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점부터 언론이 대학을 평가하고 있다. 언론사 대학평가가 수험생, 학부모에게 영향을 주면서 대학도 언론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가 대학평가로 꽤나 재미를 보자 다른 신문사도 줄지어 대학평가에 뛰어들었다. 고함20도 염치없이 이 축제에 밥숟가락 하나 올리고자 한다.
 
다만 논문인용지수, 평판, 재정상황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방법은 거부한다. 조금 더 주관적이지만 더 학생친화적인 방법으로 대학을 평가하려 한다. 강의실에선 우리가 평가받는 입장이지만 이젠 우리가 A부터 F학점으로 대학을 평가할 계획이다. 비록 고함20에게 A학점을 받는다고 해도 학보사가 대서특필 한다든가 F학점을 받는다고 해도 ‘훌리건’이 평가항목에 이의를 제기하는 촌극은 없겠지만, 고함20의 대학평가가 많은 사람에게 하나의 일침이 되길 기대한다.

그 세 번째는 졸업요건이다. 바야흐로 학과에 관계없이 컴퓨터 자격증과 토익 점수는 자연스런 의무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왔다. 학생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대학이 강제하는 졸업 요건은 종종 과도하거나 터무니없는 요구사항으로 예비 졸업생들의 기를 꺾어놓곤 한다. 본 연재는 지난 3년간 적용된 각 대학별 학부생 공통 졸업요건뿐만 아니라, 특정 학과의 졸업요건도 평가해 학점을 매긴 결과다.

A학점: 학교 특성도 살리고, 학생 진로에도 도움이 되는 ‘졸작 전시회’ – 한국기술교육대

한국기술교육대학의 ‘졸업연구작품제’는 3-4학년들이 직접 기획, 설계, 제작한 공학 관련 작품 전시회다. 기술 관련 분야의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대학답게 한기대는 1-2학년 과정에서 기초를 다진 뒤 3-4학년 과정에서 전공별로 산업현장에 필요한 작품을 직접 설계하는 교육 과정을 도입했다. 오성철 교무처장은 “졸업연구작품의 10% 이상은 중견기업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서 기업에서 장학금과 장비 등을 대학에 지원하며 학생들을 스카웃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팀티칭 방식의 그룹스터디로 팀워크를 배양할 수 있고, 2개 학부 영역 이상의 공동지도교수가 참여해 학제 간 융합을 시도하면서 보다 심층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기대가 2012년 하반기 전국 4년제 대학 취업률 발표에서 1위(82.9%)에 올랐으니, 학생 진로 교육에 노력한 만큼 학생, 학교, 기업에 모두 유용한 일석삼조의 제도라 할 수 있겠다.

A-학점: 바람직한 ‘성폭력 예방교육’ – 중앙대

중고등학생 때까지 간헐적으로나마 실시되던 학생 대상 성폭력 예방교육은 대학에선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대학 성추행 사건들은 사실 교내 성교육 부재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중앙대는 국내 대학으로 처음 교내 인권센터를 도입한 대학답게 교수 및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든 계열에서 성 평등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심리학과를 비롯한 몇몇 학과에서는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지 대학생으로서가 아니라 성인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태도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성교육은 의의가 있다. 모든 학생들이 이수하도록 졸업요건으로 의무화한 조치도 바람직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모든 학과에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 이에 아쉬운 A-를 부여한다.

B-학점: 하늘을 찌르는 외국어(FLEX) 합격점수를 요구하다 – 한국외대

한기대처럼 한국외대는 ‘외국어’ 특성화대학이다. 특성화대학은 어느 분야에서 이미 출중한 학생들을 뽑기도 하지만, 입학해서 차츰 실력을 쌓아나갈 수 있게 여러 도움을 주는 곳이다. 그런데 한국외대는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 과도하게 높은 외국어성적이라는 ‘결과’만을 요구하면서 학생들의 졸업을 위협하고 있다. 모든 학생은 언어별 학과에 따라 7개국어 어학시험 ‘플렉스(FLEX, Foreign Language Examination, 한국외대 자체 개발)’에 응시해 합격 점수 이상을 얻어야 졸업할 수 있는데, 이 점수가 터무니없이 높다.

한국외대 홈페이지에 공지된 FLEX 시험일정.
'졸업인증 자료로 활용'된다는 문구가 보인다.

 
“영어 대학의 경우 영어 외 제2외국어 FLEX 점수도 있어야 하는데, ‘실용외국어‘라는 4학점 수업만 들어서는 도저히 졸업 요건을 맞출 수가 없어요.” 졸업요건을 맞추기 위해 외대부속 외국어학습연수원에서 50만 원짜리 연수를 들어야 했던 통번역학과 박혜령(24)씨의 말이다. 지나치게 높은 합격 점수 기준 때문에 취직을 하고도 어학 시험을 패스하지 못해 졸업을 못하는 학생들이 해마다 발생하자, 외대는 지난 2010년부터 FLEX 중국어시험 졸업요건 점수를 100점 낮추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졸업과 동시에 외국어 능통자가 되게’ 하려는 학교의 야심찬 계획 덕분에 재학생들은 지금도 FLEX 기출문제집을 헉헉대며 독파 중이다.

C학점: 경제학 전공이 아니더라도 경제 테스트를 응시해야만 한다? – 건국대

그나마 대학 자체의 특성을 살려 공통 졸업요건을 두는 것은 절반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종합대학인 건국대는 매일경제가 시행하는 국가공인 경제경영이해력 인증시험인 ‘매경 테스트’를 전 학부생 대상 졸업요건으로 활용하겠다고 결정했다. 매경미디어그룹과 손잡고 ‘매경-건국대 경제교육’ 협약식을 가진 지난 4월의 일이다. 이미 지난 학기 글로컬(충주) 캠퍼스 국제비즈니스대학에 도입되었고 차차 졸업요건 적용 대상을 넓혀가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경제학 전공이 아닌 학생들은 막막할 수밖에 없다. 건대 국어국문학과 재학생인 정이현(23, 가명)씨는 매경테스트가 졸업 요건에 포함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문과대에서 왜 매테를 시행할 수도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예컨대 한국사나 한국어시험처럼 과 특성에 맞는 걸 의무화하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나.”


송희영 건대 총장은 “취업을 앞둔 대학생에게 경제, 경영지식 함양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역 및 비즈니스 관련 전공이 아니라 언어, 지역 문화학 등 타 학과 전공학생에게 경제학 테스트를 치러야 졸업할 수 있다고 강제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의 전공이나 진로와 상관없는 시험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니, 처음부터 모든 학과에 적용되었다면 C가 아니라 D를 주어도 아깝지 않다.

D-: 인턴 안 하면 졸업을 못 한다니요 –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 한양대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에는 ‘학과 교수님께서 직접 관리하시는 졸업인턴제’가 시행되고 있다. ‘학문과 사회경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홍보되는 이 제도는 사실 인턴십 의무 이수제다. 학교의 지원을 받아 인턴에 지원하더라도 불합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인턴 경험을 하지 않고 졸업하더라도 진로는 다양하게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인턴 없이 졸업 없다” 원칙을 고수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이러한 ‘졸업 인증제’를 변경하기 위해 성신 정외 총학생회에서는 지난 8월 말 재학생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하여 “변경을 찬성한다.”는 93%의 목소리를 얻어냈고 교수진에게 전달했다. 이 사안이 받아들여지면 12학번부터는 졸업인증제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다. 그 전까지 성신여대는 D- 학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졸업요건에 허덕이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추세에 역행하는 대학이 있었으니, 바로 한양대다. 올해 3월, 한양대는 13학번 신입생부터 인턴사원 인증을 받은 학생에게만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인턴십 의무제’ 시행을 결정했다. ‘졸업 요건’이라는 의무사항이 되면 기업 취업을 희망하지 않는 학생이나 고시 준비생들도 인턴십을 이수해야 하므로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학칙을 신설하면서 확정된 이 제도는 학생들의 의견수렴 없이 진행되어 더욱 비판을 받고 있다. 의무제 대상인 신입생이 입학 전 어떠한 공지도 받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인턴십 의무제는 쓸모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양대 12학번 최예림(23, 가명)씨는 이렇게 말했다. “취업하지 않고 다른 길로 가는 학생도 많은데 인턴십이 졸업 필수요건이라니, 여기가 대학인지 취업학원인지 모르겠다.” 13학번 신입생부터 인턴십이 필수인 대신, 이전 학번 학생들은 다중전공을 필수로 들어야 한다. “단일 전공만 공부하고 싶은 사람도 있는데 두 개 이상 다전공해야 졸업하니까 정작 우리 과 수업은 못 듣고 다전공 수업에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2013.6.16일자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학이 곧 취업학원인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자세 자체는 어쩌면 누군가에겐 힘이 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스펙 열풍이 20대에게서 대학 내부로 옮겨오면 자칫 학교가 모든 학생들에게 요구사항을 ‘강제’해 오히려 학생들에게 물리적, 심리적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아이러니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학사제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대부분 대학의 큰 문제다. 진로와 관련된 부분은 일률적으로 의무화하기보다는 학과 및 학생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쪽이 낫다. 불필요한 졸업 요건의 부적합성을 깨닫지 않는 한, 재수강의 쓴맛을 보게 될 대학이 꽤나 많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