 일상적이야.

야한보일러 : ‘색채가 없는~’은 하루키를 잘 몰랐던 사람들이 읽기에도 좋은 소설 같아. ‘상실의 시대’는 ‘색채가 없는~’이랑 비슷하긴 하지만 불편한 지점이 있었어.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하고, 난데없이 섹스를 하고. 그런데 ‘색채가 없는~’에는 그런 불편한 지점이 없었어. 특히 후반부는 읽기 너무 편해서 쭉 읽었어. 약간 시시할 정도였어.

블루프린트 : 맞아. 읽다가 벌써 끝났다는 아쉬움이 들었어.

야한보일러 : 내용이 너무 빨리 끝났어. 두 권으로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애.

블루프린트 : 주인공의 친구 중에 하이다에 대한 얘기가 뒤에 더 나올 줄 알았는데, 안 나와서 아쉬웠어.

: 하루키의 작품에 원래 그런 맥거핀적인 인물들이 종종 나와서 나는 별로 신경 안 써. 뜬금없이 인물이나 상징이 등장해서 중요한 줄 알았는데 다 읽어보면 아무 의미 없던 적이 많아서. 그냥 작가의 스타일 같아.

행객 : 맥거핀 때문에 소설 분량이 길어지는 것 같기도 해. 굳이 이야기 전개에 필요하지 않은 묘사들이 들어가니깐.

: 그런데 맥거핀이 있어서 재밌어. 장난을 칠 줄 아는 하루키의 여유도 느껴지고.

블루프린트 : ‘색채가 없는~’을 읽으면서 파도치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 주인공 쓰쿠루가 원래는 굉장히 잔잔한 삶을 살았는데, 4명의 친구와 단절되면서 일상에 파도가 몰아치게 되잖아. 하루키의 작품들엔 계획표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쓰쿠루도 그렇고. 그런 인물들이 하나의 계기로 생활이 바뀌는 모습을 통해 하루키는 파도치지 않는 삶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

: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해. 쓰쿠루가 스스로를 색채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자기만 가진 생각이었잖아. 쓰쿠루처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보잘 것 없고 타인에게 울림을 주지 못하는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지적하려 한 것 같아.

광화문 교보문고 한 켠에 마련된 하루키 신작 코너

#4. ‘색채가 없는~’의 엄청난 판매량은 마케팅의 힘?

행객 : 이번 신작이 굉장히 많이 팔렸잖아. 사실 나는 너무 많이 팔린 게 약간 뜬금없다고도 생각했어. 엄청난 판매량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야한보일러 : 마케팅의 승리지. ‘1Q84’도 마케팅의 승리였고. ‘1Q84’ 이전에는 하루키의 작품들을 팔 때 마케팅에 별로 신경을 안 썼어. 게다가 이번엔 인세를 얼마 줬다느니 하는 언론 플레이도 장난이 아니었고.

: 마케팅의 승리라고 치부할 순 없을 것 같아. 하루키의 작품만이 갖는 힘이 여전히 강력하다고 봐. 하루키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마케팅을 하든 말든 책을 사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

블루프린트 : 인터넷서점이 활성화되면서 책 마케팅이랑 행사가 많아졌어. 그런데 마케팅을 통해서 하루키 팬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아. 하루키 팬들이 많다는 걸 마케팅으로 보여주니깐. 하루키 팬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책을 더 많이 사고, 사람들이 많이 사니깐 관심 없던 사람도 사보게 되고, 그러면서 많이 팔린 것 같애.

행객 : 책 제목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꾸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잖아. 외워놓고도 제대로 외웠나 확신이 없을 정도로 긴 제목인데, 제목이 긴 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긴 제목은 하루키만이 소화해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던데.

블루프린트 : 나는 처음에 제목의 뜻을 오해했어. ‘그’가 쓰꾸루 말고 다른 사람을 말하는 줄 안 거야. 둘이서 순례를 떠나는 줄 안 거지.

: 좀 더 임팩트 있게 제목을 지었더라면 어땠을까?

블루프린트 : 긴 게 임팩트라고 생각했나봐.

야한보일러 : 그런데 제목을 처음 봤을 때랑, 책을 다 읽고 나서 봤을 때랑 차이가 있어. 책 제목만을 보고선 예측했던 내용이랑 실제 내용이 달랐어. ‘순례를 떠난 해’라길래 여행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지.

<2>편으로 이어집니다. (링크: http://goham20.com/32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