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녀 의혹을 제기한지 일주일 만이다. 지난 6일 조선일보는 1면의 절반을 할애하여 ‘채동욱 검찰총장 婚外아들 숨겼다’라는 제목으로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혼외아들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혼외자녀 의혹제기를 한 이후 조선일보는 선정적인 보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가족관계를 들추어내는 행위 자체가 심각한 사생활침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공직자라 하더라도 사생활은 공적인 업무수행과 관련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비밀로 보호해야 한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혼외자녀 문제를 전격 제기하는 옐로우저널리즘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여줬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행태에 비슷한 보수성향의 중앙일보까지 나서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13일 ‘채동욱 ‘정정보도 소송…유전자 검사도 빨리’라는 기사에서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며 악의적 오보를 한 언론사는 존립에 위협을 받는다고 말했다.
가장 사람들을 당황케 하는 지점은 동일한 사안에 대해 4년전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조선일보의 이중적인 행태다. 지난 2009년 당시 이만의 환경부장관의 혼외자식 문제가 논란이 되자 조선일보는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는 사내칼럼을 통해 사생활 문제는 공적인 부분과 선을 그어야 함을 분명히했다. 당시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한 A장관이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공직자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있다.”고 말한 조선일보는 이제와서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음모론을 조선일보 스스로가 자초한 셈이다. 
외부의 비판이 어떻든간에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로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조선일보는 그 영향력을 다시금 재확인했다. 정보기관과 협력해서 채동욱 검찰총장을 밀어냈다는 세간의 음모론을 액면가 그대로 믿긴 힘든부분도 많지만, 기자의 취재끝에 보도한 특종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조선일보가 반대하면 무엇이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대한민국에 제4의 권력이 존재한다면 바로 조선일보일 것이다. 
언론의 권력은 대중의 평판으로부터 나온다. 짧게 봤을 때 언론은 대중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되어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그 권력은 독자, 넓게는 대중의 합의에 기반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행태가 단순한 관점의 차이를 벗어나 사실관계의 왜곡, 무분별한 선정성까지 뻗어나간다면 대다수의 평범한 독자와 대중은 곧 반감을 갖게 된다. 지금 조선일보는 달콤한 권력에 맛에 취해있을지 모르겠지만 되돌아 보았을 때 오늘의 보도행태가 달콤한 독이었음을 깨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