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는 프랑스에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다. 원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으로, 줄여서 직지심체요절 혹은 직지라고 부른다. 직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유네스코는 그 가치를 인정하여 2001년 세계기록유산에 직지를 등재했다. 직지는 구한말 프랑스 주한대사였던 빅터 콜린 드 플랑시에게 매입되어 여러 경로를 거쳐 현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

세계기록유산에까지 등재된 우리나라 문화재가 다른 나라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직지반환을 위하여 다각도로 노력해왔지만, 현재는 시들한 상태다. 이제 아무도 열정적으로 나서지 않는 일에, 홀로 직지환수를 위해 발 벗고 뛰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 국민도 아니다. 미국인 작가 리처드 패닝턴(RICHARD PENNINGTON)씨다.

직지반환운동가 리처드 패닝턴(60)

Q. 먼저 우리나라 문화재를 환수하는 일에 힘써줘서 감사하다. 고함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미국 텍사스 주에서 온 리처드 패닝턴이다. 한국에 온지는 5년 반 되었다. 한국에 온 이후 한국의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며 한국 문화에 빠졌다. 이젠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비록 한국에 오려면 미국 여권이 필요하지만, 스스로를 ‘미국계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Q. 어떤 계기로 직지반환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한국역사에 대한 책을 18권 읽었다. 책을 읽다가 직지를 접했지만 가장 큰 계기는 청주를 여행했을 때다. 청주 고인쇄박물관에서 직지에 대한 정보를 더 얻었고 흥덕사 터를 방문하여 직지가 인쇄되었던 현장을 보았다.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학창시절에 급격한 문화적, 기술적 발전을 가능하게 한 금속활자를 요하네스 구텐베르그가 1450년에 만들었다고 배웠다. 하지만 최초의 금속활자는 한국에 있었다.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직지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유산중 하나인 직지가 고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Q. 서명운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명을 했나

2013년 여름에 시작하여 현재 1000명 정도다. 목표치는 없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직접 서명을 받으러 다니기도 하지만, 강남역 근처의 LBC카페에 서명할 수 있는 종이가 있다. 고함 독자의 많은 참여 부탁한다.

Q. 협력하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나

팀으로 일하고 있고, 3명의 한국인 친구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 따로 협력하고 있는 외부단체는 없다. 직지환수운동을 하는 단체를 찾기 힘들다. 

Q. 서명운동을 받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먼저 내가 외국인인 것에 놀란다. 보통은 외국인이 한국의 문화재 환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고마워한다. 하지만 직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그들에게 설명해줘야 한다. 아이러니하다.

Q. 많은 한국 사람들이 직지를 강탈된 문화재로 잘못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구한말 프랑스 주한대사였던 플랑시가 직지를 구매했다. 한국 사람들이 흔히 직지와 혼동하는 문화재는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가 강탈해간 외규장각이다.

Q. 매입된 유물이라는 점 때문에 환수하기가 더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매입된 문화재가 환수되는 게 가능한가.

직지의 역사적 중요성과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생각해 볼 때 직지가 매입된 문화재라는 사실이 중요해보이진 않는다. 증거도 불충분하다. 플랑시가 직지를 구매했다는 사실 외에 누구에게서 샀고 얼마를 주고 구매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설령 그가 구매했다고 하더라도, 한국은 당시 매우 약한 나라였다. 강대국의 대사가 구매하려고 하는데 문화적 가치를 내세우며 막을 수 있었을까. 플랑시가 진정 직지의 가치를 인지하고 구매했는지도 의문이다.

Q. 외규장각 의궤는 5년마다 갱신되는 대여 형식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당시는 의궤의 환수방식을 놓고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직지는 한국에 있어야 한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직지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외규장각 의궤처럼 대여형식도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의궤의 대여계약서에 의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음을 명시한 항목이 있다. 대여 형식이라도 외규장각 의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선례가 절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Q. 직지 외에 현재 환수운동이 추진되고 있는 문화재가 있나.

혜문스님이 주도하는 문정왕후 어보 환수운동을 예로 들 수 있다. 문정왕후 어보는 6·25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도난당한 문화재다. 혜문스님은 오랜 기간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했고, 끝내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혜문스님과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직지심체요절은 불교경전이다. 혜문스님에게 직지반환운동에 대해서 설명하면 분명 흥미를 가질 것이라 기대한다. 

Q. 직지가 환수되려면 앞으로 어떠한 노력들이 수반되어야 할까.

개인과 단체, 정부 모두가 직지환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 한국 사람들이 직지환수에 수동적이거나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경우를 많이 접한다. 청주 고인쇄박물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측에 직지반환운동을 소개하고 협력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내가 하는 운동을 막지는 않겠지만 돕지도 않겠다고 말했다. 왜 자신들의 문화재를 되찾는 일에 중립적 입장을 취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Q. 많은 사람들이 직지가 결국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런 분들께 한 말씀 부탁한다.

프랑스가 절대로 직지를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사례가 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다. 재정적 가치로만 따지면 직지심체요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 운하는 미국이 완공했다. 미국이 파나마 운하의 운영권을 영속적으로 가진다는 파나마 조약도 있었다. 그러나 파나마인들은 소유권 반환을 요구하는 시위를 수십 년에 걸쳐 지속했다. 마침내 1977년에는 그 소유권을 완전히 이전받았다. 파나마와 미국 간의 국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분명 파나마 운하를 포기했다.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포기했다면, 프랑스의 직지 반환은 그보다 훨씬 수월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직지환수에 대해서 너무 수동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으면서 프랑스가 얌전히 직지를 돌려주길 바라는가. 난 최소한 뭔가를 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인 직지를 되찾아오기 위해, 앞으로도 가만히 당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100년을 더 기다릴 순 없다. 직지가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때가 왔다.

프랑스가 직지반환에 반대하며 내세우는 근거는 크게 네 가지다. 패닝턴 씨가 이 네 가지 이유를 반박했다.

1. 프랑스는 한국보다 직지를 보관하기에 더 나은 시설을 가지고 있다.

패닝턴 : 말도 안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적 수준의 설비를 갖추고 있다. 프랑스의 도서관이 그렇게 훌륭하다면, 박병선 박사가 1967년에 그곳에서 직지를 찾아내기 전까지 왜 그 존재조차 몰랐을까. 박병선 박사가 직지를 처음 발견할 당시 직지는 단 한 번도 전시되지 않았고, 제대로 보관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심지어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직지를 중국문서로 분류했다.

2. 직지는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한국만을 위한 문화재가 아니다.

패닝턴 : 직지가 세계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직지가 프랑스의 도서관에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직지는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해 한국의 기술로 만들어졌다. 직지가 한국 말고 어디에 있어야 하나.

3. 직지반환은 프랑스 법에 위배된다.

패닝턴 : 아주 간단하다. 의지만 있다면 법은 바꿀 수 있다. 직지반환이 그 어떤 프랑스 법보다 중요하다.

4. 직지는 프랑스인 플랑시가 1887년에 구매한 문화재다. 그러므로 직지는 프랑스에 속한다.

패닝턴 : 직지의 가치와 중요성에 비하면 플랑시의 직지구입은 부수적 사실에 불과하다. 또한 플랑시가 한국에서 직지를 수집했다는 사실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증거가 불충분하다. 누구에게서 얼마를 주고 구입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