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정(가명)양은 본격적으로 외교관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길게는 2년의 공부기간을 상정하고 평소 존경하던 은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미 이메일로 정황을 들은 교수님은 그녀가 운을 떼자마자 미국 유명 사립 대학원 3개를 적어 건네 주었다. 어리둥절해 있는양에게 현재 대학교 ‘레벨’로는 국립외교원이 요하는 ‘스펙’에 못 미칠 것이라며 대학원 진학을 강력하게 권장하였다.

일반적으로 외무고시라 불리는 ‘
5등급 외무공무원 공채시험’은 2013 47기 모집을 끝으로 폐지된다. 내년부터 국립외교원의 1년 교육과정을 통해서만 외교관이 배출된다외교관 준비생은 3차에 걸친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을 통과해야 국립외교원에 입교할 수 있다. 이 선발시험이 실질적으로 외무고시를 대체하게 된 것인데, 둘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점은 전자가 면접에서 ‘스펙’을 본다는 것이다
. 돈이 있어야 법관이 된다는 로스쿨 음서제 논란에 이어, 외교관 역시 유학 정도는 갔다 올 수 있는 재력이 있어야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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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시험에서 스펙경쟁으로?



공채, 즉 공개경쟁채용은 자격 있는 모든 지원자에게 평등하게 지원 기회를 부여하고, 공개된 경쟁시험을 통해 임용후보자를 선발하는 신규채용의 방법을 말한다(출처: 행정학사전, 이종수). 다시 말해 기존 ‘외무공무원 공채시험’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모두가 공정한 출발선에서 경쟁을 치를 수 있는 제도였다. 외무고시는 1973년 학력제한을 폐지했고 2005년부터 학력기재란을 삭제하였다. 학력이나 경력에 관한 자료는 면접시험위원에게 일체 제공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채시험에서 선발시험으로 슬그머니 개명한 국립외교원의 시험 방식은 어떨까? 2011년 외교통상부가 주관한 국립외교원 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외교통상부는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이 다층적 검증을 통해 최적의 외교인재 선발 도모할 것이라고 했다. 기존 외무고시는 암기형 지식측정 시험그쳤다며 그 한계를 지적했다. 새로운 선발시험은 외교관으로서 필요한 상황판단 능력, 인성 및 다양한 경력 등 종합적인 외교역량을 평가’할 것이라 말했다.

외무고시가 단순 지식 수준에 대한 평가라면, 새로운 선발 시험은 종합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평가기준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방향성은 분명하게 보인다. 학식과 언변 등 개인의 내재적 역량만으로는 외교관이 될 수 없다. 앞으로는 ‘경력 등’의 스펙이 주요 자격요건이 될 것이다
.

종합적인 인재=유학파?


2차까지 서술시험의 형식 측면에서 외무고시와 선발시험은 크게 다르지 않다. 번역시험이었던 제2외국어 영역이 자격증 시험으로 대체 된 것 외에 다른 영역의 공부 범위는 그대로다. 실질적인 변화는 3차 대인면접에 있다. 외무고시 3차 면접 중에는 수험생에 관한 정보가 일체 공개 되지 않았다. 반면 국립외교원의 인성면접은 아예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일반전형 비교)




국립외교원은 이미지역외교외교전문’ 등 경력직 전형을 신설해 일반 학부생이 지원할 수있는 일반전형의 비중을 60%로 줄였다. 그런데 그 축소된 일반 전형 가운데에서도 스펙의 고저를 따지겠다는 것이다. 자신을 서울 중산층 가정에 속해 있다고 평가한 우지희(가명,24)양은 “국립외교원은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외무고시면 도전했을 텐데, 국립외교원은 대놓고 유학 갔다오라고 하는거 아니냐. 우리 집이 그럴만한 형편은 안된다.”며 외교관 시험이 변해 진로를 변경했다고 말했다. 




H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외교관 선발 방식 전환으로인해 외무부의 유학파 선호가 극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평했다. 또한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젊은 학생들의 실력은 사실상 도토리 키재기”이고,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생기는 인맥이야 말로 외교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실질적인 능력”이라며 국립외교원의 취지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기자는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3차 면접에 관해 국립외교원에 질의하였다. 친절히 응해주던 입학관리 담당자는 “스펙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물음에 경직된 어조로 모른다고 답했다. 기자가 “면접 중에 인적사항이 적힌 자기소개서를 본다는 것은 스펙이 작용한다는 것 아닌가?”라고 다시 묻자 담당자는 “아직 3차 면접을 보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냐”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고, “구체적인 사항은 면접을 실제로 진행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대답을 끝내 회피했다.