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영국의 어느 날, 한 주말 파티는 흥겨움에 취해 있었다. 각 방 마다 흘러나오는 ‘하우스 뮤직(1980년대에 시카고에서 시작된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의 한 종류)’을 위시한 여러 장르들의 믹싱 뮤직은 파티 참가자들의 기분을 ‘업’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우스 뮤직은 종종 애시드(LSD, 환각제의 일종)하우스라고 불렸다. 한번 들으면 빠질 수밖에 없는 강한 중독성 탓이었다. 그 때, 한창 음악에 취해 있던 어떤 DJ의 귀로 색다른 음악이 들려왔다. 재즈적 리듬을 차용한 새로운 크로스 오버 음악이었다. DJ는 신소리를 늘어놓듯 말했다.

“Now that you’ve had your fill of ‘acid house’, we’re going to give to acid jazz.”
(지금 듣고 있는 게 ‘애시드 하우스’면, 우린 이걸 ‘애시드 재즈’라고 불러야 겠군.)

DJ의 이름은 질즈 피터슨(Gilles Peterson)이었다. 후에 그는 ‘애시드 재즈’라는 이름의 레이블(음반사)를 설립했고, 곧 한 그룹이 그의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매한다. 그룹의 이름은 ‘자미로콰이’였다.

그룹 '자미로콰이'의 엠블럼

애시드 재즈, 그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브릿팝(Brit pop,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음악적 운동의 하나이자 록 음악의 장르 – 출처 : 위키백과)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룹이 있다. 바로 ‘자미로콰이’다. 5집 <A Funk Odyssey> 이후로는 점점 애시드 재즈적인 사운드를 버리는 듯하지만, 어쨌든 애시드 재즈라는 장르를 언급할 때 마다 ‘자미로콰이’라는 그룹을 떠올리지 않고선 설명이 어려울 것이다. 자미로콰이는 2000년대 초반 이후 한 동안 국내 애시드 재즈 열풍을 선도하며 많은 팬들을 양산했다. 후에 또 다른 걸출한 애시드 재즈 밴드인 ‘디사운드’나 ‘인코그니토’ 등이 국내에서 새롭게 조명 받을 수 있었던 건, CF에서나 라디오에서 숱하게 흘러나왔던 자미로콰이의 노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렉트로니카 장르를 기반의 펑키, 힙합, 디스코 등과 재즈의 크로스 오버가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사운드는 ‘자미로콰이’가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자, 애시드 재즈의 특징 중 하나였다. ‘애시드’라는 이름에서도 충분히 짐작 가능 하듯이, 반복되는 비트와 단조로운 코드(화음)로 만들어진 음악은, 청자로 하여금 묘한 중독성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마약’같은 음악이었다.

‘재즈’는 미국, ‘애시드 재즈’는 영국?

‘재즈’는 노예로 팔려갔던 미국의 흑인들이 서양의 악기들을 이용해 그들만의 리듬과 멜로디, 감수성을 입혀 만들어 낸 ‘미국’의 음악이다. ‘블루 노트(Blue note)’라고 하는 특유의 음계나 임프로비제이션(즉흥연주)등 ’재즈‘만의 독특한 매력은 당대의 클래시컬한 음악에 잠식되어 있던 사람들에겐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재즈는 뉴올리언즈 재즈와 시카고 재즈 등을 거쳐 프리 재즈, 락 재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 발전되어 갔다. 물론 이런 흐름을 주도했던 곳은 본고장인 미국이었다. 한 때  ‘브리티시 인베이젼(영국 출신 록 가수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을 거두는 현상)’이라고 불리며 세계 팝 시장을 주도했던 영국은, 비틀즈 이후로 점차 자본의 거대한 힘을 필두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던 미국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하던 차였다. 그 와중 아이러니 하게도, 미국의 국민음악으로 대접받고 있던 재즈가, 별안간 영국에서 새롭게 장르화(애시드 재즈) 되며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런 흐름에 맞춰 ‘자미로콰이’, ‘디 사운드’ 등의 애시드 재즈 밴드의 등장은 혹자들이 ‘제 2차 브리티시 인베이젼’이라 부를 만큼 획기적인 일이었다.

단순함. 그리고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선사하는 오묘한 쾌감.

애시드 재즈는 일반적으로 2가지 정도의 특성을 지닌다. 단순한 코드, 그리고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선사하는 오묘한 청음의 쾌감이 바로 그것이다. 흔히 ‘그루브’하다는 표현을 언론과 방송에선 자주 쓴다. 이것은 사람을 ‘들썩이게’ 만들 수 있는 리듬을 의미한다. 곡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애시드 재즈 곡들은 8~16사이의 비트를 이용해 강약 조절을 통한 특유의 리듬을 만들고, 위에 몇 가지의 반복되는 코드를 입혀 만들어진다. 단순한 비트와 반복되는 코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묘한 중독성을 불러일으킨다. 요즈음 득세하고 있는 ‘후크송’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애시드 재즈가 대중들에게 폭 넓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위와 같이 장르적 특성에 기인한 ‘이지 리슨(쉽게 들을 수 있는)’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두 번째론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역시 곡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겠지만, 일렉트로닉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과 신시사이저가 만들어 내는 기계음은 듣는 이에게 청음의 쾌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런 점은 애시드 재즈가 종종 펑키나 디스코 등의 다른 일렉트로닉 음악 계열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며 장르의 무용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시드 재즈라는 장르 자체가 워낙 다양한 장르들이 혼용되어 있고, 탄생한 지 고작  30여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무엇’이 애시드 재즈라 정의내릴 수 있는지 에 대해 아직까지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그래서 단순히 ‘전자음’을 사용한다고 해서 애시드 재즈가 하우스 음악(디스코, 펑키 하우스 등)의 하위라고, 혹은 재즈가 아니라고 단정 지어 버리기엔 지나치게 무리한 감이 없지 않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애시드 밴드들이 등장, 음악의 저변 넓히고 있어

2000년대 중순 방영됐던 김선아, 현빈 주연의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할 것이다. 시청률이 한 때 50%까지 다다랐던 소위 ‘국민 드라마’ 대접을 받았던 작품이다. 그리고 드라마만큼이나 히트 쳤었던 OST가 하나 있었다. ‘숨겨왔던 나의~’ 라는 가사로 시작했던 그룹 ‘클래지콰이’의 ‘She is’다. 이 노래를 불렀던 ’클래지콰이‘의 이름은 애시드 재즈 밴드인 ’자미로콰이‘의 ’~콰이‘와 ’클래식‘의 합성어이다. 친근한 멜로디와 특유의 일렉트로닉함으로 애시드 재즈라는 장르를 대중들에게 인식시킨 클래지콰이는 이후 ’She is’로 2007년 2005년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O.S.T 부문을 수상한 뒤, 2007년 Mnet KM 뮤직 페스티벌 하우스-일렉트로닉 음악상, 뮤직 페스티벌 혼성그룹상 등을 수상하며 대중 가수로서 꾸준히 자리 매김 하고 있다.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국내 애시드 밴드에는 ‘크리스탈 레인’이라는 그룹이 있다. 2007년 앨범 [Eternal Love]로 데뷔 한 이 그룹은, 어느새 데뷔 6년 차를 맞는 중견 애시드 재즈 그룹이다. 비록 발매한 앨범은 2장 밖에 없지만, 중독성 있는 리듬과 멜로디로 뭇 재즈 마니아들 사이에 깊은 인상을 남기며 다음 앨범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특히 밴드의 리더인 홍세존 대표는 직접 ‘에반스 뮤직’이라는 음반사를 이끌며 한국 음악 시장에서 재즈의 저변을 넓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처럼 매년마다 국내에선 다양한 애시드 재즈 밴드들이 소개되고 있고, 또한 세계적인 애시드 재즈 밴드들의 내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올해는 6월 인코그니토의 내한을 시작으로, 록 페스티벌을 통해 8월 중순 자미로콰이, 마마스 건 등 유수의 밴드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앞으로도 다양한 록 페스티벌의 개최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이런 그룹들의 내한은 단순히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다음번엔 애시드 재즈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을 무장하고 듣는다면, 남들보다 조금 더 ‘성실하게’ 열광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