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키에 동그란 안경, 짧은 머리에 가지런한 웃음. “제가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하며 말을 시작하나 한국의 주거문제와 인권을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자못 단단하다. 언뜻 보면 어엿한 사회인 같지만 영락없는 소년의 눈동자를 지닌 강봉수(22)씨는 사회단체 홈리스행동(homeless act)의 신입 야학 교사이자 대학생이다. 이 젊은 선생님이 자신의 ‘배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홈리스야학 문을 두드리다


그는 사회문제에 자발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는 여느 열성적인 대학생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에 따르면 다소 ‘세속적인’ 동기로 인해 홈리스야학을 알게 되었다는데. “저는 인류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인류학과에서는 어떤 현장에서 현장연구를 수행한 다음, 그 결과를 졸업논문으로 제출해야 하는데, 어딜 가볼까 하다가 마침 홈리스행동을 알게 되었죠.”

홈리스행동은 불안정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로, 2001년 ‘노숙인 인권과 복지를 실천하는 사람들(노실사)’로 출범해 지금까지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강씨는 왜 굳이 홈리스행동에서 연구를 결심했을까. “팀원들과의 관심사가 맞물린 지점이 ‘주변부 집단’이었어요. 이른바 ‘가장자리’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요.” 연구 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팀원 중 한명이 홈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마침 봄 학기 야학이 개강해서 진행되던 중이었기에 한번 찾아가 얘기라도 해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활동가 분들이 잘 맞아주셨고, 팀원들은 각 강좌에 보조교사로 참관할 기회를 얻게 된다.

“햇수로 따지면 홈리스야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건 딱 3년째라고 해요. 그런데 학생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주말 배움터’ 같은 이름으로 꾸준히 해오던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고요. 수강생 분들도 꾸준히 강의를 듣고 계시는 편이고요.” 전 강좌 무상으로 운영되는 홈리스야학의 커리큘럼은 한글, 영어, 컴퓨터 같은 기초적인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수업뿐만 아니라 만들기(일상생활에 쓸 수 있는 소품을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으로, 손을 씀으로써 치매 예방을 하는 목적도 있다), 문화체육(주로 탈춤, 전통 장단, 장구) 교실 등 다양하다. 상임활동가 4-5명과 교사로 지원한 자원봉사자 4-5명이 함께 꾸려가고 있다. 

강씨는 한글 교실에 참관하면서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일찍부터 노동을 하기 시작했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학교에 가지 못하신 분들은 글을 못 배우셨죠. 장애가 있어서 언어 구사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있었고요. 얼마나 삶에서 불편함이 많을까, 생각했어요.” 논문을 제출하고 친구들은 취업 준비로 바빠진 이번 학기, 강씨는 야학 교사에 지원했다. 그 역시 4학년이지만, 관찰자의 시선이 아니라 직접 학생들과 소통하는 선생님으로 그 자리에 다시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야학 경험이 되게 좋았었나 봐요.” 그가 웃었다.

거리 노숙과 불안정 주거의 현실, 그리고 야학


연구를 하는 1학기는 짧은 시간이었다. 5명으로 구성된 강씨의 팀원들은 거리노숙과 불안정주거를 하는 사람들이 놓인 구조적인 현실을 보고, 어떻게 그들이 자신들의 잊혀진 권리를 되찾기 위해 행동하고 있는지를 관찰했다. 학생 분들이 전부 홈리스이신 거냐고 물었더니 뒤통수를 치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건 홈리스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홈리스’는 노숙인(路宿人), 즉 길에서 이슬을 맞으며 자는 사람이란 의미다. 그러나 사실은 거리에서 노숙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정도로 위험하고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예컨대 쪽방촌이나 고시원 같이 불안정한 주거를 영위하시는 분들은 조금만 삐끗하면 언제든지 거리 노숙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거리 노숙을 하다 돈이 좀 생기면 쪽방에 들어갈 수도 있는 거고요. 오로지 ‘노숙’하는 사람으로만 홈리스를 규정하는 것은 상당히 인위적이라는 지적이 있었어요. 그 구분 때문에 정부 정책도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측면도 있었고. 그래서 ‘홈리스’라는 좀 더 넓은 개념에 착안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렇기에 홈리스야학에는 노숙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수강생으로 등록되어 있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야학이 다양한 사회문화적 권리들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권리 되찾기’ 방침 하에 운영되고 있기에, 금전적 사정이나 장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배우지 못했던 것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수요일에는 필수 강좌라고 불리는 ‘홈리스 권리교실’이 열린다. 노숙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실태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한국 자본주의 현실 하에서의 장기적 빈곤의 원인을 고민하는 자리다. 

“보통 우리가 노숙자에 대한 편견을 갖잖아요. 게으름, 태만, 의지 부족, 실패자 등등. 그런데 직접 그 시기를 겪어 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히려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더라고요. 자활의 의지가 생기려면 안정적인 주거나 적당한 휴식 등 가능성이 보여야 하는데, 일용직 노동을 하거나 하면 손에 쥐는 돈이 굉장히 적으니 아무리 일해도 단칸방 하나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거죠. 피로 누적으로 생산력 자체를 잃는 경우도 발생하고, 괴로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면 그나마 있던 돈마저 사라지고. 경제적 능력을 잃으면서 관계도 단절되는 경우가 많아요. 절망의 경험이 축적되는 거예요.” 강씨는 홈리스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홈리스행동에서는 이러한 ‘희망 없는 빈곤’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다양한 정책 홍보를 하고 있다. 단칸방이나 쪽방에서 내는 돈보다도 훨씬 싼 보증금과 월세 가격에 생활할 수 있는 서울시 임대주택 정책을 홈리스들에게 알리고, 주거 및 생활 관련 상담도 수시로 진행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요일에는 서울역사로 나가 직접 홈리스를 만나는 ‘인권지킴이 활동’도 전개된다.

인권지킴이 활동, 사람들, 그리고 ‘이름 찾기’


“커다란 보온병에 차를 준비해서 세 팀으로 나뉘어 역사 안과 서울역지하차도로 가서 보이는 분마다 한 잔씩 드리면서 안부도 여쭤보고, 그분들 이야기를 들어요.” 이 활동은 홈리스에게 직접 각종 정보를 소개하고, 최근의 상황이 어떤지 들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한 주도 빠짐없이 진행된다. 상임활동가들은 누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으면 그분 어디 가셨는지 물을 정도로 능숙하다고 한다. “홈리스를 대상으로 금융피해나 장기매매, 명의도용도 굉장히 많이 일어나요. 자기 이름을 팔면 큰돈을 한 번에 쥐어 주니까……. 하지만 그 뒤에 일어날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 위험한 건데, 그런 걸 조심하라고 말씀도 드려요.”

그러나 강씨는 장기매매보다 더 무서운 건 강제퇴거라고 말한다. “서울역에서 용역경찰을 고용해 역사 내에 배치시키고, 행색이 허름한 사람들을 내쫓는 겁니다.” 그 외에도 서울역 근처 상가연합회에서 지난 5월부터 역사 바깥으로 쫓겨난 홈리스를 경계하려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매출이 떨어진다는 게 이유다. 역내에서 쫓겨났는데 거리에서도 비난을 받으면 홈리스는 갈 곳이 없다. “격리. 그게 그 사람들이 홈리스들에게 시키려는 것 같아요.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 그건 근본적인 대책이 아닐 뿐 아니라 노숙하시는 분들에겐 엄청난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그도 꽤 여러 명의 홈리스를 만났을 것 같다. 제일 마음이 갔던 분은 누구였냐고 물었다. “파지 줍는 일을 하시는 할아버지가 계세요. 지적 장애가 약간 있으셔서 본인 연세가 계속 바뀌시는 터라 아무도 진짜 연세는 모르는데, 되게 유쾌하신 분이세요.” 하루는 그가 참관한 한글교실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를 공부했는데, 강씨가 나와 ‘부끄럽다’를 표현하게 되었다. 손으로 볼을 감싸고 몸을 살짝 좌우로 흔드는 동작을 한 뒤 대답을 기다렸는데, 할아버지의 입에서 지체 없이 튀어나온 말은 “춥다”였다. “그게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요. 부끄럽다는 감정보다도 그런 ‘감각’이 훨씬 더 삶에 가까운 분이구나, 싶어서…….”

수강생들에게 알파벳 읽는 법을 가르치는 그는 이제 수업 2주차, 아직 많이 긴장된다고 했다. 오죽 버벅댔으면 90분 수업시간 중 20분씩 배정된, 수업 구성원들이 서로의 근황과 삶을 이해하는 시간인 ‘생활나눔’을 제대로 못하고 빡빡하게 진도를 나갔을 정도. 그러나 부담되는 만큼 훨씬 보람도 크다고. “많이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육이 생계유지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글을 알아야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간단한 영어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컴퓨터도 조금은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그분들이 그런 교육을 받았더라면 조금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정부에서 지원하는 복지 서비스에도 좀 더 접근이 용이했을 텐데.”

강씨와 홈리스야학의 인연을 만들어준 졸업논문의 제목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름 찾기.” 억압된 권리들, 그리하여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아주는 데에 강씨도 조그만 몫을 보태고 있는 셈이다. 소외받거나 차별받는 사람이 겪는 부당함을 무시하고 살지는 못하는 사람 같다며, 어떤 일을 하며 살든 지향성은 잃고 싶지 않다고 다짐한다며 또 한 번 쑥스럽게 웃는 그는, 이미 훌륭한 선생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