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날 고함20 기자들이 두 발로 둘러본 나흘간의 생생한 민주주의 체험기. 기로기, 밤비, 불량한생각, 블루프린트 4명의 고함20 기자가 함께 전국의 민주주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제는 역사속의 한 페이지로 남겨진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부마민주항쟁 유적지부터 이 순간까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는 진주의료원과 밀양송전탑 문제까지.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문제가 교차하는 길 위에서 민주주의와 저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눈으로 민주주의 현장을 둘러보고 마음속에 민주주의 정신을 담아오는 [민주로드] 기획 시리즈. 

지난 수년간 3‧8민주의거는 대전의 주요 정치인이 주목하는 핫이슈였다. 대전시와 보훈처로부터 지원을 받아 기념탑을 세웠고, 국회에서는 법률적으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3‧8민주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상징적인 건축물인 기념탑의 현주소는 어떠할까. 지난 8월 26일 기자는 기념탑을 방문하기 위해 대전을 찾았다. 지도상 갈마역에서 내려 둔지미 공원을 찾아가는 길은 간편하고 가까워보였다. 그런데 둔지미 공원 내에 있다고 알려진 기념탑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갈마역에서 하차했을 때, 역무원에게 3‧8기념탑의 위치를 물었다. 그러나 역무원은 3‧8기념탑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당연히 위치가 어디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기자는 역무원으로부터 둔지미 공원이 위치한 방향만 들을 수 있었다. 인근 거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둔지미 공원에서 기념탑에 대해 들을 수 있는 대답은 ‘모르겠다’는 냉랭한 대답뿐이었다. 주민들은 3‧8민주의거가 무엇인지. 기념탑이 어디에 있는지 관심조차 없는 듯 했다.

1960년 3월 8일 대전고 학생 천여 명이 ‘학생을 정치 도구화 하지 말라’, ‘학원에서의 선거운동을 배격한다’는 구호로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재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날의 시위는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하지만 이틀 후, 대전 지역의 고등학생 1,500여 명은 다시 대전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여전히 독재정권과 정권의 수장인 이승만의 퇴진을 요구했다. 대전지역의 고등학생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순수한 저항의 정신을 기려, 이날의 항거를 ‘3․8민주의거’라고 명명한다.


3월 8일의 민주의거는 대전지역 민주화 투쟁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한편으로는 3월 15일 마산에서 진행된 규탄 대회와 4월 19일 혁명의 선두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대전지역의 정치인사들은 3․8민주의거를 각별히 여겨왔다. 50년 이상 해마다 기념식을 가져온 것이 이를 반증한다. 3‧8민주의거 기념탑은 이런 평가와 호응 위에서, 2006년 대전시와 대전 보훈청이 각각 5억과 3억 원의 예산을 지출하여 대전 둔지미 공원 내에 준공한 것이다.

심지어 지난 4월에는 3‧8민주의거가 민주화 운동으로 ‘법률적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아산)이 대표발의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최우영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공동의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말하기도 한다. 기념탑이 위치한 둔지미 공원 명을 ‘3‧8민주공원’으로 개칭하자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역사를 오롯이 인식하고 과거와 현재 세대 간 열린 소통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더 늦기 전에 3·8민주의거를 대전시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

기사를 통해 접한 3‧8 민주의거는 역사 교과서에서 배우는 마산 3‧15 규탄 대회와 4‧19 혁명과 같은 민주화운동 그 자체였다. 게다가 대전시장을 비롯해 지역 유지들이 열렬히 호응하는 대전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여기는 것으로 느껴졌다. 당연히 대전 시민들도 3‧8민주의거를 기억하고 가치 있게 여기리라 생각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기념탑을 지날 때마다, 3월 8일의 항쟁을 기억할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지하철 역무원은 물론, 둔지미 공원을 산책하는 시민 중 한 사람도 기념탑을 알지 못했다. 기념탑은커녕 3‧8민주의거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공원 내에 위치한 기념탑 주위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낙엽과 아이스크림 봉지가 더 많이 널브러져 있었다. 심지어 3‧8기념탑 앞의 비석에는 광고 스티커가 붙어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기념탑은 그 크기의 웅장함과는 반비례로 초라하고 적막할 뿐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기리기 위해 매년 행사를 갖고 기념탑을 만들고, 법률적 인정받은 것은 분명 값진 노력의 결과다. 하지만 그런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일보다 중요한 것은 대전에 거주하는 주민들부터 3‧8민주의거의 내용과 의의를 가치 있게 여길 필요가 있다. 주민들조차 1960년 3월 8일 무슨 일이 대전에서 있었는지, 자신이 매일 거니는 공원에 덩그러니 있는 이 탑이 무엇을 기념하기 위함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제도적‧법률적으로 3‧8민주의거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제대로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3‧8민주의거 기념탑이 기념 행사 때에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찾는 곳이 아니라, 일반 시민과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한 장소가 되길 바란다. 무엇인가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일은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된다. 기념탑을 세우고, 공원명을 개칭하고, 법률적 인정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중하고 필요한 일은 바로 그런 일일 것이다. 둔지미 공원에 위치한 3‧8기념탑이 무엇을 위해 저항한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인지,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3·8민주의거를 대전시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