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은 과생활, 2학년은 동아리, 3학년은 대외활동.. 인맥도 전략
‘인맥쌓기’조언하는 사회, 도구화된 관계를 경계해야 한다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에는 사람들의 카타르시스가 집약되어 있다. 무너지는 건물을 들어올리고, 악당과 맞서 싸우며, 추락하는 여성을 구해주기도 하는 그는 모든 분야를 종횡무진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최초의 슈퍼맨이 탄생한 1951년의 장편영화부터 2013년의 <맨 오브 스틸>까지, 슈퍼맨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 속 슈퍼맨을 보며 대리만족하던 사람들은 이제 현실에서도 ‘슈퍼맨’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욕망이 향하는 대상은 20대이다. 단군 이래로 2013년을 살아가는 20대처럼 모든 방면에서 걸출한 세대가 있을까. 스펙과 봉사활동 같은 계량화할 수 있는 분야는 물론, 이제는 ‘인맥’에 있어서도 20대에게 따라야 하는 매뉴얼이 범람한다.
12년 동안의 의무교육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는 20대에게 가장 먼저 듣는 말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이다. ‘인간관계가 대학 생활의 절반’이라는 경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런 말들이 모여 하나의 ‘매뉴얼’이 탄생했다. 20대 사이에서는 이것만 지키면 대학생활을 인맥을 쌓으며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다는 매뉴얼이 떠돈다. 대표적인 것이 “1학년 때는 과 생활, 2학년 때는 동아리, 3학년 때는 대외활동”을 해야한다는 ‘행동지침’ 이다.
매뉴얼의 부작용, 인맥 관리에 대한 강박
두발과 교복으로 상징 되는 중고등학교 시기가 지났지만 대학은 여전히 ‘함께하기’를 강조한다. 때문에 스무살은 곧 ‘선택의 자유’가 부여된다는 인식이 현실과 꼭 맞지는 않다. 많은 20대들이 인간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쉽사리 ‘NO’를 고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입학때부터 꼬박꼬박 학교 행사에 참여해온 A씨는 “학교 행사에 참가하지 않으면 사람들과 융화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회나 동아리를 안 한 친구들 중에는 ‘이런 것도 못해보고 한 학년이 끝나는구나’ 하고 푸념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 모씨(24)는 매뉴얼을 착실히 따른 경우다. 1학년 때 부과대를 역임하고 2학년 때는 교내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다. 3학년 때는 도시농업 활동인 ‘레알텃밭학교’에 참여하기도 했다. 3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휴학한 이씨는 1년간 렌즈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로 친한 사람은 학과나 동아리 사람이지만 대외활동이나 알바에서 만난 사람들 중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도 있어요. 원래 제가 관심있는 분야가 많아서 이것저것 해보다 보니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러나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인맥을 쌓아야 한다는 매뉴얼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성은 씨(23)역시 자신의 평소 인맥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다. 원래 사람 대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낯을 심하게 가린다는 이씨는 몇몇 동기들과 친하게 지낼 뿐 대외활동이나 동아리도 하지 않았다. “3학년 2학기가 되고 주변 사람들도 대외활동 등 인간관계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니 저도 그런 걸 해야 하지 않나 고민이 시작됐어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즐기는 김지희(24)씨는 휴학 후 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다른 학교에서 모인 학생들로 구성된 ‘연합동아리’다. 구성원의 소속이 각기 다른 곳에서 인맥은 어느정도 까지 넓어질 수 있을까? B씨는 가까운 인맥으로 연결되는 것은 특별한 경우라고 답했다. 대부분은 페이스북에서 연락을 하는 사이로 끝난다는 것이다. 몇 번의 ‘목적있는’ 모임 속의 인간관계가 작위적으로 느껴진다고도 했다. 깊은 대화를 할 정도로 많이 만날수도 없다. 연합 동아리나 서포터즈 활동 역시 그들 ‘스케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SNS, ‘친구맺기’의 덫
SNS는 인맥 매뉴얼의 필수 도구다. SNS를 하지 이용하지 않는 대학생 P씨는 굳이 SNS에 매달려서 다른 사람 소식을 알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한번 시작하면 거기에만 매달릴 것 같아요.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진실된 건지도 의문이 들어요.”  그는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에 대해서도 비판적 의견을 내놨다. “공감을 해야 누를 수 있는 버튼인데, 그걸 못 받는 사람들에 대해 ‘인기없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혜연(22)씨는 ‘카톡’ 하기엔 멀고 연락을 아예 안하기엔 가까운 사이일때 SNS를 애용한다. 깊게 지내지 않는 사이는 오히려 SNS가 관계를 유지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가끔 생일 축하한다고 리플 달고, 말 걸면 자주 만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되니까요.”

 

대학생 H씨는 SNS에 대해 “주변사람들도 다 하니까 나도 해야할 것 같은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과 내에서 다같이 들어야 할 내용을 SNS로 공지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했다. “왜 모든 사람이 SNS를 할 거라고 판단하는지 모르겠어요. 해야만 하는 일처럼 느껴져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그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친구 목록에 뜨거나, 다른사람의 대화가 모두 눈에 띄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피로를 느낀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의 관계가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것이다. 
현실과 유리된 매뉴얼의 허상

 

 
그렇다면 매뉴얼은 기대에 맞게 사회진출 후 도움이 될까? 포털 사이트에 ‘20대 인맥’을 검색하니 ‘20대, 인맥을 넓혀라’라는 책이 나온다. 책은 직장에 입사하고 나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조언 중 하나가 ‘가능한 남에게 받은 부탁은 거절하지 않기’ 이다. 입사한 지 3년차 되는 황해리 씨(24)는 “내 소관 밖의 자질구레한 남의 부탁까지 다 들어주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실제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직장 선배로부터 그와 관련된 조언을 들었다는 것. “제게 주어진 업무 처리하기도 바쁜데 남의 사소한 부탁까지 들어주다 보면 그 사람은 결국 ‘호의를 권리로’ 여기게 되더라고요.” 또한 자신의 업무처리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또다른 책의 지침인 ‘인간관계의 사이즈를 늘려라’에 대해서도 황씨는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직장 생활하다 보면 업무 때문에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따로 사람 만날 시간 내기가 힘들어요. 주말에는 쉬느라 바쁘고요.”
 
인맥의 도구적 성격, 의문을 제기해야
 
20대를 향한 인맥 매뉴얼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결국 많은 사람을 만나야 사회에 진출 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맥 매뉴얼의 도구적 성격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대학생 서유진 씨(22)는 “인맥이 사회 진출 후 도움이 될 것이란 말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금 만난 사람을 사회에서 언제 어떻게 볼 건지 확신할 수 없고, 인맥에 의존해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국어사전은 인맥을 ‘정계, 재계, 학계 따위에서 형성된 사람들의 유대 관계’ 로 정의하고 있다. 인맥은 단어 그대로 사람들 사이의 유대 관계일 뿐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친분을 쌓는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서 씨의 지적대로 매뉴얼의 인맥은 결국 이익을 얻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